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아파트〉(감독 강유가람)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를 파악하는 방식은 각자의 경험을 더듬어보는 것밖엔 없기에 설명하기도 애매하다. 일상의 공간을 둘러싼 사라지지 않는 냄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럭키, 아파트〉는 불쾌한 냄새에서 벗어나려던 선우가 냄새 안에서 자신과 닮은 한 사람의 삶을 발견하고 그 중심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희서와 선우가 어렵게 마련한 두 사람의 집은 외부에서 겪은 아픔과 어려움을 달래주는 공간이 아닌 오히려 갈등의 시작이 된다.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인 희서는 실적을 올려서 아파트 대출 이자를 홀로 갚는 동시에 두 사람의 생활을 꾸려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직장을 잃은 선우는 희서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 다친 다리를 이끌고 배달을 나간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빚을 내는 게 당연하고, 그 돈을 허덕이며 갚아나가야 하는데 과연 내 집이, 우리의 집이 정말로 우리의 것일까.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그 보금자리로 인해 오히려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게다가 대출 이자 이외에 아파트라는 공간 자체도 성소수자 커플인 두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기 어렵다. 긴장을 내려놓고 쉬어야 하는 공간에서조차 그럴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복도식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위와 아래, 옆으로 연결되어 있다. 선우와 희서가 사는 아파트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역시 같은 아파트의 다른 동, 다른 호수다. ‘내 집’이지만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점 하나로 타인과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연결은 ‘집값’을 토대로 아파트 입주민들을 운명 공동체로 만든다. 하지만 물리적 연결이 오히려 심리적 단절을 만들어낸다. 집은 휴식과 안정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투자의 수단이 되면서 입주민들이 재산으로써의 아파트를 지키는 데만 몰두하는 상황을 만든다. 설령 그게 누군가의 존재와 외로운 죽음을 지워버리는 일이라 할지라도.
희서와 선우의 집에서 언젠가부터 불쾌한 냄새까지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파트 밑에 집에서부터 배관을 타고 올라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다. 선우는 냄새를 해결하기 위해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밑에 집인 13층에 연락해 보라고 부탁하지만, 이후에도 냄새는 계속된다. 결국 연락이 안 된다는 아랫집에 선우와 관리사무소 직원, 동대표가 함께 찾아간다. 세 사람은 근원지로 갈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냄새를 마주한다.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느끼고 당장 문을 열어보자고 하는 선우와 달리 동대표와 관리실 직원은 덮어두고 싶어 하는 눈치다.
동대표는 냄새를 시작으로 입주민 한 개인의 삶에 다가가려는 선우를 ‘1410호’라고 부르며 아파트라는 재산으로 연결된 공동체에 피해를 주지 말라고 경고한다. 여기에는 홀로 숨을 거두고 오래도록 방치되었던 이를 향한 어떠한 애도나 존중도 없다. 고인의 육체는 그저 냄새를 풍기는 치워야 할 불길한 사물이 된다. 집요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유가족과 연락 두절로 청소를 할 수 없자 입주민들은 냄새를 무시하고 소문이 바깥으로 새어 나갈까만 불안해한다.
선우가 자신을 괴롭히던 냄새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 시점에서 냄새는 단순히 기분 나쁘고 불길한 미지의 무엇이 아니게 된다. 냄새는 분자고, 그 사람의 일부가 떠다녔던 것이라는 선우의 말은 지금껏 맡았던 냄새를 향한 불쾌함을 넘어선 애도와 슬픔이 담겨 있다. 선우의 적극적인 해석으로 냄새는 언어화되지 못한 고인의 슬픔, 억울함, 하소연이 된다. 아파트의 다른 이들이 모른 척하는 동안에도 선우는 이 냄새를,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언어화 되지 못한 신호를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제대로 읽어내려 한다.
선우의 행동은 어느새 세상을 떠난 이를 위로하고 내력을 밝히는 것으로 변한다. 선우는 홀로 숨을 거둔 13층 ‘화분 할머니’의 노트에 적힌 기록과 사진을 따라 한 허름한 식당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콩나물을 손질하는 중인 노년의 여성 정남을 만난다. 선우는 정남이 세상을 떠난 ‘화분 할머니’의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아본다.
‘화분 할머니’의 장례를 치러주고 싶다는 정남의 부탁을 받은 선우는 자신의 상황을 비춰볼 수밖에 없는 벽을 만난다. 경찰에게 정남이 고인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설명하는 일은 자꾸만 미끄러진다. 미지의 냄새를 설명하거나 전하는 일처럼. 경찰서에서 친구라고 했다가 다시 가족 같은 분이라고 고쳐 말하는 선우의 표정에는 불안이 서려 있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나 선희의 가족들에게 자신이 대충 선희의 가족 같은 친구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외부의 시선에서 자신들을 설명할 적절한 단어가 없어도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려서 살면 된다는 믿음은 죽음이나 장례, 희서와 선우의 관계를 짐작은 하지만 절대 인정하지 않는 희서의 가족, 아파트 공동체의 시선 같은 문제들 앞에서 흔들린다.
영화의 후반부, 선우는 ‘화분 할머니’의 짐이 전부 치워지기 전에 할머니의 연인인 정남으로부터 부탁받은 사진을 찾으러 간다. 서류나 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화분 할머니’와 정남의 관계를 증명해 줄 것은, 사랑의 증거가 되어줄 것은 생전 두 사람의 행복했던 시간이 담긴 사진뿐이다. 선우는 그들의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며 사진을 찾는다.
냄새에도 그저 집을 잘못 샀다고 반응하던 희서 역시 본인과 선우를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혐오 발언을 내뱉는 아파트 공동체에 격렬히 대항한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 앞에 선우처럼 냄새를 무시하지 않았던, ‘화분 할머니’와 함께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었던 동대표의 딸 은주가 나타나 도움을 준다.
냄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냄새를 없애기 위한 선우의 여정은 의외의 연대자를 만나고 피상적으로 독거노인이라 여겨지던 ‘화분 할머니’가 생전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가는 애도의 과정으로 확장된다. 선우와 희서는 함께 생전에 ‘화분 할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살아왔고 누구를 사랑했는지 기억하는 공동체가 된다.
오늘의 독립영화 리뷰
〈럭키, 아파트〉(감독 강유가람)
안소정 so.jung.an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