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선 아이, 슬픈 광대가 되다
"언니, 그쪽 그만 보고 여기에 집중해요."
불안한 시선으로 아이만 바라보고 있던 내게 그녀의 탄산수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걱정 가득한 눈빛을 숨기려는 듯 안 그래도 밝은 그녀의 목소리가 2옥타브는 더 올라갔다.
나는 엄마들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려 했지만, 자꾸만 돌아가는 시선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1학년이 된 아이는 하교 후 친구들과 놀이터로 직행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엄마들은 한쪽 어깨에 아이들의 책가방을 맨 채 빠른 걸음으로 부지런히 아이들의 뒤를 따른다.
'뛰지 말고 걸어가라, 신호를 잘 보고 건너라, 딱 한 시간만 놀아야 한다'
해맑게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엄마들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따라붙는다.
누리(아들의 예명)도 친구들 틈에 껴서 놀이터로 달려갔다.
사실 누리는 놀이터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유독 겁이 많아 돌다리 두드리듯 미끄럼틀을 꼼꼼히 확인해 보고 타야 했지만, 그 마저도 절반 이상의 미끄럼틀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시소는 엉덩이가 푹신한 특정 놀이터의 것만 탔고, 그네는 언감생심이었다.
아주 약하게 밀어도 무섭다고 금방 엉덩이를 쏙 밀어냈기 때문에 놀이터는 아이와 나의 실랑이 장소였다.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놀이터는 아이들의 하교 후 고정 코스가 되었다.
그곳에서 각자의 자유시간만큼 놀고 난 후, 제각각 흩어져 각자의 일정을 소화했다.
놀이터를 좋아하지 않던 누리도 친구들 틈에 껴서 그간의 설움을 씻어내듯 열심히 출근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신나 있던 누리와는 달리 친구들은 그런 아이가 달갑지 않았나 보다.
"이모, 누리가 또 규칙을 안 지켜요. 가서 혼내 주세요."
"누리 지금 풀을 따서 먹고 있어요."
"누리가 주머니에 계속 돌을 집어넣고 있어요."
친구들의 민원 신청이 쏟아졌다.
누리는 자신만의 놀이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이의 창의력은 평범함의 범주를 벗어나 친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이는 놀이를 만든 후 친구들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평화는 깨진다.
자신이 만든 놀이니 마음대로 규칙을 정하고, 본인이 유리한 쪽으로 매번 규칙을 바꾸려는 아이 때문에 친구들의 불만이 쌓이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소외된 아이는 주변을 배회하며 돌을 줍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냥 굴러다니는 한낱 돌멩이였지만, 아이에게는 하나하나 의미를 담고 있는 보석이었다.
주머니가 불룩해질 만큼 돌을 담고 나면 그대로 집에 가서 자신의 보물창고에 돌멩이들을 쏟아냈다.
나는 주기적으로 보물창고의 외로운 보석들을 비워내야 했다.
그러다가 친구들의 관심이 멀어진다 느낄 때쯤 아이는 기이한 행동을 했다.
놀이터 옆에 있던 나뭇잎을 뜯어서 질겅질겅 씹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아이를 쳐다보았고,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줄도 모르는 아이는 그저 친구들의 관심이 좋은 슬픈 광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니 나는 놀이터에서 맘 편히 다른 엄마들처럼 수다의 바다에 빠질 수 없었다.
나라고 왜 그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지 않았겠는가?
소싯적, 노는 것에 한 번도 발을 빼는 일 없었던 이 몸이 뚝딱 차려진 밥상에 요리조리 숟가락 놀리기 신공만 보여 줘도 다들 까무러쳤을 텐데.
나도 걱정 없이 그들처럼 바다에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꼬마 민원인들을 상대해야 했기에 마음 편할 새가 없었다.
민원 처리를 즉시, 그리고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아이에게 후폭풍이 몰려올 것을 알기에 나는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했다. 꼬마 민원인들에게 대신 사과를 하기도 하고, 멀리서 풀을 뜯고 있던 아이를 소환해 사과를 시키기도 했다. 어떤 날은 같이 놀이에 껴서 규칙을 정해 주기도 했고, 관중들 앞에서 아이를 여러 번 혼내기도 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탓에 아이는 여러 번 무대에 서야 했다. 나는 재빨리 부정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아이를 무대에 세워 친구들에게 사과하게 했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이를 애써 무시했다.
놀이터의 불청객이 된 아이와 타인의 시선에 매몰된 엄마는 서로에게 조금씩 구멍을 내고 있었다.
매일 밤 아이를 재워놓고 아이의 사회성에 대해 고민했다.
남들보다 창의적이고 말을 잘하는 똘똘한 아이였지만, 또래들 틈에 쉽게 어우러 지지 못했다.
