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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은벼 Nov 09. 2024

멕시코 국제학교의 명과 암

채워지기 시작한 마음상자, 비움 뒤 채움

"English, or Spanish?"



남편이 멕시코로 가게 되었다 했을 때 나는 내심 영어와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아이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썰물과 함께 빠져나간 자리에 서서 뿌듯하게 아이를 지켜볼 나 자신.

최근 유행하는 저 릴스를 보며 "Anything is OK."를 멋들어지게 내뱉을 아이를 상상하며 지금 하는 고생쯤은 먼 미래에 잘근잘근 웃어넘길 안주거리가 되겠거니 생각했다.


더구나 내 옆에는 살아있는 표본이 있었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해외 여기저기에 많이 살았는데, 그중에서도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 살면서 국제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보니 모국어인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스페인어까지 구사했다. 비밀이지만 사실 내가 남편에게 가장 반했던 포인트도 그의 외국어 실력이었다. 

빛바랜 폴로 점퍼를 입고 쟌스포츠 가방을 둘러맨 채 영어 교양시간 문 옆자리에서 존재감 없이 수업을 듣던 그. 

문짝 남이었던 그가 유창하게 영어를 내뱉는 순간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적어도 그때는.


부풀어 오를 대로 올라버린 나의 기대감은 아이가 멕시코 학교에 입학한 순간 바람 빠진 풍선이 되었다.








멕시코에는 사실 국제학교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본래 국제학교는 해당 나라 국적을 가진 이들의 입학을 제한하고 말 그대로 타국에서 온 학생들로 이루어져야 하는 곳이다. 대륙당 쿼터제를 적용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그 원칙을 지키는 국제학교는 사실상 많이 사라졌고, 멕시코 역시 국제학교의 탈을 쓴 이중언어 사립학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멕시코의 공교육은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에 중산층 이상은 보통 자식을 이러한 사립학교에 보낸다. 그리고 사립학교는 이중언어 학교를 표방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선생님들 이중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리도 그 도시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보낸다는 사립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에서 봤던 화상 인터뷰와 테스트로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데 아이는 영어는 정규반, 스페인어는 기초반으로 배정되었다.

영어는 한국에서 피땀눈물 흘리면서 배워온 터라 수업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지만, 스페인어는 낫 놓고 A, B, C, D..(아, 베, 쎄, 데라 읽는다)도 모르는 상태니 당연히 기초반으로 자동 배정이다.


수업은 절반은 영어, 나머지 절반은 스페인어로 진행되었다.

영어와 스페인어 모두 기초반으로 배정된 학생들은 정규반에서 진행하는 예체능 수업은 들어갈 수 있으나, 나머지는 모두 기초반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릴 때부터 이 학교에 다녔던 대부분의 멕시코 중산층들은 기초반에 있을 리 없다. 따라서 기초반은 타국에서 온 아이들로 채워지는데, 이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다.


가끔 외국인들이 있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정규반으로 이동한다. 특히 유럽이나 북미에서 온 친구들은 스페인어만 기초반으로 배정되기 때문에 빠르게 정규반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기초반은 말 그대로 한국 아이들의 점령지가 된다. 여기저기 한국어가 난무하고, 먼저 입성한 아이가 새로이 입성한 같은 핏줄을 도와준다. 도와주기만 하면 다행이다. 고만고만한 도토리들끼리 서로 자기 키가 크다고 우기거나, 한 뼘도 차이 나지 않는 실력을 뽐내며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게 한국인이 점령한 기초반에 점처럼 흩뿌려져 있던 다른 국적의 아이들은, 오히려 한국어를 배우는 지경에 이른다. 한국어로 된 욕쯤은 거뜬히 알아들으며, 술래잡기하면서 '빨리빨리' 정도는 원어민 뺨칠 만큼 정확한 발음을 구사한다.



그다음은 비용의 역설이다.



누리의 경우는 스페인어만 기초반을 들었지만, 해외가 처음인 대부분의 한국 아이들은 영어와 스페인어 모두 기초반으로 배정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규반 수업료와 기초반 수업료를 모두 지불해야 한다. 

재미있는 점은 기초반 수업료가 더 비싸다는 것이다. 다른 학교의 사정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아이가 다녔던 학교는 그랬다. 따라서 기초반을 탈출하는 것은 한국인 모두의 숙명이자 피가 터지고 살이 찢어져도 도달해야 할 공동목표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피에 진하게 흐르고 있는 시기와 그 자매품인 질투를 목도한다.



"이번에 A회사 4학년 첫째 딸이 정규반으로 갔다며?
온 지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빨리 나갈 수 있어?"


"계속 학교에 항의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메일 쓰면서
담당자를 좀 귀찮게 했대."



A회사 첫째 딸의 기초반 탈출 소식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온 한국 커뮤니티에 퍼져 며칠을 들썩인다. 그러다 멀쩡히 지내고 있는 B회사 아들이 갑자기 소환된다.



"B회사 둘째 아들 말이야, 온 지 3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기초반이래."
"학교에서 허구한 날 성적 신경 쓰라는 메일이 온다던데?
그 집 엄마는 제대로 신경 쓰고 있는 거 맞아?"



