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커피 기계의 칙 소리가 나는 카페에서 나는 창가 쪽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겨드랑이 쪽이 살짝 조이는 정장을 입은 채로 티 나지 않게 땀을 조금 흘리고 있는 여름의 시작.
너의 질문에 나는 3분 정도 담배를 피우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름의 답은 찾았지만 그 답을 풀어줄 공식은 존재하지 않아 “나는..”에서 목이 멈춰버린 나는 한 손에 담배를 들고 너를 바라보고 있다. 말하고 싶은 많은 답들이 있지만 나의 목으로는 그 답을 풀지 못했기에 그저 침묵했다. 너를 보던 눈을 살며시 다시 창문밖으로 돌린 나는 담배의 연기를 마시며 이 빛에 비치는 나의 눈동자의 빛이 모두의 눈에 비치길 바라며 밖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부끄러운 듯이 올라온 거리의 아지랑이와 몇 년간을 위해 모아둔 매미들의 외침. 사람들은 멈춤 없이 어디론가로 계속 걸어가고 있다. 이렇게 넓고 계속 움직이는 세상 속에 나는 어째서 여기 앉아있는 걸까.
옆자리의 시끄러운 커플들은 언제나 저 자리에 앉아있다. 시끄럽게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듯한 저 둘은 남들의 눈치에는 이미 장님이 돼버렸는지 스스로만의 영화를 찍고 있었다. 어쨌든 간에 저들은 내가 신경 쓸바 없고, 나는 지금 당장의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앞의 이 사람은 나에게 뭘 기대하는 것일까. 뭘 바라기에 오늘과 같은 덥고 짜증 나고 약속을 끝낸 후의 피곤한 나를 불러 세워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가.
몇 분의 침묵 후에 그 사람은 입을 열었다. “혹시 나랑 얘기하기 싫어?” 난 저런 질문을 꽤나 많이 받아온 거 같다. 일단 얘기라는 거에 대해 생각해 보자. 대화라는 건 보통 두 사람의 의견이 주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 사이에 그것에 대한 반응이나 공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랑 대화를 하는 건 그저 서로의 일방적인 대화와 그거에 대한 무미건조한 반응뿐이잖아. 그러니 나는 너랑 얘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그저 네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얘기하고 나는 그것에 대한 자동응답기 같은 반응을 할 뿐이니깐.
아무튼 나는 슬슬 말해야 할거 같기에 잡생각을 그만두고 입을 열기로 했다. ”무슨 소리야 잠시 생각할 게 있었어서 그래. 아 참, 일은 잘 돼가? “ 실실 웃는 얼굴로 나는 말했다.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더니 신나서 무언가를 또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귀를 닫고 웃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짧은 단어만을 연속해서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애초에 내가 이 상황을 싫어함에도 이곳에 온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나는 결국 생물학적인 목표를 도달하기 위함 그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하나를 위해 사람들은 이 모든 걸 참아가며 살아가는 걸까? 그렇게나 신성하고 궁극적인 목표인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라는 끝이 없는 생각이 시작될 무렵에 핸드폰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대화를 빠져나갈 수 있는 좋은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가 핸드폰을 들었다. 담뱃불을 붙이고 한번 심호흡을 한 뒤 나는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은 나에게 말했다. ”지금 뭐 하고 있어? “ 전화를 받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지금 뭐 하고 있어. 지금. 지금이라는 건 지금 당장인데 어째서 오늘 뭐 하고 있어라는 뜻이 되는 건지 아직까지 이해가 안 갔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원하지 않는 전화를 받고 있어.라고 할 순 없잖아? 나는 말했다. ”그냥 친구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어. “ 또 몇 초간의 공백 후 전화기는 나에게 말했다. ”부럽네 그 사람은. 내가 나오라고 할 때는 안 나오더니 그 사람은 꽤 소중한 사람인가 봐? “ 머리가 다시 아파왔다. 내가 대체 뭘 해줘야 되는 건데. 나라고 이러고 싶은 게 아닌데. 계속해서 조여 오는 인간관계라는 고무줄은 해지고 해져도 찢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소중한 사람 아니고 지금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너 또한 딱히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다. 목구멍에서 실언이라는 이름의 사실이 올라오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목 앞에서 막혀버렸고 나는 실실 웃는 목소리로 무슨 소리냐고 우리 곧 만나자는 마음에도 있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기억 안 나는 이런저런 말을 하고 친구가 기다린다고 전화를 끊은 후 다시 카페에 들어갔다. 나와 이야기를 하던 그 사람은 핸드폰을 보며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그 사람의 피부색이 보였다. 지금껏 햇빛을 본 적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하얀 그 사람의 피부는 어째선지 점점 까매지는 것 같은 내 마음과는 대비되어 보여 기분이 나빴다.