어른과의 대화는 편해 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늘 한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다.
본인이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고, 상대가 자신이 정한 틀을 넘어가면 어김없이 지적을 하는 내로남불 그 자체였다.
그리고 아이는 늘 억울해했다. 보편적인 감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본인의 불안함을 이상한 방향으로 해소하려 했다.
하지만 아이는 선생님들께는 늘 이쁨을 받았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집중했고, 선생님이 정한 규칙을 잘 지키고 맡은 과제도 뚝딱 해냈다.
친구와의 갈등 상황에서도 선생님이 설명을 하면 납득하고 친구에게 먼저 사과하기도 했다.
해맑고 순수한 면이 많아 선생님들에게 사랑받는 아이였다.
아이의 사회성 문제로 출발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ADHD일 수 있다고 나왔다.
내가 아는 ADHD는 수업 시간에 집중 못하고 산만하며, 자리를 이탈하기도 하고 과잉행동으로 누가 봐도 문제가 있어야 하는데 내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도 선생님들께 비슷한 피드백을 받은 적도 없었다. 단지 친구들과 트러블이 종종 있어 주의를 주고 화해를 했다 정도의 평범한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과연 평범했을까?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해서 종종 갈등을 일으키고, 어른들의 중재로 화해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내 아이의 경우는 미세하게 달랐다.
일단 인지적 왜곡이 있었다.
자신의 행동과 상황에 대한 객관적 파악이 되지 않아 늘 잘못을 상대 탓으로 돌리곤 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한 자기 방어가 아니라 정말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비슷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인지적 왜곡이 있어 늘 억울했고, 훈육을 받더라도 오롯이 흡수되지 않았다.
거듭되는 고민 끝에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스러웠을 때라 진료 바로 다음날 풀배터리 검사 취소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5시간에 걸친 검사가 끝이 났고, 몇 주 후 남편과 나는 소아정신과 전문의에게 아이의 병명을 들을 수 있었다.
"ADHD입니다."
"항목 간 차이가 많이 나는데, 제 의사 생활 중 이렇게 차이가 많은 친구는 처음 봤네요."
아이는 웩슬러 4판 검사를 했고, 언어이해, 지각추론, 작업기억, 처리속도 4가지 항목에 점수가 매겨졌다.
언어이해와 지각추론은 우수에서 최우수 구간으로 지능적으로는 높은 편이었지만, 작업기억은 평균, 그리고 처리속도는 경계선이 나왔다. 가장 높은 항목과 가장 낮은 항목 간 편차는 60점에 가까웠다.
웩슬러 검사는 현재 5판까지 나와있는데, ADHD에 대한 진단을 내릴 때 각 항목 간의 편차를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항목 점수들이 큰 편차 없이 고를 때 가장 효율적으로 두뇌를 쓸 수 있고, 우리 아이처럼 항목 간 편차가 클 경우 그에 따른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아이는 처리속도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불안과 아이의 낮은 처리속도 때문에 운동신경이 좋지 않고 놀이터를 무서워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높은 입력값 대비 낮은 출력값 탓에 문제해결능력이 떨어졌고, 덕분에 친구와의 갈등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처가 부족했다.
정서 검사 결과상에서는 아이에게 위축감과 우울감이 발견되었다. 아이가 스스로 작성한 자기 보고식 검사에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고, 대인관계 내에서 안정적인 적응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했다.
아이는 타인의 관심이나 인정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특성이 강한 유형인데 현재는 충분히 수용받지 못한다고 느껴 위축감과 불안감이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몇 장의 종이를 받고서 미로 같았던 아이의 세상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동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무대 위에 혼자 서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대본도 없어 혼자 대사를 틀렸을 것이고, 다음 장면이 그려지지 않아 초조했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야 할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대에 서게 됐을 뿐인데 관중은 아이를 향해 손가락질했고, 아이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롯이 그것을 감당해야 했다.
"친구들이 더 많아지는 소원을 가지고 있어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행복하잖아요."
검사지에 적혀있던 아이의 속마음을 보고 놀이터의 불청객이었던 지난 시간들이 무성의 연극처럼 스쳐 지나갔다.
볼 때마다 불안하고 마음이 아파 각 장면에 아무런 대사도 입히지 못한 채 슬픔으로 얼룩진 연극.
그리고 무대 위에서 혼자 고군분투 중인 아이가 비로소 보였다.
어떻게든 관심받고 싶어서, 친구들 틈에서 소외되기 싫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엄마의 날 선 눈빛과 친구들의 차가운 무관심이었던 아이.
아이에게 낮은 미끄럼틀이 되어 주고 무섭지 않은 그네가 되어줬어야 할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