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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친꿈 Nov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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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바라보는 작은 관심

 날씨가 변하고 계절이 바뀐다. 그녀는 1년이나 넘게 항상 같은 자리에서 몰래 강 건녀편의 얼룩무늬의 노란 고양이를 지켜보았다.  고양이 또한 변함없이 같은 시간동안 매일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양이로 인해서 생긴 자신만의 규칙이자 일상이었고 그녀는 그저 자신만의 고유한 일상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녀는 강 앞에 쭈구리고 앉아 물수제비를 던지거나 물장난을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규칙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이었지만 결코 평범한 광경은 아니다. 둘은 강을 사이에 두고 평행선상에 위치했다. 이 수학적 공식같은 관계는 그녀가 고양이에게 처음 말을 꺼내던 그날까지 참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쪄죽을 듯한 날씨도 잠시 곧 청량하고 쌀쌀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평상시처럼 반팔에 긴바지차림이다. 오소소ㅡ소름이 돋은 듯 그녀는 팔을 벅벅 문지르면서 항상 가던 강가로 향했다. 늘 그래왔던대로 그녀는 물에 손을 적시거나 손을 물에 넣고 휘져어 만들어진 파동을 고요히 쳐다보았다. 창조주의 모습같이 엄숙한 기운으로 그녀는 20분내내 단순한 행동을 반복했다. 지루하지도 않는 듯 물을 가지고 놀던 그녀은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강 반대편 수풀더미에 숨어 있던 한 인영이 움찔했다. 

  정적이 깨졌다. 움찔했던 고양이의 몸은 숨을 참듯 경직되었다. 그녀는 고양이가 숨어잇는 곳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올 줄 알았던 고양이가 안나오자 민석은 주위에 널려있는 돌맹이를 주워 수풀더미근처로 던졌다. 부스럭ㅡ소리가 났지만 고양이가 나오긴커녕 미동도 없다. 그는 한숨을 더더욱 쉬었다. 아휴ㅡ  

 "제발 나와줘라."  

 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또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강 건너편으로 가려는 듯 돌다리앞에 서자, 그제서야 수풀더미 옆에 삐져나온 꼬리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벅벅 문질렀다. 답답한 듯 얼굴이 빨개졌고 열이 난듯한 모양새이다. 그녀는 손부채질을 하다가 돌다리 앞으로 갔다. 돌다리라고 해봤자 강을 건너기 위해 대충 놓은 듯한 발바닥만한 돌이 띄엄띄엄 놓아져 있을 뿐이다. 강의 폭은 딱 성인 두어명이 나란히 팔 벌린만큼이었다. 그녀는 처음에 미간을 찌뿌렸다가 이내 펴지고는 낯이 익은 얼굴에 점점 동공이 커졌다. 그리고 그녀는 안심을 한 듯 편안한 얼굴로 웃음을 얼굴가득 짓고는 강 건너편에서 건널까말까 고민하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고양이에게 오라는 듯 손짓했다. 여기로 와ㅡ고양이는 그녀의 입모양을 보았다. 고양이는 물에 빠지지않으려고 조심히 돌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처음 돌다리를 건너듯 어색하기 그지없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저러나 그녀는 고양이가 돌다리를 건너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참후에야 자신의 옆에 무수히 자란 갈대숲근처로 갔다. 


8년전

 "쟤 있잖아. 중국인이래."

 "정말? 어쩐지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렸어."

 "헐. 중국인?"

 "우리반에 중국인이 있다고?  

 아이들의 중심에서 영철은 어깨를 으쓱대며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아 신나는 듯이 떠벌대기 시작했다. 산골동네라 소문도 빨리 퍼지고, 외국인을 좀처럼 접할 수 없던 아이들은 눈을 번쩍이며 영철에게 말을 더 하라는 듯이 부추겼다. 무리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그녀도 아이들틈에서 껴있었다.  

 "우리 아빠가 쟤보고 화교라면서 같이 놀지 말랬어."

 "화교가 뭔데?"

