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랬다. 남자아이 초4면 정글에 입성하는 거라고. 그런데 어떡하지? 내 아들은 먹이사슬의 제일 아래
거북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초4가 되면서 맑기만 했던 거북이의 눈빛이 변했다. 화도 많고, 짜증도 많고, 슬픈 표정도 많은 어두운 꼬부기.
걱정이 되어 이것저것 물어보면
“엄마, 애들이 나보고 순진해도 너무 순진한 게 문제래요”
한숨과 함께 방문이 쾅 닫힌다.
뭐가 문제지? 스마트폰 안 사준게 문제인가? 그래서 애들이랑 폰게임 못하는 게 문제인가? TV 안 보여주고 키워서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가? 유튜브를 보여줘야 하나? 카톡을 깔아줘야 하나? 뭘 더 나쁘게
해줘야 하지?
거북이는 가끔씩 창가에 붙어 친구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우두커니 내려다본다. 하지만 굳이 내려가지는 않는 것은 왜일까 싶어 같이 가서 놀다오랬더니
“어차피 쟤들은 나 안 끼워줘요”
저릿한 무엇이 심장을 아리게한다. 그때부터였을까. 아이를 향한 나의 시선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한 것은.
좁은 아파트단지 안에 살면서 녀석의 친구들과 종종 마주치는데 거북이가 인사하면 받아주는 친구도, 아예 모르는 척 지나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면 거북이는 애써 뻘쭘함을 감추며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갔다. 이미 이런 상황은 여러 번 겪어 보았다는 이야기겠지.
너는 대체 학교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니?
불안 불안한 침잠의 시간 속에 결국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려왔다.
“찬이엄마,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우리 소연이가 찬이가 맞는 걸 봤대…”
쿵. 세상이 내려앉았다. 뭔가 뜨겁고 팽팽한 것이 등줄기를 타고 온 몸을 관통했다. 그토록 바랐는대. 제발 그 일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제발 내 기우이기를. 제발 제발 아니기를.
소연엄마를 필두로 현우 무리가 거북이를 때리고 놀린다는 잇따른 다른 엄마들의 제보전화들.
더 기가 찬 건 이 현우라는 녀석이 우리 거북이와 서로 좋아 죽고 못 사는 사이였다는 거다. 3학년 때 옆 반이었던 현우는 거북이를 좋아해 주말에 집에도 자주 놀러 왔었고 생일파티에도 초대했었다. 4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이 되었다고 부둥켜안고 좋아했었던 녀석들이였는데.
그런데, 그런데 학폭이라니!!!
거북이를 1학기 내내 괴롭히고 때렸단다. 선생님이 안 볼 때만 교묘히. 피가 거꾸로 용솟음 쳐 눈 앞까지 까매진다. 나의 느린 거북이는 인기가 많은 그 친구와 싸울 용기도 없었고, 왕따가 될까 봐 싫다고도 못했고,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면 고자질쟁이가 될까 봐 참았단다. 친구들은 다 자기를 싫어하고 무시한다며 자신은 "필요 없는 인간"이라는 가시 돋힌 말로 자기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내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는 아이를 보며 무너지는 가슴을 다잡기 위해 풀어지는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그래도 거북이에게현우가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던 멍청한 나 자신을 쥐어뜯어 버리고싶었다.
이제 문제를 알았으니 해결해야 했다. 난 엄마니까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 내가 아이가 아닌데 내가 어떻게 해결을 한다는 것인가.
“엄마가 선생님한테 이야기해 줄까?”
“엄마, 내가 언제까지 애기인 줄 알아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절대 선생님께 전화하지 말라는 이 녀석이 가장 큰 문제. 거북이 주제에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하는데 알아서 하는 것이 하나도 없지않나. 오 마이 하나님 부처님.
이럴 때 떠오르는 건 유튜브의 여러 영상들. 그 많은 교육영상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학폭 얘기는 없다. 어떻게 하면 서울대에 합격하는지에 관해서는 수십 개가 넘는 영상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해가며 정신을 사납게 만들더니, 학폭은 없다. 당황한 나무늘보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며 유튜브의 바다에서 헤매는 동안 거북이의 상태는 점점 더 바닥을 향해가고 있었다. 표정은 어두워졌고, 자기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얼마 되지 않던 자존감 마저 내팽겨 치고 있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누가 이 나무늘보 좀 도와주세요.
어쩔 수 없이 거북이 몰래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알아보니 현우라는 친구는 이미 학폭 처분을 받은 아이였고, 심지어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란다. 거북이가 알아서 해결하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친구임이 분명했다. 이 사실을 거북이에게도 알렸다. 도움을 요청하고 문제를 마주하는 일도 배워야 하는 일이니까. 선생님께서는 현우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거북이는 이를 거부했다. 그냥 떨어뜨려 만 달란다. 아마 현우와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기가 싫고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소심함까지 나를 닮을 필요는 없는데.
거북이의 학폭 사건은 현우와 거북이를 최대한 교실에서 떨어트려 놓을 것과 또다시 폭력 발생 시 학폭 신고를 할 것을 현우의 부모님께 경고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우리 거북이는 참 잠이 없다. 것도 나를 닮았지. 그래서 아빠와 동생을 재워놓고 우리는 둘이서 늦은 밤까지 소곤소곤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학폭사건 동안 이 녀석은 내게서 등을 돌리고 누워버렸다.
“엄마,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
눈물 가득한 말을 내놓으며 거북이는 뒤돌아 누웠다. 그 등을 차마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 쓸어주려 뻗다만 손을 안타깝게 돌릴 뿐이었다. 눈앞이 뿌애지지만 들켜서는 안 된다. 엄마의 숨소리 만으로도 눈치를 채는, 엄마에 대한 것만큼은 거북이가 아니라 예민한 토끼니까. 그 외로운 등에 대고 나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들. 아들은 이제 다 컸으니까 어떤 일이든 혼자 해결하고 싶지?
그런데 있잖아. 세상에는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
어쩌면 혼자 해결하는 것보다 도와달라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
엄마는 그랬거든. 아들은 엄마를 많이 닮았으니까 아들도 그럴 거야.
싸우는 것도 그래. 엄마도 사실은 잘 못 싸워. 아빠랑만 잘 싸워. 대부분은 참아.
왜냐면 싸우는 상황이 너무 무섭고 견디기가 힘들거든.
아들도 그렇지?
그런데 있잖아. 맞서지 않으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어.
한 번 내지르지 않으면 아무도 내가 어떤 기분인지를 몰라. 그건 안 되는 거야. 나의 감정도 소중하니까.
그게 너무 어려우면 엄마나 아빠나 선생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거야.
우리 아들은 아직 학생이니까 도움 받을 수 있는 거야.
그러라고 학생인 거야. 도움 받으라고. 배우라고.
그러니까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너는 지금 너무 잘 크고 있어. 잘 배우고 있어.
아들의 오늘의 감사는 뭐야?
엄마의 오늘의 감사는 우리 아들이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컸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