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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Tang Oct 28. 2024

갈림길

지긋히 눈을 감고 내 말을 듣는지 안 듣는지 바라보고만 있는데, 눈을 뜬 너는 나를 지나치지 않고 그저 저 저 하늘만을 향해 가는 듯하다.

어쩌면. 아니 확실히 나를 무시하고 있는 너는 언제쯤 여기를 바라봐 주는 걸까. 비치고 싶지 않기에 더 집착하게 되어버린 너는 다시는 나의 눈에 비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만 같아 두려운 느낌이 든다.


너를 보고 싶지 않았다. 거만하고 멍청하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은 믿지 않은 채 너를 모르는 사람만을 믿으려는 멍청한 너를.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피해 고자 한다. 너의 눈에 내가 비쳐버리면 나는 또 이 생각들을 잠시 보류하고 지금만을 위해 살아가겠지.

그렇게 살아온 지금까지의 시간에 대해 매일밤 후회하고 곱씹으며 지금에 다다르게 된 것 같다.


너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정한 나 자신은 너와 함께 있을 때만 드러나며 그런 나와 맞는 너와 함께여서 늘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유의 침묵과 눈과 눈의 평행으로 앞으로는 절대 마주칠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런 불안감. 나를 떠날 거라는 그 불안감이 언제나 너의 체취 안에 숨겨져 있다.

나도 물론 알고 있다. 이 사람은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나도 이 사람이 없으면 그 누구와도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다시 눈을 마주칠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와 함께 있으면 단 1분이라도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없는 이 답답함은 그 누구와도. 내가 죽도록 싫어한 그 사람과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째서 나는 이 줄을 끊지 못하고 있는 걸까.

너의 향기에 구역질이 난다. 5년 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같은 이 지옥 같은 냄새는 어느샌가 내 몸에 까지 배여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갇혀있다.

나도 물론 알고 있다. 이 사람과 지금 당장 멀어지고 내가 지금 사랑하는 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이 사람이 아닌 그들에게 모든 걸 쏟아야 한다는 것. 나는 너를 제외한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다시는 눈을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날아가버린 모자를 줍지 않고 빤히 쳐다보고 있던 너를. 저 먼 깊은 강에 둥둥 떠다니는 그 모자를 너는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스스로 가져가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너의 눈빛을 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많은 슬픔을 눈에 빠트리고 있는 너를 이해할 사람은 나밖에 없으리. 내가 이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누가 구할 수 있을까. 그러니 너는 어서 나와 눈을 마주쳐야 한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너의 말도 안 되는 시끄러운 논리들이 내 귀를 스치지 못하고 깊게 내려 박힌 채 내 머리를 둥둥 치며 내 머리를 시끄럽게 했었던. 달아오른 내 머리는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 마냥 시뻘건 색을 하고 있었다. 8월의 바람은 습했고, 그런 기분 나쁜 바람마저도 나에게는 상냥하게 느껴졌다.

그런 상냥한 바람은 너에 의해 무거워져 버린 너의 존재를 가뿐히 날려주었고, 나에게 닿지 못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까맣고 더러운 강 위에 던지듯이 놓았다.

나는 그 더러운 강과 아주 잘 어우러져있는 너의 모습을 보며 가뿐함을 느꼈다. 둥둥 떠다니며 저 강 아래에 있을 하수처리장에 가서 깨끗해질 너의 존재를 상상하니 눈물이 나버릴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사람은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기에 나를 바라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무섭고 넓은 세상 속 서로 붙어야만 하는 우리의 시간 도중에 너를 방해하는 그것들을 내가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의 구원에 너는 감사를 표하지 않았고, 그 죄책감에 의해 너는 내 눈을 지켜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용서하였다. 너의 마주치지 않는 눈으로 모든 것이 이해된 듯했다. 너의 미안함. 나에게 표하고 싶은 감사함에 의해 목이 막혀 눈도 목도 모두 막혀버린 그 느낌들을 나는 이해했다.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 봐도 너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듯이 반짝이는 모래알 같은 너의 눈동자는 지금껏 듣지 못한 사실에 더 멀어지려는 듯 더욱더 반짝여가고 있는 것 같다.

한 번은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밖에 없을 중요한 기회가 왔었던 적이 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매일같이 아등바등거리던 나를 너는 그저 나를 그 기회에서 때 놓았다. 그저 없애버렸다.

나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을 그 기회는 너로 인해 사라졌다.

그래도 이해한다. 나는 네가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 지금 너를 보고 있지 않는 나를 말리지 않는 것은 그 이유에서 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그 죄책감이 죽을 때까지 너를 옭매이면 얼마나 좋을까.


"해야 할 말이 있어."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 속에 무언가 풀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는 걸 난 알아."


"난 네가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는 걸 눈치챘었어."


"뭐가 됐든 우리가 서로에게 뭘 원하는지 알고 있고,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네가 알고 있었다는 게 너무 기뻐. 평생 말하지 못할 것 같았어."


"그럼 이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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