 "나도 몰라. 중국인이겠지. 뭐"

 "에이. 뭐야."

 "아. 또 있어. '왕'씨가 중국의 성이래!"

 "헐."

 "진짜 중국인이야?"

 "신기하다."

 "근데 왜 우리나라에 있냐. 자기나라에 있지."
 "그러고보니 생긴게 좀 달라!"  

 소년의 모습은 한 아이의 말대로 흔하게 볼 수 있는, 피부가 갈색빛도는 산골 아이들의 모습과는 동떨어져있었다.  도시에서 내려온 아이같았지만 깍쟁이처럼 으쓱대지도 않았고 단지 조용할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이 수군덕대는 대상의 주인공인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그들의 말을 못들은 척하며 책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보았다. 책장을 넘기는 소년의 손이 살짝 떨린다는 것을. 애들은 정작 그런 소년의 모습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 이어서 소문의 중심을 씹어댈뿐이었다.  

 "앞으로 쟤랑 놀지 말아야겠다."

 "그러게. 중국인 재수없어."

 "맞아, 우리엄마도 중국인은 화교라면서 한국에서 나가야한다고 그랬어."   

  먼저 소년을 씹어대기 시작한 영철은 근거도 없는 소문을 계속해서 꺼냈다. 그녀는 소년의 책장 붙잡은 루한의 손끝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는 것을 관찰했다. 그녀는 소년이 작고 왜소하기는 하지만 얼굴이 잘생겨서 애들이 곧잘 좋아하는 것을 영철이 질투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그녀는 슈퍼맨에 푹빠진 정의의 사도였다. 게다가 몸집도 또래보다 크고 선천적인 힘도 세서 약한애들을 괴롭히는 애들을 쉽게 겁줄 수 있었다. 그래서 비록 소년과 한마디도 말해본적이 없었지만 자신이 짚고 나서야 한다는 으레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그렇듯 영웅심이 생겼다. 그녀는 영철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중국인이 뭐 어때서?"


 "뭐?"


"뭐 어떻냐고. 어차피 한국말도 잘하잖아."


"참나, 너 언제 쟤랑 친했냐?"


"너가 말이 심하니까 그렇지."


"그러면 상관마. 뚱땡아."  

 그녀는 말보다 행동이 더 빨랐다. 자신을 뚱땡이라고 말한 영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주먹이 영철의 얼굴로 날라갔고 금새 그녀는 영철을 눕히고 올라탄채로 마구 주먹을 휘두르며 때렸다. 주위의 남자애들은 그 나이대의 애들답게 환호성을 지르며 싸워라 싸워라ㅡ소리쳤고 여자애들은 선생님을 불러오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영철은 몸집이 훨씬 큰 그녀의 밑에 깔리자 상대하는 것조차 벅차보였다. 여자애들이 어느새 조르르달려가서 일렀는지 곧, 담임선생님이 여자애들과 함께 달려와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둘은 복도로 불려나가 선생님께 실컷 혼났고 사건은 일단락 종료되었다. 아까전에 수군덕대던 아이들이라고 믿어질 수 없을정도로 금새 반아이들은 영철을 보며 씩씩거리는 그녀를 향해 엄지를 추켜세웠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소년의 뒤통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뒤돌아본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이때 마주친것도 잠시 둘다 언제 마주쳤냐는 듯 하루종일 딴청을 피워댔다. 그녀는 한번도 말싸움난적 없던 짝꿍에게 쓸데없는 말장난을 쳐대며 시비를 걸었고 소년은 책상속에 밀어넣었던 교과서를 펼쳐서 공부했다.  

"여러분~이제 집에 가도록 해요."

"와아아아아"  

 그녀는 늘상 그래왔던 것처럼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반을 빠져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었다. 집에 과자가 있단말야ㅡ허겁지겁 운동장을 달리던 그녀는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멈췄다. 그녀가 운동장 한가운데서 잠시 멈춰 뒤돌아보니 소년이 헉헉대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허억…. 같이가자."

 "그러든지."  

