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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사로운 Dec 18. 2024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우쿨렐레 수업을 마치며

 휴직기간 동안 오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궁리하던 차에 동주민센터 홍보지를 보고 시작한 우쿨렐레. 지난 5월부터 시작했으니 방학 빼고 거의 6개월을 배웠다. 매주 수요일 수업 있는 날만 악기를 만져보니 실력은 5월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내 손으로 소리를 만들어내고, 선생님들과 함께 하나의 곡을 반주와 노래로 완성해 나가는 그 능동적인 행동 자체가 주는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주는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수요일이라 휴강인 관계로 오늘이 2024년 우쿨렐레 수업 마지막 날이다. 지난주 강사님 몰래 각자 간식을 조금씩 준비해서 조촐한 송년회를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직접 만드신 특제 토스트, 동네 제과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빵, 커피 등 한 가지씩 꺼내 놓으니 풍성한 한상이다. 강사님이 캐럴 연주를 위해 준비해 오신 머리띠, 모자, 핀 소품은 밋밋할 수 있는 풍경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초록 빨강 귀여운 머리띠를 하나씩 쓰고 기념사진도 남긴다.

내 평생 브이하고 사진 찍어본 건 처음이야.
역시 젊은 사람들이 있으니 이런 것도 해보네

간식을 먹으며 맛있다, 비결이 뭐냐, 마지막이니 악기 연습은 조금만 하자, 강사선생님은 안된다 잔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에 내 머릿속은 이번이 마지막 수업임을 어느 시점에 말씀드려야 하나 순간을 엿보고 있다.


강사님과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은 뒤 수업에 간 첫날이 떠오른다. 2인용 긴 책상에 한 분씩 우쿨렐레를 어깨에 메고 앉아 계신다. 이 날은  4명의 수강생. 딱 봐도 우리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연배의 분들이다. 순간 잘못 왔나 싶었고, 생각보다 적은 인원에 묻어갈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어 일단 들어가 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빈자리에 앉았다. 강사님과 선생님들은 젊은 사람이 왔다며 환하게 반겨주신다. 우쿨렐레 다루는 수준이 다른데도 강사님의 기초부터 중급까지 아우르는 수업 덕분에 호흡을 맞춰 한곡 씩 한곡 씩 연주가 가능했다. 중간중간 수강생 선생님들의 젊으니까 다르네, 빨리 익힌다니까 하는 낯 뜨거운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며 무딘 손가락만 열심히 튕긴 날이다.

 고민은 짧게 했다. 이왕 시작했고, 생각보다 우쿨렐레 튕기는 재미가 있고, 6~70대 어르신들과 언제 이렇게 같이 배우는 기회가 있을까 싶어 계속 그 자리에 나가기로.


 악보집에 악보가 채워지고, 4비트에서 16비트, 아르페지오, 칼립소 등 여러 주법을 익히며 우쿨렐레와 친해진 만큼 어르신들과도 조금씩 가까워졌다. 이른 아침 구청일자리사업을 부지런히 하시고 가끔씩 특제 토스트를 만들어오시는 수준급 우쿨렐레 연주실력을 갖추신 반장 선생님, 꽃집 운영 하시며 남편분과 다정히 여행을 즐기시는 온화한 미소의 선생님, 봉사와 취미를 열심히 하시는 작지만 강단 있으신 부반장선생님(60대 이심을 오늘 알고 깜짝 놀랐어요. 50대 후반으로 보이시거든요.), 나와 같은 날 수강 시작하시고 나는 잘 못해요라고 늘 말씀하시지만 열정만큼은 최고인 멋쟁이 미국선생님(미국에서 살다 오셔서), 손가락 부상으로 몇 번 못 뵈었지만 어르신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분위기를 띄워주는 내 또래의 감초 선생님.


이야기 중에 부반장선생님이 말씀하신다.

"강사님, 그동안 너무 우리만 아는 노래를 많이 했으니 내년에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해요."


아, 이제는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커피 한 모금으로 마른 입술을 적시며 조심스레 말씀드린다.

"이제 곧 방학이라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고, 방학 지나면 복직이라서 오늘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아유. 그래요. 이제 정들기 시작했는데 너무 아쉽다.
근데 복직하는 건 너무 축하할 일이다.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
얼마나 휴직한 거예요? 우리 때는 딱 4주밖에 못 쉬었어. 그래서 둘째 낳고 그만뒀지. 지금생각하면 너무 아쉬워.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일하기가 참 좋다니까
그래도 단톡방에서는 나가지 말고 있어요.
시간 되면 놀러 오고
근데 우리 평균 연령 다시 높아지네

어르신들의 지난 이야기와 따뜻한 말씀들을 들으며 어색한 첫날 그만두지 않고 오늘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년회 핑계로 연습은 조금만 하려 했던 우리 수강생들의 계획은 마지막 수업이라는 나의 고백에 수포로 돌아갔다. 빠르게 음식들을 정리하고 각자의 위치로 가서 우쿨렐레를 어깨에 멘다.

"마지막인데 오늘 배우려 했던 캐럴은 연주해 보고 갑시다. 대신 지난주 복습은 안 할게요."

 늘 한 가지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어 하시는 우리 강사선생님이다.


강사님, 선생님들,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선생님들과 함께 연주하며  '우쿨렐레 튕기며 노래하는 할머니'라는 꿈도 하나 더  늘었어요.

수요일이면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그 모습이 떠오를 것 같아요. 기억하겠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당신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게요
헤어져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도 나에겐 아무 상관없어요
아직도 내 맘은 항상 그대 곁에 언제까지라도 영원히
우리 다시 만나면 당신 노래 불러요
온 세상이 그대 향기로 가득하게요
당신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게요

오늘의 마지막 곡. 저에게 선물로 주신 곡 같아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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