”오래 기다렸지? “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하고 나는 그 사람의 반대편에 다시 앉았다. 그 사람은 내가 전화를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그냥 친구라는 말을 하고 다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 사람은 날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높은 나의 시야에서 그 사람을 내려다보면 이 얼마나 작은 생물이 이렇게 나를 짜증 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를 가장 믿는 순간에 너를 상처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너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너의 동공의 색과 속눈썹의 길이. 입을 열지 않는 너는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 그 동공에 나의 모습이 비치자 나는 고개를 황급히 돌렸고 다시 창밖을 보기 시작했다.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런 카페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었다. 꽤나 크런치한 기타 소리와 콘트라베이스의 중후한 소리. 붓으로 긁는듯한 드럼의 소리. 재즈라기에는 난잡했고 락이라기엔 차분했다. 그런 혼란스러운 노래를 듣던 와중 나는 한 가지 질문이 머리에 떠올랐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너한텐 사랑이란 건 어떤 거야?” 그 사람은 나의 당황스러운 질문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후 몇 초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나에게 말했다. “나한테 사랑은 알고 싶은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알고 싶은 사람에 대해 알아가다가 좀 더 가까이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모습들도 있잖아. 그런 모습을 알기 위해선 그 사람에게 더욱 가까운 사람이 될 필요가 있는데 그걸 위해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는 거일 거야. 사람의 깊숙한 곳에 가기 위한 열쇠 같은 거지.” 나는 놀랐다. 나는 그 사람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냥 세상에 있는 다른 많은 멍청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나와는 다른 의견이었음에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나는 황당하여서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와 살짝은 찢어진 눈. 그럼에도 동공만은 확실히 보였다. 나를 보며 자신만만하며 웃고 있는 그녀를 처음으로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나의 뺨을 톡 쳤고 나는 그제야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사실 별 생각은 없었다. 그냥… 그냥.. 멍 해졌다. 그녀 때문이나 무엇 때문도 아닌 그저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냥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잔의 숟가락을 손으로 굴리고 있었다. “슬슬 나가자.” 그녀는 이제는 질렸는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나는 일어서서 카페의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딱히 그녀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의 압박에 의해 내가 게산을 했다.
밖에 나가니 한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비쳤다. 그녀는 추운지 나의 팔짱을 끼고 숨을 골랐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어딘가에 들어가고 싶었던 나는 그녀에게 우리 집에 올 것을 권했다. 그녀는 흔쾌히 그러자 했고, 우리는 아침까지만 해도 아지랑이가 피어있었던 아스팔트에 쌓인 눈을 발로 밀며 걸었다. 나는 들고 온 가방 안에서 스웨터를 꺼냈고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처음엔 거부했으나 2번쯤의 권유 후에 나의 스웨터를 가져갔다. 스웨터를 입는 그녀는 긴 머리로 인해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옷을 정리해 주니 그녀는 나를 보며 웃었다. 너의 웃는 모습도 언젠간 나를 바라보며 우는 모습으로 변하겠지. 난 꽤나 쓸쓸한 표정을 지었는지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는 안 놓칠 거니깐.” 나의 팔이 꽉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만지며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안으며 떨어지기 싫다고 말하였으나. 그는 멀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점점 떨어져 가기 시작했고 나의 눈에 보이는 건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의 노란색뿐이었다.
잠에서 걘 나는 담배를 꺼내 들었다. 담배를 피우며 나는 침대 위에 얹어져 있는 책상을 펼치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순간을 기록했다. 하지만 하나의 장면은 언제나 빠져있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그녀가 말할 때의 표정과 입모양은 기억나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펜을 꽉 쥐었다. 떨어지는 눈물은 일기장위에 떨어지며 자국들을 남겼다. 지난날들의 꿈의 끝은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단 한 번도 끝을 본 적이 없는 나의 꿈들은 마치 두 편을 예정하고 출시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 1편으로 끝나게 된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거스르오나가 약을 받은 후 다시 침대에 누웠다. 창밖을 보기 위해 침대의 각도를 적당히 높인 후에 약을 삼켰다. 세로로 장면 장면 잘린 창밖의 모습은 중간중간이 사라진 내 꿈들과 같았다.
언젠가 그 꿈의 끝을 볼 수 있을 때까지 머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