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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랑떡 Nov 29. 2024

유치원버스에 혼자 탄 옆집 애 말고  우리 애

 워킹맘의 좌충우돌 에피소드

“여보세요. 지율이 어머님. ABC 유치원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


일을 하고 있는 도중 유치원 전화번호가 뜨면 왠지 가슴부터 쿵쾅거린다.

아이가 다쳤나? 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 찰나의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는 나 자신이 웃기기도 하고 왠지 서글퍼지기도 하며 “네. 선생님 무슨 일이시죠? 애써 들킬세라 담담하게 전화를 받았다.

“아, 어머니 다름이 아니고 지율이 혼자 기린차를 타고 가잖아요. 그런데 기사님께서 다른 일도 있으시고 동승해 주시는 선생님께서 다른 업무도 보다 보니 시간이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오늘부터는 지율이 혼자 하원해야 할 것 같아요. 안전하게 운행하도록 잘 지도할 테니 너무 걱정 마시고요. 지율이한테는 잘 알아듣게 이야기 나눴어요.”


 “아.. 네...”

전화를 받고 싫은 소리를 하기 싫어 알았다며 끊어버린 나.  

유치원 선생님의 꾀꼬리 같던 하이톤과 대조적으로 햇빛이 닿지 않는 심해의 물고기가 말하듯 대답했더랬다. 내 아이와 직결되는 일인데 끊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이 혼자? 버스를 탄다고? 말도 안 돼!’

걱정부자인 나는 걱정을 모으고 모으다 온갖 고민과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걱정코인들로 부자가 되었다면 아마 일론 머스크 저리 가라 했을 정도다.


아이가 5살까지는 유치원 버스를 타고 5시쯤 하원했다. 선생님과 면담 중에 3시 반 하원이 시작되는 시간부터는 다른 친구들은 학원으로 다 가서 결국 남는 아이는 우리 애 밖에 없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학원을 많이 보낸다고?' 내심 놀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일하는 엄마 때문에 교실에 혼자 남아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플러스로 우리 애 때문에 다른 일 못하시는 선생님은 뭔 죄냐 싶어 부랴부랴 그때부터 미술학원을 보내게 되었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3시쯤 집으로 오는 하원버스가 있다 하여 같은 아파트 친구와 유치원버스를 타고 귀가 후 학원을 보내게 되었다. 6살이 되면서 같이 타는 친구가 학원을 그만두고 타지 않음으로 해서 내 아이는 차량선생님과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혼자 하원을 계속하게 된 것이다.

자가용도 아닌 커다란 버스에 내 아이만 타게 된다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했다. 엄마의 이기심도 한몫했다.  그런 마음들을 갚을세라 커피를 비롯해 간식 등을 기사님, 선생님들께 틈날 때마다 해드렸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냥 학원을 끊을까, 내가 일하지 않았다면 일찍 데리러 갔을 텐데, 걸어갈 거리가 안 되어 할머니 보고 데리러 가라고 할 수도 없고, 학원버스는 거리가 멀어 유치원까지 안 간다고 하고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럴 때 정말 내 몸이 슈퍼맨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님 순간이동이라도? 과학의 발전은 아직 미비한 관계로 상상의 날개는 접어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해야 했다.


근데 가만 보자. 어린이통학버스에는 인솔교사가 탑승해야 하는 게 의무인데, 인솔교사 없이 아이 혼자 버스를 타고 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 고작 6살 아이인데.

선생님께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못 해 놓고는 ‘확! 신고해 버려?’ 마음속에 나쁜 씨앗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뒤돌아 생각해 봐도 비겁하기 짝이 없었지만 내 아이의 안전에 대한 엄마의 방어기제라고 할까?


어린이통학버스 동승보호자 탑승 의무화
- 2015. 1.29 시행(15인승 이하 어린이통합버스를 운영할 경우 2년 유예)
- 2017. 1.29 전면시행
보호자 동승의무
- 어린이통학버스를 운영하는 사람은 어린이나 영유아를 어린이통학버스에 태울 때 성년인 사람 중 어린이통학버스를 운영하는 자가 지명한 보호자를 함께 태우고 운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승한 보호자는 어린이나 영유아가 승차 또는 하차할 때 자동차에서 내려서 어린이나 영유아가 안전하게 승하차하는 것을 확인하고, 운행 중에는 어린이나 영유아가 좌석에 앉아 좌석안전띠를 매고 있도록 하는 등 어린이 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도로교통법」제53조 제3항).
- 이를 위반한 운영자는 3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해집니다.
  (「도로교통법」 제154조 제3호의 2).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미술 학원 원장님께 직접 전화를 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다행히 원생이 늘어 학원버스가 두 대가 운영 중이어서 유치원으로 픽업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이런! 그럼 진작에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길을 잃었던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찾은 것처럼, 복잡한 퍼즐 조각의 마지막을 완성한 것처럼 스르르 마음속 안개가 개였다.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것을 왜 그렇게 마음 졸였던가, 몇 분 전만 해도 전전긍긍 걱정부자였던 엄마는 사라졌다.


가끔 상상한다. 전우치처럼 분신술을 쓸 수 있었다면 등원하는 아이와 눈 마주치며 손하트도 날려줄 수 있을 텐데, 하원 때는 두 팔 벌려 가득 안아 집으로 오는 내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을 텐데, 삼삼오오 모여 있는 놀이터에서도 해님이 안녕할 때까지 마음 편하게 놀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렇게 사소한 것들도 아이와 못해주는 엄마는 괜스레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린다.

마치 엄마의 자리가 비어버린 것처럼.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온기 가득한 집에 돌아올 때면 딸아이가 하는 말.

“엄마! 엄마는 오늘 뭐 먹었어? 난 오늘 짜장밥 나왔는데 엄청 맛있었어!”

“엄마! 오늘 무슨 놀이했어? 난 오늘 직접 바늘로 바느질했어, 이거 봐봐! 멋지지! 엄마 선물이야!”

그래, 엄마의 자리는 여기에도 있구나.

꼭 가까이 있지 않아도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대화들 속에서 엄마는 아이의 시간으로 아이는 엄마의 시간으로 스며든다.

너는 거기서, 엄마는 여기서


애써 미안한 마음을 뒤로한 채 딸에게 고백해 본다.

딸아, 엄마가 가까이 있지는 않지만 너의 시간 속에서 엄마가 늘 함께 있음을 잊지 않아 줬으면 해. 엄마는 세상 무엇보다 너의 시간 속에서 울고 웃는 시간들이 소중하단다. 새 생명을 잉태하여 탯줄로 연결된 너와 나처럼, 너와 엄마의 시간도 그 순간부터 연결되어 있단다. 비록 지금은 탯줄은 끊어져 보이지 않지만 그전보다 단단한 실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단다. 엄마는 그 실을 놓지 않고 너와 연결된 시간들을 평생 함께 할 거야.

엄마는 여기서, 너는 거기서.


추신 : 그 실이 꼬이고 꼬일 때는 미리 얘기해 줄래? 엄마는 엄마의 자리에서 천천히 감으며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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