 그녀는 자신보다 한참작은 소년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며 무심히 대답했다. 소년은 헉헉대다가 이내 숨을 가다듬고 고맙다며 가방을 대신 들어주겠다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냐ㅡ씨익 웃은 그녀는 소년의 어깨를 힘껏 팡팡졌다. 그러자 소년이 어깨를 만지며 아프다고 칭얼댔다. 그 말에 황급하게 손을 거둔 그녀는 고개를 숙여 소년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그 사이 루한도 또한 민석의 어깨를 팡팡 내리치며 개구지게 웃었다. 그 후로 둘은 항상 붙어다니는 단짝이 되었는데 하도 붙어다녀서 별명도 생겼다. 별명은 '부부'였고 남편은 그녀, 부인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3년내내 항상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하던 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전학때문이었다. 이사가는 마지막날 그녀는 자신의 집앞으로 마중나온 소년에게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가끔 놀러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떠났다. 약속은 묻혀졌고 소년은 18살이 되기전까지 민석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소년이 강 건너편에서 물장난을 쳐대는 그녀를 보기전까지. 


현재

 "이것봐. 고양이 귀엽지."


"…?"
 

"너무 신기해."  

 그녀는 옆으로 다가온 소년에게 소근소근 귓속말을 하듯 말했다. 소년은 갑자기 친근하게 다가온 그녀의 얼굴에 흠칫 놀랐지만 의연한 척했다. 자신의 앞에 놓인 걸 보기에도 바끈 그녀의 옆에 소년은 나란히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그녀의 발등치에서 애교부리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듣기론 그녀가 1년동안 고양이를 지켜본이래로 처음으로 가까이서 고양이를 보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녀는 고양이를 만지려고 하다가 아차한듯이 손을 재빨리 거두었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설마….스라소니는 아니겠지? 갑자기 나한테 달려들어서 물면 어떡해."  

 그녀는 문득 말을 툭ㅡ내뱉고는 몸서리쳤다. 아이.무서워ㅡ호들갑을 떨어대던 그녀는 고양이든 스라소니든 사진을 찍어야겠다며 카메라를 꺼냈다. 소년은 그런 민석,,그녀를 계속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까이보는 그녀는 안타까울정도로 몸이 앙상했다. 시골바람에 맨팔이 추운듯 소름이 우수수 돋았지만 그녀는 게의치않고 사진을 찍어댔다. 소년은 자신이 입고있던 셔츠를 벗어 그녀의 어깨를 덮어주었다. 그녀는 등 전체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자 만족한 듯이 핫ㅡ하고 웃으며 사진을 다찍고는 일어섰다. 일어선것도 잠시 그녀는 아구구ㅡ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야야. 쥐났다." 

"나도."  

 소년의 말에 피식웃은 민석은 자신의 다리를 열심히 주물러댔다. 엄지발가락을 들으면 더 빨리 쥐가 없어진대ㅡ라고 비밀을 말하듯 소년에게 속삭였다.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녀의 개구진 특유의 표정은 여전했다. 석양이 져서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었고 높은 하늘위로 새들이 비선형으로 무리지어 날라갔다. 풀벌레 소리가 강주위를 가득 채우며 울려댔다. 찌르르, 찌르르ㅡ  

 "오랜만이다.너." 

"그러게."


 "근데 왜 이렇게 살빠졌냐? 환골탈태를 해서 몰라봤다." 

"저절로 빠지더라고. 하하핫. 이몸이 많이 변했지?" 

"응. 옛날이랑 비교하면 환골탈태야."  

 소년은 예전처럼 으스대는 그녀의 말에도 긴 시간의 공백에도 전혀 어색하지않게 않게 잘도 대답했다. 소년의 마지막 말에 이이익ㅡ괴상한 소리를 내며 그녀는 자신의 뒷목을 잡았다. 그녀의 행동에도 소년이 반응을 안하자, 너 진짜 변했어ㅡ중얼거린 그녀가 일어나 바지에 묻은 흙과 풀들을 텁텁ㅡ털어냈다. 변한 건 너가 아니라 나일지도ㅡ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지개를 피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해댔다. 소년도 민석을 따라 일어나 동시에 하품을 했다. 자신보다 키가 커진 소년을 올려다보면서 그녀는세월이 감개무량하다며 꿍시렁댔다. 그러자 소년은 씨익 웃으며 손으로 그녀의 머리위로 키재는 시늉을 했다. 초등학생때 그녀가 자주 취하던 재스춰였다.  

