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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랑떡 Dec 21. 2024

우리 집 1급 비밀

나의 대나무숲 사수 대작전.

우리 집엔 1급 비밀이 있다.

그건 바로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거.

라곤 가나다라 읽는 것 외에 1도 모르는 내가 쓴다는 거.

1급 비밀은 나의 보물 1호인 햇님이만 안다.

자네~ 1급 비밀 지킬 수 있는가? 누구한테든 발설하면 안 되네.
발설 즉시, 우리 관계는 끝이야!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대상이 가족이든 친한 친구이든 우리는 항상 이야기로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듣고 싶어 한다. 나 대화를 함께 할 대상을 고르는 것도 일이다.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은 자연스럽게 말하기 쉽지만 치부를 드러내거나 숨고 싶은 이야기는 아무에게나 툭 터놓고 풀어놓기 힘들다. 그다음 시간, 장소를 상대방과 정하는 것도 별책부록처럼 따라 나오는 번거로운 일이다. 

글로 쓴다는 건 한결 편하다. 노트북이나 필기구와 종이만 준비된다면 시간, 장소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 보따리를 풀 수 있다. 브런치에 나의 대나무 숲을 만들었다.  마음껏 내 마음의 소리를 외칠 수 있는 곳.

반지의 제왕에서 나온 골룸이 그랬던가.  My precious! 절대반지처럼 소중한 곳이 이곳이다.

고로 난 지켜야 한다. 나의 대나무숲을.

(단, 여기서 문장과 문장사이, 문맥이 맞지 않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만 그건 나중으로 미루기. )

일단 쓰고 보면 안 보이던 길이 보인다.

 

일단 막 쓰자, 대충 쓰자'라며 스스로 달래고 긴장을 풀어주면서 썼어요. 완벽한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완벽해지려는 노력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봅니다.  
은유-글쓰기 상담소


브런치 작가로 이끈 건 그 이름도 유명한 이. 은. 경 선생님.  ( 갓~이은경~! 외쳐!!! )

지극히 평범한 하루. 아이를 재우고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눈알 굴리며 열심히 보고 있었다.

이은경 선생님의 방긋 미소로  '엄마 뭐 해? 브런치 해!!'라고 말한다.

브런치? 저야 브런치 좋아하죠~ 브런치는 몇 번 해보지 않았다만 빵 뿌스래기랑 햄, 과일, 오믈렛 같은 거 거기다 따뜻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거. 그거 맞죠?


에라이~천하의 말씀 만만한 콩떡이다.  

브런치는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거예요. '읽고 쓰는 삶 함께 하실래요?'

그녀가 눈웃음을 치며 자꾸 꼬신다. 오늘도 내일도 꼬신다. 너무 좋은데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오늘도 운동하셨나요? 독서하셨나요? 칭찬하셨나요?"

매일 다정하게 건네는 이은경 선생님의 유튜브는 들어봤는데 선생님, 작가라뇨? 가당키나 합니까?

브런치만 먹어본 엄마도 있나요? 그 대답은 o.k. 누구나 대~ 환영, 두 팔 벌려 환영이시란다.


고민을 몇 날 며칠 했다. 사실 공짜라면 덥석! 했을 텐데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올바른 선택인지 묻고 또 물었다.  '왜 글을 쓰려고 해? 지금도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이잖아. 바쁘게 일 만들지 말고 그냥 지내자. '

'아니야! 이렇게 물 쓰듯 시간 허비할 수 없어. 뭔가 변화가 필요해. 햇님이에게도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어! '  은경 선생님의 '일단 해보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한마디도 한 몫했다.

마감 5분을 남겨두고 버저비터를 눌렀다. 이제 내 손을 떠난 일 무를 수도 없다. (사실 무를 수도 있었지만 그건 아니 될 일! )

인생은 용기의 양에 따라 줄어들거나 늘어난다.  -아나이스 닌


소심쟁이 엄마는 나름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 두근 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슬초 브런치 3기가 되어 카페 입장.

근데 무슨 일이세요? 독서, 운동, 글쓰기 인증을 매일 하라는데 독서, 글쓰기는 어째할 자신은 있는데 운동이라뇨? 선생님. 저.... 이때껏... 숨쉬기 운동밖에 안 해봤어요. 가만~거실을 둘러보자 구석에 잠자던 길쭉이 폼롤러가 보인다. 스트레칭도 운동이지. 합리화하면서 쭉쭉~문질러본다. 그렇게 1일 차 완료!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완벽한 루틴은 아니지만 하루에 운동, 독서, 글쓰기 세 박자로 숨 쉬며 돌아간다. 30분 걷기, 한쪽이라도 읽고 쓰면 되는 거지. 슬라임처럼 늘어지기 좋아하는 게으름쟁이 엄마에게 이것도 커다란 발전이다. ( 환불 안 한 게 어디냐며.)


