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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사로운 Dec 30. 2024

천국에서 온 인사

늦은 밤, 남편과 큰 아이의 소란에 너무 시끄럽다고 단속하고

좋지 않은 기분으로 방문을 나선다. 문을 닫고 돌아서며  거실 베란다로 향한 내 눈길에 비친 건. 아버님이 큰 시누 머리를 잘라주고 계신다. 우리 아이들 어릴 적 보자기를 두르고 이발 솜씨를 뽐내시던 그 모습 그대로. 남편 아이들 어머니를 다급히 부른다. 금세 사라지실까 베란다 밖으로 두 팔 두 손을 크게  흔들며 얼른 문을 열었더니, 몸을 한껏 뒤로 젖혔다 올리시며 답답한 목을 푸신다. 카악. 그리곤  사람씩, 두 팔 벌려 크게 안아주신다.


아버님, 괜찮으세요?


응 괜찮다. 난 잘 지낸다

우리 손녀들, 잘 지내고 있지?

언니랑 싸우지 말고


할아버지, 제 방 생겼어요.

, 가보자


큰 아이 방으로 우르르 간다.

나도, 아버님 뒤를 따라 종종종


찬기에 눈을 뜬다.

꿈이었구나.


두어 번 꿈에서 뵀지만 어떤 모습이었는지, 무슨 말씀을 건네셨는지 흐릿하기만 했는데 오늘은 너무 생생하다.

마르신 몸이었지만 배에 구멍도 없고, 안아주실 때 따뜻한 품이 느껴졌다. 넉 달 동안 말씀도 못하시고 투병하신 게 너무나 안타까웠는데 목소리를 들려주시니 얼마나 벅차던지. 인사하러 오셨나 보다는 남편 말에 눈물이 주르륵. 어제 큰 사고 소식에 먹먹하고 슬픈 마음을 가눌 길 없는 우리를 위로하듯 찾아와 주신 따뜻한 인사.


잘 지내신다고 하니 다행이에.

올해가 가기 전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너무 힘든 지난 새해를 보내고 가셨는데 평안해 보이셔서 좋아요. 저희도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새해에는 인사 자주 나눠요, 아버님.

그리고 아버님, 어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어요.

그분들도 한분 한분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부디, 그곳에서 모두가 평안하길.



24.12.29. 여객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깊은 위로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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