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ce, Decision and Determination
요즘 "저는 결정장애예요."라는 말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나날이 커져가는 정보의 양과 선택지의 수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선택에 관한 아주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행해진 실험인데, 과일잼의 선택지가 6개였을 때의 구매율은 30퍼센트였지만, 선택지가 24개로 늘어났을 때는 오히려 구매율이 3퍼센트로 떨어진다는 특이한 결과를 보였었죠. 사람들은 선택지가 많을수록 좋다고 말하지만, 정작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면 점점 더 선택을 어려워합니다. 이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s)"은 "다다익선(많을수록 좋다)"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지요.
영어에서 choice, decision, determination은 모두 선택과 결정에 관련된 말들입니다. 이중, 가장 일상적인 선택을 의미하는 단어인 "choice"는 고대 영어인 "ceosan"에서 온 말로 "고르다. 선택하다"를 의미합니다. "오늘 뭘 먹을까?"같은 간단한 선택으로부터 상당히 중요하고 심각한 선택까지를 아우르는 일반적인 표현이지요.
반면, "결심, 결정"을 뜻하는 단어인 "decision"는 여러 대안 중 하나를 고르는 논리와 분석이 필요한 "결정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라틴어에서 off를 뜻하는 "de"와 cut을 뜻하는 "caedere"로부터 시작된 이 단어의 동사형인 "decide"는 한 마디로 "to cut off(잘라내다)"를 뜻하는 말이죠. 실제로 "cide"라는 어원이 들어있는 많은 단어들은 무언가를 잘라 내거나, 죽이는 것에 관련된 경우가 많습니다. "자살"을 뜻하는 "suicide, " "살인"을 뜻하는 "homicide, " "대량학살"을 뜻하는 "genocide, " "절개"를 뜻하는 "incision, " "살충제"를 뜻하는 "insecticide"나 "pesticide"에 이르기까지 모두 베고 죽이는 살벌한 단어들이지요.
그렇다면, 결정이라는 단어는 왜 이렇게 무서운 어원에서 파생되었을까요?
작게는 펜 하나를 고르는 것부터, 크게는 평생을 함께 할 누군가, 혹은 인생을 걸 커리어를 선택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택의 문제는 필연적인 포기를 동반합니다.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고도 불리는 이 선택의 이면은 우리의 뇌리에 남아서 내내 곱씹게 만드는 무언가가 되지요. Robert Frost의 시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의 화자처럼 우리는 훗날 한숨을 쉬며 고백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의 선택이 모든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그래서일까요? 선택의 순간마다 내가 고른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 봐, 혹은, 또 다른, 더 나은 선택지가 남아있을 까봐 우리는 전전긍긍합니다.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지금보다 멀고 먼 훗날에 어딘가에서
나는 한숨을 쉬며 말하게 되겠지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모든 결정이 아픈 것은 그것이 무언가를 포기하고 잘라내는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과정에서 그나마 나의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버린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막연하게 찾아다니기 전에, 내가 원하지 않는 것,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이죠. 메스를 들고 암세포를 잘라내는 외과의사처럼요.
그럼 "결단"을 의미하는 "determination"은 어떨까요. "determination"은 라틴어 "determinatio"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단어는 "off"를 뜻하는 "de"와 "경계를 짓다"를 의미하는 "terminare"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즉, 본래의 의미는 "어떤 경계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것에 고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determination"과 같은 어원을 공유하는 영어 단어들에는 "경계, 끝"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용어, 기간, 학기, 조건"등을 의미하는 "term, " "끝내다"를 의미하는 "terminate, " "종착역, 말기의"를 의미하는 "terminal"에 이르기까지 마지막이나 한계, 혹은 어떤 것의 범위를 정하는 행위와 관련되지요. 그래서, "determination"은 머릿속으로만 하는 사고와 판단의 과정을 넘어섭니다. 나아가 그 결정을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강한 의지와 행동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Choice, Decision, Determination...
선택과 결정 그리고 결단의 의지, 이 단어들은 우리가 살면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는 너무 많은 선택지로 넘쳐나서 가끔은 그 첫 발자국을 떼는 것조차 쉽지 않게 느껴지지요. "결정 장애"가 만연하는 이유입니다.
그럴 때면, 완벽한 선택을 하겠다는 강박을 조금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요? 누군가의 말처럼 조금 못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요. 훗날 내가 버린 그 선택지가 곱씹어질지언정, 갈림길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마냥 서 있는 것보다 우리는 적어도 조금은 앞으로 나아갔을 테니까요.
In any moment of decision,
the best thing you can do is
the right thing,
the next best thing is
the wrong thing,
and the worst thing you can do is
nothing.
어떠한 결정의 순간에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고,
차선의 일은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이며,
가장 나쁜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Theodore Rooseve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