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아니 그 당시 국민학교 1학년, 그 어린 나이에도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화가 아직도 기억난다. ‘황새가 뱁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속담에 대해 선생님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황새가 뱁새 따라가면 어떻게 된다고? 안되는 걸 억지로 되게 하려고 무리하면 가랑이 찢어진다~”
조용한 아이였던 내가 먼저 발표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그 속담에 대해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차례였나보다. 내가 대답했다.
“뱁새가 이길수도 있잖아요. 열심히 달리다보면 황새 쫒아갈 수 있어요.”
반 아이들과 선생님은 “하하하~~” 다같이 웃었다. 나만 웃지 않고 어리둥절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게 왜 웃기지? 다리가 짧아도 꼭 못 이긴다는 보장은 없잖아.' 하는 생각을 했고, 일순간 주목을 받는 그 순간에 얼굴이 조금 붉어졌던 기억이 난다.
현실과 동떨어지고 이상적인 성격은 커서도 쭈욱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 친구들, 다녔던 직장 사람들을 보면 ‘현실적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만 같다. 나 또한 적당한 일을 하고, 적당히 현실 생활을 어느 정도 하며 살고 있지만 먹고 사는 것에 더 많이 관심을 기울여야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꿈꾸는 어떤 것, 마음에 품는 어떤 것, 먹고 사는 일과 동떨어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 등을 보노라면 여전히 성향 자체는 많이 이상적인 것 같다.
가끔 남편과 대화를 하다보면 초현실적인 성격의 남편이 나를 보며 웃으며 말한다.
“우린 정말 잘 만났다. 내가 여보를 안 만났으면 나는 정말 삭막하게 살았을 것 같아.”
말은 그렇게 하는데 사실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이고, 우리 대책없는 여보 ~ 내가 옆에 없으면 큰일나겠다.’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애 쳐다보듯이
먹고 사는 것에 관심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당장 내가 하고픈 나의 마음을 보는 일, 좋아하는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일 등이 훨씬 더 관심이 많아 먹고사는 것 같은 현실적인 것들은 늘 뒷전에 밀린다. 지금도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전쟁터같은 집을 뒤로 하고, 낮잠을 자는 남편과 아이 방문을 살포시 닫은 채 책과 노트북을 들고 그냥 카페로 왔다. 집안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해야하는 일 말고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
여전히 철이 조금 없고 대책도 없고 틈틈이 나 하고픈 것을 잘도 찾으며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여보는 정말 이상적이야.“라며 종종 웃으며 말하는 남편에게 나는 이렇게 맞받아친다. ”이상적인 내 모습인 게 제일 현실적인거야.“
약올라서 맞받아치는 말한 것 같기도 하지만 생각하면 정말 그런 것 같다.
내가 돈, 재테크, 부동산 같은 것에 관심이 많고, 생활지식에 빠싹한 성격이면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더 관심 있는 것들이 있다보니 어쩌다보니 현실과는 참 동떨어진 사람이 되어 살고 있다. 소위 몽상적이고, 이상적이라 말할 수 있을 그런 사람이. 그런데 내 성격, 성향이 이런 모습이라면, 크게 주변에 피해주지 않으며 나 생긴대로, 하고픈대로 이렇게 사는 게 제일 내게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내가 이상적인 사람이어도, 세상과 똑 떨어지게 발 맞춰가는 느낌이 없어도, 지금의 이런 내 생활을 더 선호하고 좋아하기에, 나는 나의 이상을, 이 현실을 꽤 좋아한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책 읽고 글 쓰고 사색하는 이 시간 또한. 남편 말처럼 세상에 현실적인 사람만 있으면 좀 퍽퍽하지 않을까. 저 멀리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보는 듯, 먹고사는 것과 관계 없는 것들이지만 내가 너무 사랑하는 책과 글을 얘기할 때 눈을 반짝이곤 하는 나같은 사람도 중간 중간 있는 세상, 그런 세상도 꽤 괜찮은 그림인 것 같다.
241109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