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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사로운 Jan 04. 2025

어서 와, 임용 2차 시험은 처음이지?(1)

2차 시험 첫째 날 이야기(과정안+심층면접)

안 되겠어. 청심환 먹어야 할 것 같아.



 좀처럼 두근거림이 진정되지 않아 퇴근하는 남편에게 청심환을 부탁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말보다 사 오겠다는 그 말에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 재울 때 같이 자려면 독서실에서 서둘러 나서야 한다. 제대로 마무리가 된 건지 만 건지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가방을 챙긴다. 사실 여기까지 온 과정들(일반적인 수험생이 아니다 보니)이 제대로랄게 없으니 마무리도 제대로 일리가. 정해져 있는 시험일정에 맞춰 겨우 겨우 끌려가고 있구나, 어쨌든 여기까지 끌려왔으니 남은 이틀도 되는 대로 끌려가보자 주도권을 시험에게 내어주며 부담감도 양보해 본다. 

사진출처: 리로의 생활건강 블로그(네이버)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청심환이란 말만 떠올려도, 꾸덕하게 씹히며 코 끝과 입안 가득 퍼지던 쌉싸름하고 화한 향이 나는  같다. 그 알싸함을 오랜만에 느껴보겠구나 하며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건넨 건 내가 상상한 그 금빛 환이 아니었다(너무 옛날사람이었네). 처음 보는 액상형 안정제에 낯가림을 하며 효능, 효과, 부작용, 복용방법을 꼼꼼히 읽는다. 당장 내일 시험이니 미리 먹어볼 수도 없고. 너무 나른하고 졸린 상태가 되지 않도록 시간차를 두고 반씩 나눠서 먹기로 한다. 점심으로 먹을 죽과 귤, 사탕 사이에 안정제를 살포시 넣고, 요동치는 심장에 걱정 말라고 속삭이며 잠을 청한다.




 이른 새벽, 비가 조금씩 내린다. 어둑한 하늘 아래, 환한 불빛을 따라 고사장으로 들어선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으로 가득 찬 고사장 1층 입구. 수험생만 긴장되고 바쁜 날은 아니구나 생각하며 어디로 가야 하나 두리번거리는데 "000 선생님 이신가요?" 명찰을 들어 보인다. 아, 아닙니다. 머쓱하게 대답하고 합격해서 감독관으로 와보고 싶네요 속말을 하며 고사실을 찾아 계단을 오른다. 자리를 찾아 짐을 내려놓고, 시험장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는 시험장에서 시물레이션을 해보고 싶어 서둘러 온 참이다. 합격수기 속에서 읽고 보았던 2차 시험장의 모습이 눈앞에 있다. 대기실, 구상실, 평가실을 차례로 들어가 스터디에서, 모의시험에서 수없이 연습했던 노크-문 열기-4~5걸음 걷기-인사-의자에 앉기-일어나서 인사-4~5걸음 걸어 나오기를 해 본다. 움직일 때마다 발자국 소리가 칠판을 두드리고 천정을 찍으며 메아리가 되어 귓가에 크게 울린다.


 첫 시험은 교수학습과정안 작성으로 1시간 동안 주어진 조건에 맞게 도입-전개-마무리-평가까지 1차시의 수업을 구상하는 것이다. 요리수업이다. 음, 나올만한 수업이지.  풍성한 가을 지내기라는 소주제 안에서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유아를 고려하여 활동명과 활동시간을 정하란다. 활동명을 하라고? 내가? 기출에서는 활동명이 명시되었는데 이건 예상치 못한 부분이다. 선뜻 어떤 요리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사이 조용한 교실이 따각따각 볼펜소리로 채워진다. 따각따각. 쫓아오는 말발굽 소리 같은 재촉거림에 일단 펜을 들어 경주에 동참해 본다. 뭐라도 적어야 한다. 문제지 한 장에 꽉 채워진 조건을 빠뜨리지 않고. 그래, 출제자들이 노린 게 이거겠지, 당황하지 말자. 일일목표, 일과시간표, 활동명 외에도 연령 및 시간, 유의사항, 유아에 대한 평가, 활동에 대한 평가까지 써야 할 게 왜 이리 많은지. 출제위원들이 단단히 마음먹었나 보다. 손목 좀 아파보라고. 손목을 한 번씩 돌려주며 공란을 채우다 보니 1교시가 끝났다. 볼일 본 후 뒤를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한 기분이지만 어쩌랴 이미 끝난 것을.

 이제 나를 그다지도 긴장시킨 그놈, 심층면접시험과 마주할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면접 순서표_관리번호를 뽑는다. 한 교실에 32명의 수험생이 있고, 관리번호 순서대로 면접을 보고 바로 귀가한다. 제발 20번 안쪽이길 바라며 든든히 점심을 먹고, 안정액 반 병을 마신다.