 "넌 키가 예전과 별반차이가 없네."


 "이이익!"  

 소년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그녀가 정강이를 치는 시늉을 하면서 도망치는 소년을 향해 달려갔다. 곧 그녀는 숨이 벅차다는듯이 자리에서 멈추어 헉헉댔다. 소년이 거칠게 숨쉬는 그녀에게 놀라서 다가가자, 그녀는 주먹을 빠르게 쥐어 가까이 온 루한의 복부를 가볍게 쳤다. 소년은 헛숨을 들이키면서 아프다는 듯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그녀는 아파하는 소년을 손가락질하며 껄껄ㅡ마실나온 할아버지마냥 웃어댔다. 

 "어때? 주먹맛은 그대로지."


 "크헉…나 죽으면 어떡하냐. 진짜 세다." 

 배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던 소년이 이미 정신을 차리고 두리번거린뒤에는 그녀의 작은 뒷모습만 보였을뿐이었다. 치사한 자식ㅡ소년은 툴툴거리면서도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예전에는 나를 지켜주던 듬작한 넓디 넓은 너의 등이었는데ㅡ소년은 그녀가 사라질때까지 길 너머를 응시했다. 먼저 사라진 그녀는 거리에 주저앉아 컥컥댔다. 한참동안 입을 막고 기침을 하다가 멈춘 그녀는 덤덤한표정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손바닥에 선혈이 가득했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손바닥을 닦고나서 입술도 서둘러 깨끗이 닦아내었다.  

 다음날, 약속이라도 한듯이 어제와 같은 시간에 소년은 그녀를 오랜만에 처음으로 보았던 강가에 서있었다. 왜 그렇게 고양이를 오랫동안 지켜보아왔던거지?ㅡ골똘히 생각하던 소년의 뒤에서 그녀는 슬금슬금다가갔다. 소년이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려던 찰나, 그녀는 힘껏 루한의 등을 밀어내었다. 철퍼덕ㅡ소리가 나면서 루한은 엉덩방아를 찌으며 물에 빠졌다. 으아아아ㅡ자신의 젖은 몸을 보고 소리지르던 소년은 샐쭉한 표정으로 일으켜달라는듯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걸릴줄알고ㅡ그녀가 얄밉게 웃으며 소년의 손바닥을 잡는 척하더니 팡ㅡ소리가 날정도로 소년의 등을 가볍게 쳤다. 

 한편, 둘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오두막에 나란히 앉아 과실을 맺고 있는 사과나무들을 보고있었다. 소년은 아ㅡ하는 탄성과 함께 찬장을 보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마을의 학교는 하나뿐이었다. 사람이 적어 초중고가 다 합해진.  

 "너 학교 안다니지?"


 "응."


 "……왜?"


 "그냥."


 "근데 다시 여기로 온지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한테 말안했어. 그리고 너 왜 이렇게 말라졌어. 너 어디 아픈거지?"  

 그녀는 내가 어떻게 아픈 사람이냐ㅡ라고 크게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며 소년을 장난식으로 툭 쳤다. 자신이 기억하는 그녀는 절대 거짓말같은 거 안할 성격이고 정의감 넘치는 대쪽같은 성품을 지녔다. 하긴 그렇지ㅡ중얼거린 소년은 그녀의 말에 안심한듯이 씨익 웃었다.이상한 소문같은 거 믿지마라ㅡ그녀는 뼈마디만 남은 손가락으로 소년의 허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너가 알아채기전까지 실컷 놀아야지ㅡ그녀는 속의 말을 애써 삼켰다. 