두 번째 난관 봉착. 브런치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어마무시한 스펙의 사람들과 책으로 완벽무장한 사람들로 둘러싸였다. 난 새발의 피. 여탕에 들어가야 하는 걸 남탕에 잘못 들어온 격이다.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로선 당혹스러움과 내가 있어도 될 자리인가?라는 의문들이 퐁퐁 튀어 올랐다. 거기다 동기분들은 어찌나 완벽 그 자체인지 작가를 위해 준비된 시간만큼이나 그들을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다.  님들이 가신 길 발자국만 따라가려다 발자국이 지워지기를 수십 번, 하지만 발끄트머리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계속 글을 쓴다.




브런치에 나의 대나무숲을 조성하고 있는데 띠리 리리. 

언니의 호출이다! 삼겹살 파티란다! 오예~오래간만에 기름칠을 하겠군.

쫙 펼쳐진 치마쌈에 삼겹살, 고추, 마늘 야무지게 올리고 쌈장으로 따뜻하게 덮어주어 내 입으로 마무리!

하려는데 대뜸 언니가 하는 말.

" 야, 니 요즘 글 쓴다며? 작가 하려고?"

켁!! 목구멍에 있던 삼겹살이 미끄덩 춤을 추며 올라올 뻔했다.

'1급 비밀인데 어떻게 알았지?' 동맹 관계있던 딸을 보며 눈화살을 쏘았다.

"아...... 니..... 그게 글쓰기 공부하는 거야."

"글쓰기? 그거 와하는데? 돈도 안되는 거 "

"작가 아니고 그냥 햇님이 공부시켜 주려고"

아무 말 대잔치로 돌려 막기로 1차 방어 성공! 휴~ 다행이다.


"이모~엄마 브런치에 글 써요!"

무방비 상태에 있던 나에게 믿었던 동맹국 병사가 2차 공격. (이건 배신이야! 배신! )

"브런치? 브런치 먹는 거 아이가? 깔깔깔깔~ 그런 것도 있나?"

"브런치 먹어봤나. 브런치 맛있는데~ 저기 밑에 맛있는 데 있다. 다음에 갈까"

 브런치에 공격을 받았으나 브런치로 위기를 가뿐히 넘긴다.

(플랫폼 이름을 브런치로 만들어서 얼마나 고맙던지, 뉘신지 모르겠지만 절 받으시옵소서 )  

이은경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남들은 그렇게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이로써 증명되었다. 피를 나눈 형제도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던 브런치를 먹던 크게 관여하지 않음을.


브런치는 대나무숲.  내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나의 생각조각들을 한 장 한 장 모아둔 곳이다.  언제나 열 수 있는 나의 분신들. 라이킷과 따뜻한 댓글들로 연결된 공감의 신호들은 나를 바닷속 산호처럼 춤을 추게 한다. 거기다 보이지 않는 실전화기로 연결된 동기작가님들과의 소통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전보다 나은 모습으로 태어나게 해 준다.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나. 성장하는 기쁨을 느끼는 나. 브런치에 오길 잘했군, 잘했어.


글감을 뭘 써야 할지 아직은 옛 기억에 더부살이 중이지만 현재를 사는 나와 만나기 위해서 꾸준한 글쓰기는 필수조건이다. 나 꾸준함을 어렵다. 못 본 드라마 시청도 해야 하고 아이 공부도 봐줘야 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도 떨어야 하고 밥반찬 궁리도 해야 하고. 누가 그랬던가? 안 할 이유는 많으나 할 이유는 한 가지면 된다고. 괜한 변명거리 늘어놓지 말고 일단 해보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훗날 내 글밥이 차고 넘쳐 배가 터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보면서 오늘도 글을 쓴다.  

나의 대나무숲이 보다 울창하고 쑥쑥 자라 하늘까지 닿기를 바라면서.


우리 집 1급 비밀은 꼭 지켜져야 한다.

아무도 알면 안 되는 1급 비밀을 사수하려면 번거롭지만

오늘도 딸내미 입단속을 해야 한다.

"딸~ 뭐 먹고 싶어? 탕탕~ 후르르르 마라탕? 별빛이 내린다~ 치즈 떡볶이?"



글쓰기의 출발은 소박하죠. 기억 작업이고 자기 구원입니다. 저도 저 살자고 썼던 게 크고요.
'아, 사는 게 참 힘들구나. 사람은 고통스러우면 안 되는 존재인데 이렇게 고통을 받으며 사는구나.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 고통이 조금씩 견딜 만 해지는 과정을 기록하면 이걸 읽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지 이 정도의 생각으로 글쓰기를 시작해 본 겁니다.     은유-글쓰기 상담소

-내 마음과 같구나. 출발은 소박하게, 저도 나 살자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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