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면서제주도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들을 종종 만난다.
"너 어디 살아?"
"나 화순."
동네 이름만 대면 신기하게도 그 동네에 겹치는 지인이 꼭 등장한다.
"나 가이영 잘 아는디(나 그 아이랑 잘 아는데)"
"기(그래)? 나 그 아이랑 초등학교 동창"
호텔이라고 다를 바 있겠는가. 오히려 그 주변에서 출퇴근하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니, '한 다리 건너 아는' 관계의 장이라 볼 수 있겠다. 하다못해 정말로 친인척까지. 말로만 삼춘, 삼춘 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삼촌인 경우도 있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대부분 아버지나 어머니의 같은 항렬이면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삼촌’이라고 부른다. 제주어로 '삼춘') 물론 외지인들도 다수 있었지만 육지의 직장에 비해 관계망이 더 촘촘하다 느껴졌다. 일하다가 답답한 상황이 생겨도 어디 가서 불만을 속 시원하게 말하고 다닐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좁아도 정말 좁다. 그야말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가 피부로 와닿는다. 덕분에 투머치토커(Too much talker)인 나는 이곳에 있는 동안 묵언수행의 도를 닦아야 했다.
그간 직장 생활하면서 얻은 교훈은 누구나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고 입장이 있으며, 1:1로 독대해서 들어보면 저마다의 고개를 끄덕일만한 사유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배.웠.는.데. 이곳에서는 그 공정성의 기준이 다소 모호하게 느껴졌다. 바로 공(公)과 사(私)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 희미해지는 순간들이다.
객실 정비에 대한 고객 컴플레인(불만)이 제기되면 해당 룸을 담당한 룸메이드와 인스펙터, 현장소장은 호텔 측의 호출을 받는다. 객실팀을 총괄 지휘하는 갑(호텔)의 하우스키핑 부장은 성격이 아주 여러 방면으로 좋지 못하다(속칭 지랄 맞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컴플레인이 발생하는 날엔 과거 본인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안까지 다 끄집어내 한바탕 난리굿이 벌어진다고 보면 된다. 이렇듯 한참을 들들 볶이고 난 뒤 이 사안에 대해 본사에 보고를 해야 하냐 마냐를 얘기하는 중에, 갑의 경영지원팀 대리가 불쑥 내뱉은 말이 기가 찼다.
"그 이모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요. 이거 리나 씨한테만 말하는 건데, 그 룸메이드 여사님 실은 엄마 친구예요.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 살고, 이모네 아들도 내 친구고. 이모한텐 내가 따로 잘 얘기드릴 테니까 본사에 굳이 보고하진 말아요."
본사에 보고하지 말라고? 신속히 조치를 취해달라며? 보고를 하고 말고는 현장소장님께서 결정하실 문제 아닌가? 아니, 쥐 잡듯이 잡들이 할 땐 언제고 기껏해야 을의 총무인 나보고 뭐 어쩌라고. 혼란스러웠다.
반면, 여기 공연히 괸당에 대한 기대감을 품었다가 실망한 사례도 있다.
용역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계약 갱신을 위한 협상 시즌이 돌아왔다. 을인 본사 입장에서는 그동안 불합리하게 적용된 몇몇 조항을 개선하고, 용역비를 인상하여 계약을 재개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 반면 갑은 이미 우리보다 더 나은 견적을 제시한 업체가 여러 곳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재계약 결렬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계약 해지를 우려하는 본사가 손해를 감수해서라도 갑이 우기는 계약 조건을 받아들이게끔 하려는 속셈이겠지. 이에 뿔이 난 본사 사장님이 친히 호텔에 행차하셔서 현장소장님에게 의기양양하게 말씀하시기를,
"박 부장, 가이(걔) 나랑 같은 서고(서귀포고등학교의 줄임말) 나온 거 아니? 내가 얘기하면 잘 들어줄 거다."
상황이 여기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 인과관계를 직접 보고 들은 나로서는 학연을 내세울 분위기가 도저히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허나 일개 총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그저 지나가는 우스갯소리이길 바랄 뿐. 진담은 아니겠지 설마 설마 했는데, 협상 테이블에서 터져 나온 사장님의 한 마디가 정적을 깨트렸다.
"서고 나왔다 들었는데 나도 서고 5회 졸업생입니다. 흐허허"
"어이구, 한참 선배님이시네요. 반갑습니다. 허허허"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몇 십억이 오가는 계약에 학연이 미치는 영향은 허울뿐인 것을. 여기에서 괸당은 아이스브레이킹용 화젯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용역비 인상 없이 호텔 측의 조건을 수용하는 것으로 재계약이 성사되었다. 박 부장도 본인의 밥그릇을 잘 보전하기 위해서 동문 선배에 대한 예우는 없었던 것이다.
만일 제주 토박이들이 이 글을 본다면 외지인이 뭘 안다고 괸당에 대해 왈가왈부하냐며 마음속이 까끌까끌할지도 모르겠다. 제주도 내에서도 괸당 문화의 폐해에 대해 자성의 소리를 담은 칼럼들이 신문에 나오기도 하지만, 원래 남편이든 자식이든 가족 욕은 내가 까는 건 괜찮아도 남이 까면 기분 나쁘지 않은가. 성급히 오해하지는 마시라. 제주에서 직장 생활하는 외지인의 시각은 이런 관점도 있구나 너르고 유연한 사고로 봐주면 좋겠다. 10년이 넘게 살고보니 어느덧, 나도 괸당의 수혜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총무로서, 때로는 제주 출신이 아닌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업무를 수행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해 뒷말이 나오고, 그로 인해 이전의 업적까지 폄하되는 상황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관철할 수 있었던 건 제주에 나의 뿌리나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혈혈단신 연고 없는 곳에서 뒤끝에 대한 부담 없이 의사결정하고 일할 수 있어 오히려 감정 소모에서 자유로웠다. 이 또한 외지인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일을 잘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모른 척하진 않더라. 세상사 인지상정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훗날 "우리 총무님, 요망지다이." 소리를 듣기까지는 괸당보다는 인정(人情)이 주효하게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