조용히 학교를 다니던 B회사 둘째 아들까지 같은 절구통에서 실컷 방망이질당하고서야 소문은 살짝 가라앉는다.


정규반 아이들의 두 배 이상의 비용을 내고 있는 한국 아이들을 학교가 쉬이 보내줄 리 만무하다.


학교는 매년 기초반 탈출 과정을 심혈을 기울여 꼬아댔다. 페이커가 와도 울고 갈 만큼 심도 있게 퀘스트를 단계별로 쌓아놓고 나갈 수 없는 이유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이렇게 초등 아이들이 열심히 퀘스트를 깨는 데 집중하고 있을 때, 고등 아이들은 반대로 어떻게든 기초반을 나가지 않기 위해 버틴다.


고등과정은 어느 나라, 어떤 학교든 점수받기가 쉽지 않고 난이도가 어렵다. 

중학교 때 멕시코로 온 한국 친구들은 영어와 스페인어 모두 부족한 상태로 수업을 듣다 보니 여기저기 구멍이 생긴다. 구멍이 생긴 상태로 고등학교에 올라가게 되고 그 과정을 정규반에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정규반으로 가는 한국 아이들도 있지만, 거주 기간이 정해져 있는 주재원 아이들의 경우에는 갈 수 있더라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점수 때문이다.

기초반에 있으면 정규반보다 난이도가 쉽고 점수를 후하게 준다. 따라서 내신 성적을 잘 관리할 수 있게 되고, 이는 한국으로 돌아가 3년 특례로 대학교를 갈 경우 유리하게 적용된다.



"지난번에 졸업한 C회사 첫째 딸 있지?
그렇게 공부 안 한다고 소문이 났는데
이번에 인서울 대학교를 갔대."
"기초반에서 딱 성적만 관리했나 봐.
영어나 스페인어도 잘 못 한다는데 운이 참 좋았네."



C회사 첫째 딸의 대학 입학 성공기는 한국인들의 구전을 타고 길이길이 전해져 매뉴얼이 된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허술한 퀘스트마저 깨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 가려는 한국 아이들로 인해 학교 관심대상에서 제외된다.



가장 큰 문제는 기존 학생들과 조화가 쉽지 못하다는 점이다.



중산층 이상의 멕시코 부모들의 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다. 어느 회사의 아들, 딸은 물론 스페인에서 온 유명 가문의 후손인 경우도 많다. 그들이 소유한 회사는 단순 영리 회사를 넘어 가스나 수도, 전기 등 필수 유틸리티와 관련된 사업인 경우가 많아 그들이 가진 것은 강남 부자 수준이 아닌 것이다.

대부분 백인계와 섞인 메소티소들로 상류층이라는 특권 의식이 있다 보니 지구 반대편에서 온 검은 머리 한국인은 그들이 상대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실로 반 단톡방에서 한국인들이 철저하게 패싱 당해 참고 참다 나 포함 몇 명이 불만을 제기했지만, 룸맘은 개의치 않는 듯 무시했던 일도 있었다.


따라서 멕시코 아이들 틈에 낄 수 없는 한국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끼리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간혹 뛰어나게 팀 스포츠를 잘하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현지 아이들의 인정을 받고 인싸로 등극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타고난 피지컬이 달라 그들이 가장 열광하는 축구에 낀다는 것은 선택받은 자의 왕관일 뿐 대부분의 한국 아이들은 농구나 테니스, 수영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떠밀리게 된다.








사회성이 부족한 누리 역시 그러한 한국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대신 '영어'라는 무기를 이미 장착한 상황이라 영어 수업 시간만큼은 마음껏 발표하고 의견을 내면서 주도를 해나갔다.

처음에 누리가 영어 정규반이 되었을 때 여기저기에서 말이 많았다고 했다.

한국에서 바로 온 애가 얼마나 영어를 한다고 정규반을 갔느냐는 둥, 한국 아이들이 문법에는 강해도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겠냐는 둥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이 둥둥 떠다녔다.

하지만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소문들을 하나씩 잠재웠고, 스페인어 기초반에서도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며 한 해의 마지막을 좋은 점수로 마무리했다.


물론 중간중간 왜 일이 없었겠는가.

이곳에서도 나는 몇 번을 머리에 띠를 두르고 투쟁했고, 몇 번을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잘한다고 느끼는 것이 하나하나 쌓여가는 아이 마음속 일기장을 훔쳐보며 나는 또 고개 숙일 힘을 얻었다.


멕시코로 떠나기 전 담임 선생님과 대면 상담을 하던 자리에서 아이가 직접 썼던 기록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잘하는 것에 '만들기' 하나가 덩그러니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수없이 고민했을 아이의 마음처럼 그 옆으로 드넓은 여백이 보였다.

채우지 못하고 비워져만 가는 아이의 자신감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음속에서 애잔한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날은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가는 발걸음 자리자리마다 잿빛으로 채워졌다.


잿빛이었던 세상을 떠나온 후 비로소 아이는 비어 가기만 했던 자신의 세상을 다시 채울 힘을 얻었다.


무차스 그라시아스(Muchas Gracias, 매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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