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하여

새로운 페이지에는.

by 어느여름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또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던 이십 대 때, 그때는 늘 갈 곳이 있었다. 만날 사람이 있었다. 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른이 조금 넘은 후부터였던 것 같다. 외롭다는 감정을 희미하게 느끼기 시작한 때가. 처음엔 외롭다는 감각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던 것 같다. 시내 근처에 방을 구해 태어나 처음으로 자취를 했던 때, 밤늦게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으로 혼자 방에 누워 천장을 볼 때가 있었다. 티비도 사람도 없는 적막한 방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 볼 때, 뭔지는 알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해보기 힘든 막막한 감각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그 이후 삼십대 내내 그 외로움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꽤 오랫동안 몰랐다. 어쩌면 내 인생의 어떤 한 페이지가 지나갔다는 것을.



중심에서 벗어났다는 느낌. 내 인생인데도 내 인생 안에서도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느낌. 그걸 인식도 못하며 살았지만 내 무의식은 내내 느끼고 있었던 꽤 오랜 시간들. 그나마 존재감이 있었던 십대 이십 대 시절은 이미 저만치 멀리 갔는데도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그 기억, 그 기억 속의 나를 붙잡으며 외로운 현재를 제대로 봐주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한 십년을 산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나이가 든다는 것과 외로움, 이 둘은 꽤 관계가 깊었다. 나이를 먹으니 모임도, 만나는 사람도, 생활반경도 줄어들고, 외로움은 증폭됐다.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누군가가 손 내밀어주길 기다리면서 계속 외로운 채로 지냈다.



모두가 나처럼 살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더 사람도 많이 만나고, 더 활기차지고, 나이 따위 무색하게 자기 인생의 키를 쥐고 당당하게 주인공처럼 사는 사람들도 많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예전만큼 시간도 행동반경도 자유롭지 못한 까닭에서 오는 제약은 물론 있다. 그러나 아줌마가 되고, 엄마가 되고, 40이 되어도 언젠가 또 할머니가 되어도 나는 내 인생의 오직 한 명뿐인 주인공인 건 변함없는데, 왜 주변인처럼, 마치 단역처럼, 그렇게 나는 자꾸 스스로에게 말했던 걸까. 나이를 먹으면 먹은대로 또 그에 걸맞는 재미와 즐거움도 있을텐데, 아니 만들어갈 수 있는 건데 말이다.



내 인생의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가 지나갔지만. 남은 페이지가 있다. 새하얗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색깔로 그릴지 어떤 모양으로 그릴지, 지나간 페이지를 붙잡을지, 새 페이지를 그릴지는 내게 달렸다. 나를 응원해주고 싶어 이 글을 쓴다.



241120

작가의 이전글내게 '현실적인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