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여사 Nov 04. 2024

갱년기 설여사 이야기

지리산 다녀와 제주도 혼자 여행 간 설여사

10월 셋째 주 토요일 산악회 정기산행은 지리산이다. 2년 만의 지리산이다. 등산 초보인 나에겐 힘들고 어려운 산이다. 그래서 갈 때마다 설레고 무서운 산이다.

드디어 금요일이다.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 낼 지리산엔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등산가방을 챙기며 하루종일 들뜬맘으로 밤 12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11시 50분 드디어 마지막지하철을 타고 옥수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지리산은 옥수에서 새벽 1시에 출발하는 새벽버스를 타고 간다. 들뜬 마음을 싣고 새벽 1시 버스가 출발했다. 새벽 5시. 드디어 지리산 입구에 도착했다.   어둑한 새벽 산으로 들어가니 발아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랜턴을 가지고 오신 회원들이 간간이 비춰주는 불빛에 의지해 온 신경을 발아래에 집중해서 산길을 20분쯤 오르니 날이 밝아온다. 발아래 길이 보인다. 휴~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같이 올라가는 일행과 이제야 말도 나눈다. 중간지점 법계사까지 3시간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동안 남편은 한번 스치듯 나를 지나쳐 가서는 법계사에서 기다리고 있다. 법계사에서 간식을 먹고 취준생아들을 위해 초하나 올려놓고 다시 을 올랐다. 남편은 또 쌩 하니 먼저 올라가서는 정상 400m를 남겨둔 시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 얼굴을 보더니 또 혼자 정상으로 올라갔다. 나도 열심히 남편을 따라 올라갔다. 5시간만에 가까스로 꼴찌는 면한 뒤에서 4번째로  정상에 도착했다. 다들 왜 이리 잘 가는 건지.... 오늘은 구름이 많아서 전망은 없지만 3번째 지리산 정상을 왔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위로를 삼았다. 정상석에서 남편과 인증샷을 찍고 하산을 했다. 남편은 올라올 때도 보이지 않더니 내려갈 때도 내 옆에서 같이 걷지 않는다. 2km까지는 그래도 시야에 보이더니 3km를 남겨두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뒤에 4명이 있었지만 남편과 같이 가고 싶어서 쉬지도 않고 길만 보면서 2Km를 미친 듯이 내려왔다. 2km를 오는 동안 아무도 보이지가 않는다. 혼자 지리산을 걸었다. 갑자기 쓸쓸하고 외로웠다. 고독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쓸쓸함은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고 한다. 나를 버리고 간 남편이 미웠다. 1km 남겨두고 남편이 계곡에서 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냥 지나쳤다. 꼴도 보기 싫었다. 더 미친 듯이 산길을 걸었다. 버스가 서있는 주차장에 다 왔을 때 남편이 쫓아와서는 전화도 안 받고 왜 그리 가냐고 묻는다. "나는 오늘 지리산에 혼자 왔다. 말 시키지 마라." 하며 레이저를 쏴주고는 일행들이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무시하고는 저 멀리 떨어진 편의점에 가서 짐빔하이볼 두 캔을 사서 편의점 뒤편에 혼자 앉아 달달한 하이볼을 마시며 서글픈 마음을 달랬다. 하이볼로 화가 조금 누그러져  버스에 올라가니 어느새 남편도 따라 올라와서 가방을 챙겨주려 한다. 또다시 신경 쓰지 말라고 두 번째 레이저를 발사하고는 그 뒤 남편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까지 왔다. 집에 와서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지리산을 오른다는 건 나에겐 도전이었다. 그런 산에서 멋진 풍경을 보았을 때 감동을 남편과 함께하고 싶었다. 컨디션도 좋았고 산행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완벽했는데 남편이 옆에 없었다. 그래서 맘이 상한 것 같다.  그동안은 앞에 가도 시야에 보이고 멋진 풍경이 보이면 같이 사진도 찍으며 다녔는데 왜 하필 지리산에서 나를 방치하고 올라가고 내려갔을까.

난 나에게 너무 집착하는 거 싫어한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버리는 건 더 싫다. 적당한 거리에서 나를 지켜봐 주며 같이 걷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동반자가 아닐까. 근데 남편이 나를 지리산에 버리고 먼저 내려갔을 때 너무너무 외롭고 서운했다.

지리산을 내려올 때는 남편도 밉고 지리산도 미웠다. 근데 지금 생각하니 역시 지리산은 옳았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안이하게 사는 게 편해서 남편만 바라보며 주저앉고 있던 나에게 지리산이 깨달음과 용기를 주었다. 남편에게 집착하지 말고 혼자 뭔가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댔다.

남편 없이 혼자 홀로서기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제주올레길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힘든 산도 아니고 오름정도는 거뜬히 오를 수 있을 것 같고 걷는 거는 자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다음 주 일요일 아침 출발하는 제주도 비행기 1인석 티켓을 예약했다. 그것도 편도로. 지금 예약하지 않으면 결심이 다시없던 일로 돼버릴까 봐. 남편한테 의지하지 말고 혼자 떠나보자.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걷다 걷다 힘들면 돌아오자.

이제라도 용기 내서 밖으로 나가보자. 그렇게 집순이 칩거 설여사는 생전 처음으로 혼자 제주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