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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센트 Nov 11. 2024

<아들의 등골 VS 며느리의 억척>

억척 한번 떨게요.



-“야야! 니 꼭 이래까지 해야 되나?” feat. 시월드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엄마표 영어>를 시작했다. 엄마표는 ‘모국어 습득 방식’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매일 영어의 환경에 노출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정해진 분량의 듣기와, 따라 말하기, dvd 영상 시청 등 해야 할 루틴들이 있다. 나는 여행을 가도, 심지어 명절이 되어도 2시간가량의 루틴을 악착같이 지켰다. 외국어를 습득할 중요한 시기인데 명절이 대수랴? 차안대를 하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영어에 실패란 없다. 엄마의 포기만 있을 뿐.’
을 외치며.....


그렇게 잘 실천한 지 2년째였던 여름방학에, 가족 여행으로 떠난 여수에서 사건이 하나 생겼다. 돌산공원에서 크리스털 케이블카도 타고 전라도의 맛있는 음식에 황홀해하던 둘째 날 밤.  


“야야!! 니 꼭 이래까지 해야 되나?”시어머니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까랑까랑한 대구 사투리는 나를 향해 점점 더 가까이 뻗어 왔다. 찰나의 순간에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을 스캔해 봐도 시엄니의 심기를 건드릴 일은 없었다. 내가 왜 고성의 타깃이 된 거지? 어리둥절했다. 아버님과 시누이와 나누던 삭힌 홍어에 대한 찬반 토론도 그대로 스톱 됐다.  


"아들이 쉬지도 몬하고 이게 무쓴 여행이고! 내 어제는 참았는데 오늘 또 시키나.
참 억척이고 유별나다"


역시 MBC 합창단 출신의 성량은 죽지 않았구나. 삭힌 홍어가 코를 찌를 때처럼 정신이 혼미했다. 남편이 늘 진저리 치던 화통 삶아 드신 목소리다.  

 

에서 뒹굴며 영어 챕터 북 CD 듣기와 페파피그 DVD를 시청하고 있던 아이들을 보고 시어머니가 성이 나셨던 거다. 내 손녀들이 여행 와서도 힘들게 공부하는 꼴을 못 보시겠단다. 그날 나는 영어 공부 때문에 애들 잡는 유별난 엄마로 공식 선포되었다. 말없이 나를 지켜보시던 아버님과 “에휴.....”라고 짧은 신음을 내뱉는 시누이의 눈총에 나는 앉은 채로 밀랍인형처럼 굳어 버렸다.  일명 <여수 밀랍인형 사건>이다.

딸을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매년 1월에 미국에서 두 달씩 보내던 시누이 눈에는 내가 얼마나 궁상스러웠겠나.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어쩌면 더 보란 듯이 엄마표를 이어갔다. 내향형의 똥고집이 더 무섭다는 걸 아시는가. 티 안 나게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학습’이 아니라 ‘습득’의 환경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알려하지 않으신다. 어머님은 남편이 중학교 때부터 과외를 붙이셨는데 습득이고 나발이고 나처럼 전문가한테 맡기라는 무언의 압박을 시전 하셨다.    


아, 그 과외비 아껴서 S전자 주식 사주셨어야죠. (그때 시세와 2018년 시행된 S전자의 50:1의 액면분할을 고려해도 50배 이상의 수익률)


 “그리고요 어머니~ 외 벌이로 영어유치원 다니고 꼬박꼬박 미국까지 보내면 아들 등골 휘어요~ 차라리 며느리 유별난 게 낫지 않으시겠어요?”      



-내 동기 연봉을 당신이 왜 궁금해하는데?      

내가 엄마표 학습을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전 직장 동료들의 연봉이다. 나는 이제 경단녀라는 말조차 아득하게 느껴진다. 난임과 유산을 반복하던 힘든 시기가 있었다. (이게 또 에세이 몇 편은 나올만한 역경의 스토리다)

그땐 2세를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기에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며 살았다. 외 벌이로 살림을 하는 게 당장의 불편함은 없었는데 문제는 나의 자존심.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해갔다.  


나는 증권회사를 다녔었다. 내가 육아에 전념하는 10년 동안 선배들은 간부가 되고, 동기들은 팀장이 됐다. 부러웠다. 새로운 직책으로 인한 복잡한 업무, 그 보다 더 복잡한 사내 인간관계, 허송하게 뱃살만 찌우던 회식마저 하소연하는 동기들이 부러웠다. 지긋지긋하게 겪었던 직장인의 비애가 다시 그리워질 줄이야.


오랜만에 보는 모임에 아무리 떼 빼고 광내고 간들 뭐하나. 즐거움도 잠시뿐, 혹여 부러운 눈빛이라도 들킬까 고개 들지 못했다. 힘들면 그만두고 쉬라는 텅 빈 위로를 건네며 줄줄 흐르는 쿼사디아 양념을 닦았다. 여기저기 닦으며 고개 숙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리고 모임이 있던 날 잠자리에 들 때면 신랑은 항상 묻곤 했다. “미경 씨는 연봉 또 올랐데? 이번에도 연말 성과급 대박이래?” 증권회사는 금융업계에서도 연봉이 높은 편이다. 내 동기 연봉을 신랑이 궁금해하는 이유는 뻔하다. 나만큼 나의 퇴직을 아쉬워하는 거겠지. 불꺼진 방에서 남편을 향해 눈을 흘길 수 있어서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이던지.


시세가 폭락해 반토막난 잔고를 들이대며 눈 부라리던 개진상 손님에게, 제 탓은 아니지만 일단은 죄송하다며 무조건 고개 숙였던 날들이 떠올랐다. 순간의 착각일지 모르겠으나 모든 게 낭만 있게 느껴졌다. 샐러래맨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쥘 수 있다면 이 정도는 훈장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전업주부라는 타이틀로는 어깨를 당당히 펴기 힘들구나.




전업주부의 업(業)  

내가 엄마표 영어를 선택한 이유 중에는 상해 가는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이왕 키우는 거 잘 키우고 싶었다. 막연한 다짐이 아니라 육아를 직업처럼 생각해 보기로 했다.

회사가 직원들의 실적도 독려하고 복지도 챙기는 것처럼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케어하고 싶었다. 커리어가 됐든, 짬밥이 됐든, 내 안에 숨 쉬고 있을 직업정신의 본능을 일깨우리라!


그리하여 경단녀가 짬밥을 발휘하게 될 첫 번째 학습은 ‘영어’였다. 돈을 안 쓰는 것도 돈을 버는 거며 ‘함께 공부하는 엄마’라는 타이틀도 좋았다. 자녀교육이 전업주부에게 숙명과도 같은 과업이라면 이왕지사 잘해보고 싶었다.

‘내가 진짜 올케어 한다. 공부도 챙기고 인성도 챙길거고, 취미 생활도 수준급 이상으로 만들 거고 두고 봐,  내가 키랑 외모도 성공시킬 거야.’ 외모를 성공시킨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그때 나는.......  


                                진.심.이.었.다



그런 진심으로 엄마표를 실천한 지 올해로 9년 차....



그래서 잘 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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