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없이 사라지는 남의 편이기에 지나가는 버스를 놓칠세라 100미터 달리기로 쫓아가 물었다.
"어디가?"
"도서관에" 쿨하게 한마디 던지고는 현관문을 쾅!
에잇! 내 마음도 쾅! 쾅! 쾅! 심벌즈가 요란하게 연주한다.
언젠가 도서관에 다 함께 갔을 때는 '언제 가?'라는 눈빛을 쏘며 목석처럼 서 있더니 이게 웬뒷북인가. 참 알 수 없는 남의 편일세.
남편이 사라진 집안을 천천히 둘러본다. 속 끓는 애미 맘도 모르고 예능 프로를 보며 까르르 웃는 따님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일감들이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다.
지렁이처럼 먹다 남은 반찬 찌그래기, 빙수처럼 수북이 쌓인 설거지 더미들, 손 하나 까닥하면 쏟아질 것 같은 재활용 쓰레기, 나 좀 꺼내주세요~외치는 세탁기안의 빨래들, 나 잡아봐라~잡기놀이하며 나뒹굴고 있는 머리카락까지.
그래, 이것도 내 차지, 저것도 내 차지, 보이지 않는 것도 모두 내 차지.
모든 게 내 땅이구나. 내 땅 넓다! 에헤라디야~ 풍악을 울려라.
"엄마! 근데 우리 점심 뭐 먹어? "
"지율아, 일요일은 뭐다?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
짜,짜,짜파게티가 아니라 짜,짜,짜증이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왜 이것은 모두 내 차지인가, 엄마의 일은 끝이 없는가, 아무것도 하지 말까. 네가 할래? 내가 할래? 꼬불꼬불 꼬인 면발이 내 마음처럼 꼬이고 꼬였을 테지만, 짜파게티처럼 까매진 마음을 뒤로하고 엄마는 움직인다. 엄마의 마음은 초침보다 바쁘다. 아니 그것보다 더 빨리 달려가야 한다. 한시가 급해!
자. 그럼 일감들의 땅따먹기를 이제 시작해 볼까? 차례차례, 구역을 정해놓고 해 볼까?
아니 아니 순서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기계처럼 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싫지만 심란하고 짜증이 날 땐 본디 무거운 몸뚱이를 움직여야 한다. Right now!
슈퍼맨이 되어 이것저것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모든 집안일 하고 나서 먹는 커피는 엄마들의 특권이자 국률.
따뜻하게 먹을까? 차갑게 먹을까? 마음속 활화산을 꺼야 하니 차가운 것으로 초이스.딸그락딸그락 얼음소리가 내 마음을 토닥토닥 두드린다.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커피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켠 후 집안을 다시 둘러본다. 정리된 집안 풍경에 위안을 삼은듯,어지러웠던 마음이 질서 잡힌 교실 속 의자처럼 자리를 찾아갔다. 반짝반짝 깨끗하게 씻어 놓여진 그릇들, 숨바꼭질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은 물건들, 반듯하게 개어진 옷가지,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널어놓은 빨래들. 체포에 성공한 집안 곳곳 머리카락과 먼지들까지.
그래, 이 공간.
내가 숨 쉬고 있는 공간도 나로 채워져 있다.
표시는 안 나도 나의 손길이 숨어져 있는 따뜻한 공간이다.
심심하지 않게 엄마를 쫓아다니며 재잘거리는 귀여운 참새까지 참 사랑스러운 공간.
그래, 이 공간을 사랑해야지.
나의 집. 우리 가족이 있는 우리 집.
우리 집 속의 또 나의 일감들.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집안 살림과 가사일이 왜 여자의 일로 지정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여자로 태어난 이상 집안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남편들의 '난 돈 벌잖아'라는 식의 생각들은 여전히 여자를 괴롭힌다. 하물며 집안일을 함께 한다는 가정적인 남편들도 자세히 보면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애초부터 내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과 여는 생물학적인 면부터 다르기에 생각 또한 다르다. 내가 그가 될 수 없고 그가 그녀가 될수없듯이. 서로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에 서로의 입장차이만 고집하기보단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이기에 함께하는 동반자이기에 같이하는 일의 가치에 의미를 두면 어떨까?함께 해요, 같이.
-위 뉴스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지만, 실제 가사 분담에 만족하는 아내는 10명 중 2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는 64.2% , 여자는 73.6%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소 희망적인 것은 연령이 낮을수록 공평하게 가사분담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OECD 국가 중 가사참여율이 최저였던 적에 비하면 인식전환이 조금씩 변화되고 실천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내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함께. 같이의 가치를 알고 더욱더 변화되길 엄마의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본다.
가사노동의 불균형은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문제와도 연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16년 발표한 '여성노동-출산 및 양육행태와 정책과제'보고서에 따르면, 남편의 육아, 가사 분담률이 1% 늘어나면 아내의 출산확률이 0.01%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처럼 아동수당과 육아휴직 등의 지원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국가는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율을 유지했다고 한다. (참고 : https://www.ekore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6421)
지역마다 출산하면 얼마 준다며 정말 억 소리 나는 저출산 대책에 정말 억 소리하며 체증이 쌓인다. 돈만 주면 다 된다는 탁상공론은 그만 집어치우고 여전히 여성에게 쏠려있는 가사부담, 양육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모의해야 할 때이다.
짜장면 시키신~~분~~~!
후루루 짭짭~짜장라면을 먹고 나면 입가에 검정 립스틱은 덤이다.
" 우리 지율이 맛있게 먹었네~ "
내 속은 짜장처럼 까매졌지만 딸래미의 검정 립스틱을 보자마자 알록달록 무지개색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