수험번호순으로 관리번호를 뽑는다. 오전 내내 조용하기만 했던 고사실에 하, 헛, 휴 하는 짧은 숨소리가 연이어 이어진다. 내가 뽑은 관리번호는 23번. 아쉬운 번호이긴 하지만 32번이 아닌 걸 감사하며 23번째 책상으로 이동한다. 복용 1시간 이후에 효과가 있다는 안정액 반 병을 언제 마셔야 할지 가늠해 봐야지. 1~5번까지 면접 치르는 시간을 보니 내 차례는 3시가 넘어야겠기에 2시쯤 마셔야겠구나. 시계는 12시를 갓 넘었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이다. 책도 볼 수 없고, 끄적거릴 수도 없다. 그저 시간이 어서 흘러 내 차례가 오길 바랄 수밖에. 머릿속에서 면접 예상 문제를 꺼내서 소리 없이 답해보다가, 창 밖을 보며 넋을 놓고 있다가, 엎드려 잠을 자다가, 빵과 커피도 조용히 먹어본다. 화장실은 1명씩 다녀올 수 있다. 수험생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손을 들어 표하면 감독관이 순서대로 칠판에 관리번호를 적는다. 면접 순서에 임박했을 때 급하게 가야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나보다 먼저 면접 보는 선생님들을 앞서지 않게, 칠판에 적었다 지워지는 번호를 주시하며 손을 든다. 화장실도 무사히 다녀왔다. 남은 안정액도 마저 마셨다. 어제 그렇게 귀까지 크게 울리던 심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온하다.


관리번호 23번, 복도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가방과 외투는 지정된 자리에 놓고, 복도의 빈 의자에 앉는다. 1월 초, 시멘트바닥인 고등학교의 복도는 시베리아 저리 가라구나. 복도 감독관 선생님도 애쓰시네, 너무 추우시겠다는 생각이 잠시 드는 걸 보니 안정액의 효과는 백점 만점에 백십 점이다. 감독관의 안내에 따라 구상실에 입실한다.

구상실. 텅 빈 교실, 벽을 향해 홀로 앉아 답변을 구상하는 그 시간은 참으로 외롭다.

 교실에 어울리지 않게 벽에 붙어 있는 의자에 앉는다. 구상형 문제지가 책상 위에 뒤집어져 있다. 알림이 있을 때까지 문제지를 만지지 말라는 감독관의 단호한 목소리에 움찔하며 비치는 글자라도 있을까 싶어 두 눈에 힘을 주어 뚫어져라 쳐다본다. 응시자 유의사항을 듣고 문제지를 뒤집어 문제를 확인한다. 논술, 면접 대비로 수없이 듣고 써보고 말해봤던 놀이중심교육과정의 중요성과 관련된 문제다. 5분 동안 구상지에 주요 키워드를 적으며 답안의 뼈대를 잡는다. 이제 구상지를 들고 첫 번째 평가실로 들어간다. 구상형 문제는 구상지를 참고하여 5분 이내에 답변을 한다. 무표정한 3명의 면접관을 마주 보고 앉아 관리번호 23번입니다. 답변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작으로 이상입니다. 답변을 마치기까지 침착하게 잘 해냈다. 구상지를 유난스레 자주 보지도 않고, 세 명의 면접관과 균형 있게 눈맞춤하며, 시간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평가실. 3명의 면접관 앞에서 자신 있게 답변하기. 작아지지마.

 다음 평가실로 이동한다. 즉답형 한 문제와 추가질의. 책상 위에 놓인 문제지를 읽고 바로 답변을 해야 한다. 문제를 읽고는 있는데 읽히지가 않는다. 타이머의 남은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문제만 계속 읽고 있을 수는 없다. 달아나려는 정신줄을 붙잡아보지만 답변을 하다가 말문이 막힌다. 이런 경우도 예상하여 연습했습니다만. 실제상황이 될 줄이야. 잠시 생각하고 답변하겠습니다. 추가질의에 대한 답변까지 가까스로 마치고 진한 아쉬움을 안은 채 두 번째 평가실을 나선다. 두 번째 평가실에서 받은 충격 탓일까. 세 번째 평가실의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그래도 안정액 먹기로 선택한 건 참 잘했다며, 몇 가지 아쉬움이 있었지만 내일 수업실연 시험에서 만회해 보자며 마음을 다독인다.


 이른 저녁을 먹고, 독서실에 가서 수업실연 연습했던 자료들을 한번 더 보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재운다. 부족하기만 한 두 번째 평가실 답변이 계속 밟힌다. 숨죽여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다. 괴로운 마음도 쏟아낸다. 내일 이 시간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대문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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