 서울에서는 병원신세였지만 다시 시골집으로 이사와서도 집밖으로 함부로 나서면안되었다.……항상 혼자였다. 유일하게 평범한 또래처럼 논 기억은 소년이랑 함께였던 초등학생때...그때 뿐이다. 그래서 소년의 이름은 단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몇년이 흐르고 다시 만났던 날 평범하게 잘 자란듯한 소년을 보면서 질투가 났다. 난 너가 생각하는 것처럼 착하지도 않아ㅡ예전과 변함없이 같은 표정으로 웃는 소년에게 꺼낼 수 없는 말을 삼켰다. 현재의 그녀는 겁이 많고 나약했다. 몸이 아프고나서 현실이 마냥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강압적인 지표에 순순히 순응할 줄 알게되자 성격또한 바뀌게 되었다. 

 둘은 약속을 한 적이 없었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강가에서 만나 놀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일의 시간동안 시장도 가고, 강가에서 낚시도 하며 시내에도 나가기도 했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한을 풀듯이 둘은 여전히 죽마고우였고 8년이란 긴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어색하지도 않았다. 주말에 이른 아침부터 영화를 보러 시내로 나가는 길이었다. 산동네에서 벗어나봤자 시내더라도 그저 즐거웠다. 소년과 그녀는 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며 걷던중에, 어느 누군가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둘 앞의 누군가는 초등학생 시절 그녀가 소년을 위한 정의의 사도가 되어 마구 때렸던 영철이었다. 

 "헐. 너였어?"


 "하하. 아직도 기억하네. 오랜만이다."


 "당연히 기억하지! 너가 날 얼마나 많이 때렸는데. 너 진짜 변했다. 완전 촌사람에서 도시사람이 되었어."  

 영철은 초등학생때 기억을 더듬으며 신난듯이 너무 말라졌다면서 그 뚱땡이는 어딨냐고 놀려댔다. 그녀는 그런 영철을 밉지않게 째려보았다. 너무 친해보인는 둘을 바라보던 소년은 맘에 안드는 듯 민석을 자신이 서있는 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녀는 오랜만의 친구를 만나 즐거웠지만 소년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괜히 툴툴거렸다. 

 영화를 보고난뒤 그녀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소년을 데리고 매일 가던 강가로 향했다. 또 거기가? 맛있는 거나 사먹자. 배고프다고ㅡ소년은 따라가면서도 영화관안에서처럼 계속 칭얼댔다. 신나게 소년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한 곳은 맨날 만나던 강가 위쪽에 좀 많이 올라가야 있는 외진곳의 절벽이었다. 쏴아아아아ㅡ물이 물을 힘껏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와, 뭔데 멋있냐."

 "좋지? 너도 여긴 처음일꺼야. 근데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다."  

 대박ㅡ이라며 중얼거리던 소년은 폭포 가까이 걸어갔다 평균적인 성인남자의 키보다 살짝 높은 절벽이었지만 폭포는 나름의 위용을 자랑했다. 폭포바닥은 깊이를 알수없을정도로 짙은 남색빛깔이었다. 그 사이에 그녀가 소년의 눈 앞에 짜잔ㅡ하고 나타나서 소년의 팔을 잡고 어디론가로 향했다. 하얀 꽃들이 사방에 퍼져있었다. 그녀가 이곳으로 종종 와서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던 꽃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예뻐보였던 꽃이 슬퍼보이기만 한다. 아직 꽃이 질 날도 멀었는데ㅡ그녀는 끝이 다가옴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작고 예쁘지?" 

"꺽어줄까?"


 "아니." 

 그녀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컥컥ㅡ헛기침을 해댔다. 숨이 막힐듯이 기침을 해대던 그녀는 입을 막았던 자신의 손바닥을 보았다. 손가락 사이를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풀바닥에도, 열심히 보던 하얀꽃에도 선명한 빨간빛들이 흩뿌려져있었다. 그녀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풀썩하고 쓰러졌다. 노란 얼룩무늬 고양이가 어느새 나타나 그런 소녀를 멀리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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