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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Oct 28. 2024

치밀하게 비밀리에 그리고  소심한 복수

아줌마의 우당탕탕 재사회화

원예강사로 일한 지 5년 차로 접어들고 있다.

처음 원예수업을 하게 된 곳은 서울의 영어유치원 방과 후 수업이었다.

기존 선생님께서 출산 준비로 인해 자리가 났고, 감사하게도 나에게 수업이 주어졌다.

인수인계를 받으며, 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니

참으로 강조를 하시더라. 기존 선생님 쉬시는 3개월까지라고

"(기존) 선생님 ~ 아기 낳고 일 안 할 거야? 3개월이면 되잖아~"

나 들으라는 소리인가?

"선생님~3개월만 잘 부탁해요~"

나 들으라는 소리였다.

집으로 오는 길 다짐을 했다.

내가 그 원장님께... 선생님이 수업 더 해주시면 좋겠다는... 그런 말 나오게 만들 거라고!!

그럼 난 웃으면서 거절해야지

처음에 3개월 말씀하셔서 다른 수업이 예정되어 있다고~~

흥!!



아이 둘 아줌마가 이렇게 다시 사회에 발을 내딛는 건 누구에게도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좀 더 다양한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매주 인천에서 고속터미널 꽃시장으로 발품을 팔며, 더 열심히 수업 준비를 했다. 예민함에 입맛도 없어서 다신 못 돌아갈 거 같았던 결혼식 날 그 몸무게가 되기도 하였다.

재료비는 늘 초과하였지만, 돈으로 사는 경험이라 생각하며 수업 준비에 열정을 쏟았다.

그 노력에 보상이라도 받듯, 아이들의 수업 반응이 좋아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한 아이들도 더 늘어났다. 수업 시간만큼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면서, 자연스레.... 긴장감이 풀어졌다.

사건은 늘 그런 때 일어나는 듯

드라이플라워를 사용하여 꽃 모자를 만드는 수업이었다. 수업 전 재료 세팅을 하는데 아불 싸~!! 부재료가 담긴 박스를 덜 챙겨 온 거다. 아직은 나만 아는 실수니 조용히 잘 넘어가 보자~했는데 그날따라 수업시간이 너무 어수선했다. 결과물이라도 좋으면 좋으련만, 완성된 모자를 보니, 내가 보아도 너무 초라했다. 후다닥 빨리 정리해버리고 싶어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던 그 순간에 하필 원장님이 들어오시고, 싸늘하게 바라보신다.

"선생님~오늘 만든 게 이게 다예요? 이런 식으로 재료비 아끼시면 안 돼요. 이러면 부모님 컴플레인 들어와요. 너무 성의가 없잖아~좀 더 신경 써 주세요"

이렇게 누군가에게 상사에게 혼이 나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근데 20대에 혼이 나는 거랑 40대에 혼이 나는 거랑은 쪽팔림의 차이가 있더라.

집에 가는 내내 내가 한심스럽고 마음은 모자만큼이나 초라했다. 좀 잘 챙길걸~ 좀 더 다른 디자인도 생각해 볼걸~ 한숨으로 땅이 꺼지게 후회를 하다가,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마치 모든 수업마다 내가 재료비를 아끼느라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말처럼 느껴졌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모든 게 다 잘못한 것처럼

밤새 이불킥을 하며 고민을 했다. 어쨌든 내가 잘못한 건 사실이다. 성숙한 40대처럼, 나이에 맞게 수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날, 원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 제가 어제 깜빡하고 준비물 박스 하나를 못 챙겨가서, 꽃모자가 보신 것처럼 제대로 완성이 안 되었어요. 믿고 맡겨주셨는데, 수업에 실수를 해서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 수업 좀 일찍 시작해서 모자 꾸미기 추가로 하고 완성할게요. 앞으로 수업준비에 더 신경 써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족한 부분은 언제든 바로바로 말씀해 주세요~" 몇 번씩 썼다 고쳤다 하며 미리 종이에 적어 놓은 글들을 떨리는 목소리로 줄줄 읽어 내려갔다.

다행히 원장님께서는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이렇게 전화를 한 부분에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휴우~~



그렇게 신뢰를 쌓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나 역시도 그전보다는 좀 더 깊이 있게 더 성의껏 수업을 진행해 갔다. 원장님께서도 더운 날엔 좀 더 시원한 교실로 바꿔주시기도 하고, 간식도 챙겨주시며, 하트 뿅뿅 눈빛으로 바라봐주셨다.

어느 날 원장님께 전화가 왔다.

"네~ 원장님!" 있는 힘껏 하이톤으로 받는.... 나

"아~ 선생님~ 혹시 내년에 우리 원에서 정직원으로 일할 생각 없어요? 선생님이 아이들도 너무 좋아하는 것 같고, 꽃 수업 하면서 그림책 읽어주는 것도 너무 좋고~"

속에서는 이미 오예~됐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원장님~ 우선 40대 아줌마한테 이렇게 정직원 제안을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그런데 저희 둘째가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서요. 아직은 손이 좀 더 갈 때라... 제가 정직원을 하기엔 어려울 거 같아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들 (나 연습했었나??)

와우!! 속이 뻥!!! 맥주를 안 마셔도 묵혔던 트림이 나오는 거 같은 시원함.




그날은 원장님을 처음 만난 날이자 통쾌한 복수에 성공한 날로 기억되리라.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싶었던 민망함, 불편함, 억울함을 꾹꾹 눌러 담고 정직원 제안이 오도록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남들이 뭐 라건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내 일에 최선을 다했고, 애정을 쏟았던 그 시간들 덕분에 정직원 제안이라는 제대로 된 인정을 받고야 만 것이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조심스러움, 내 두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직업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하나가 되어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마다 한번 더 웃었고, 한번 더 움직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라는 아줌마가 기특해 보였다.

멋지다, 양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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