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마주하는 4층 사무실. 그곳에 이르는 목적지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승강기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비상구의 육중한 철문 앞으로 향했다. 초록빛 안내등 아래 방화문 손잡이를 움켜쥐고 몸 쪽으로 힘껏 잡아당기자, 문 위쪽에 달린 닫힘 장치가 손목을 타고 묵직한 무게감을 전해왔다. 어깨에 온 체중을 실어 한 번 더 당기고 나서야 문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그 틈새를 타고 계단실의 차갑고 선명한 공기가 얼굴 전체로 밀려들었다. 오랫동안 닫힌 공간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건조한 먼지 냄새가 숨결 끝에 머물렀다.
가죽 구두를 신은 채 두 계단씩 성큼성큼 발을 뻗어 올랐다. 딱딱한 구두 굽이 시멘트 바닥을 때리는 규칙적인 울림이 아래층에서부터 위층까지 메아리치며 튀어 올랐고, 그 소리는 좁고 높은 공간의 벽면을 타고 몇 번이고 되돌아와 귓가에 박혔다. 종아리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질수록 외투 안쪽의 심장은 박자를 높이며 거칠게 요동쳤다. 발바닥이 땅을 밀어내는 감각이 척추를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숨이 미처 가빠지기도 전에 눈길은 이미 다음 층의 하얀 계단 끝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멈추는 법을 알지 못했다. 아니, 멈추면 그대로 가파른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줄로만 믿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였다. 사무실 계단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낯선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2층과 3층 사이, 그 모호한 높이에서 발걸음이 돌연 툭 멈춰 섰다. 단단하게 굳어버린 허벅지 근육은 움직이기를 거부했고, 폐부 깊은 곳에서는 뜨겁고 메마른 바람이 올라와 목구멍 안쪽을 사정없이 긁어댔다. 거친 숨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턱 끝에 바짝 힘을 주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느릿하게 흘러내렸다. 비상구 안내등의 초록빛이 바닥에 길게 번졌다. 쇠 난간을 다급하게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금속의 서늘한 기운이 살갗을 파고들었지만, 이내 배어 나온 땀 때문에 미끄러질 것 같은 축축함만이 손안에 남았다. 고개를 숙여 발밑을 보았다. 환한 조명 아래 구두 앞코에 뽀얗게 앉은 먼지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방금 지나온 계단들이 가파른 절벽처럼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때 위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난간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곧게 폈다. 벽에 붙은 안내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으나 글자들은 물 위에 비친 것처럼 번져 보일 뿐이었다. 내려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호흡을 더욱 깊게 눌러 참았다. 심장 소리가 이 환한 공간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였다. 모르는 사람 하나가 내 곁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발소리가 아래층으로 멀어지자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계단실 안쪽에서 한 번 더 울렸다. 그제야 꾹 참고 있던 숨을 한꺼번에 내보냈다. 어깨가 크게 들썩였고, 말간 공기가 비어 있던 가슴 안으로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사실 계단실에서 숨이 멈추기 오래전부터, 나는 새벽마다 서재의 불을 밝혀왔다. 매일 새벽 4시, 고요한 방 안에서 화면 위를 깜박이는 커서와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만의 의식이었다. 때로 자판 위에 올린 손가락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지듯 헛돌기도 했다. 연필을 쥐고 종이의 결을 거칠게 긁어 내릴 때면, 그 소리가 마치 내 살점을 조금씩 깎아내는 소리처럼 들려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다. 그렇게 하루의 조각들을 접어 마음의 서랍 속에 보관해 온 시간들이 벌써 수년째였다.
하지만 계단 위에서 발이 묶였던 그날 이후, 새벽의 공기는 유독 다르게 다가왔다. 그전까지의 글쓰기가 단순히 하루를 기록하는 습관이었다면, 그날 이후부터는 내 숨의 자리를 확인하는 절실한 과정이 되었다. 나를 지탱해 준 것은 결국 그 새벽에 눌러쓴 정직한 문장들이었음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깎아내던 그 새벽들이 쌓인 덕분에, 나는 주말이면 도서관을 찾아 더 깊은숨을 고를 수 있었다. 사무실의 차가운 철제 계단과는 달리 도서관의 계단은 사유의 층을 오르는 평온한 길이었다. 오래된 책들이 내뿜는 쿰쿰하고 정겨운 종이 냄새를 맡으며, 의미 없는 약속들로 가득했던 명단에서 내 이름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컵에 따뜻한 물을 따르며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모양을 응시하는 동안, 시계 소리는 더 이상 나를 벼랑 끝으로 재촉하지 않았다.
오늘, 나는 다시 사무실 비상구 앞에 섰다. 가야 할 곳은 예전과 다름없는 4층이다.
한 칸씩,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발바닥이 땅을 딛는 느낌이 무릎을 타고 고르게 전달되었다. 숨이 조금씩 가빠지기 시작하는 2층과 3층 사이. 예전에 내가 멈춰 섰던 바로 그 자리다. 이번에도 나는 쇠 난간을 잡았다. 손끝에 전해지는 금속의 단단한 감촉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거나 누군가의 발소리에 귀를 세우지 않았다. 계단실의 고요함 속에 나의 숨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을 뿐이다.
공기가 들어왔다 다시 나가는 순간. 한 박자, 그리고 다시 한번의 긴 호흡.
요동치던 가슴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손가락 끝에 들어갔던 힘이 풀렸다. 팽팽하게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앉았을 때, 나는 다시 발을 움직였다. 딱 한 칸이었다. 구두 굽이 바닥에 닿는 울림이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들려왔다. 마침내 4층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묵직한 방화문이 다시 시야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문을 열기 전, 지나온 길을 확인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서서 숨을 고르던 계단 사이의 공간이 보였다. 그 자리는 여전히 그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손잡이를 쥔 손바닥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문을 밀었다. 틈새로 환한 빛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한 발을 안으로 들여놓았다가, 다시 멈춰 섰다. 문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 한 번 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뱉는 숨에 깨끗한 공기가 섞여 나갔다. 나는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내 숨이 가진 오직 그 온도만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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