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풍파 속에서 건져 올린 것들

[필사]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38(D+388)

by 서강

오늘을 사는 겸허함

살아보니, 인생의 풍파라는 것이 겪고 싶지 않다 하여 피해지는 것이 아니더군요. 거센 비바람이 예고 없이 들이닥치듯, 제 삶에도 크고 작은 폭풍이 참 자주 몰아쳤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아주 어릴 적, 얼굴의 윤곽마저 희미한 초등학교 2학년 때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두 집 살림으로 이미 제 삶의 테두리 바깥에 계셨으니, 저는 평생을 고생으로 삭여낸 홀어머니의 등을 보며 자란 것이 전부입니다. 어머니의 깊은 주름살이야말로 제가 세상에서 가장 먼저 배운 생활의 교과서였습니다.


그렇게 컸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운명—일찍 아버지를 여읜—을 지닌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습니다. 같은 처지였지만 서로를 품은 삶의 가치관은 어찌 그리 달랐던지요. 그 차이를 메우고 간신히 서로의 언어를 찾아 소통의 잔잔한 맛을 볼 무렵, 그 사람마저 홀연히 저를 두고 떠나갔습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상실감 속에서, 저는 또 한 번 거대한 풍파와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사업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고, 길바닥에 나앉기 직전의 처참한 상황이 되어서야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그 처절한 순간, 저는 이 속물적인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돈 앞에서 속절없이 무릎을 꿇고 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때의 고통은 그저 ‘힘들었다’는 단어로는 설명이 안 될 만큼 모질고 날카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월을 지나오니, 깨닫습니다. 그 혹독했던 풍파들을 정면으로 맞서고 치열하게 살아본 덕분에, 저는 삶의 속살을 남들보다 깊숙이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노력과 대가 없이 그저 손안에 주어지는 법이 없다는 엄중한 진실을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지요.


옛날에는 배수진(背水陣)이라도 쳐야만 겨우 발밑에서부터 간절함이 솟아 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숱한 고난을 거름 삼아 삶의 깊이가 깊어진 덕분인지, 억지로 몰아세우지 않아도 저절로 진정한 간절함이 마음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오릅니다.


이제야 저는 결과보다 그 과정을 겸허하게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과정 없는 결과란 존재할 수 없음을 알기에, 거창한 목표나 화려한 결실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오늘 하루, 이 순간뿐입니다.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충실히 살아내는 중입니다.


이 모든 풍파 속에서 건져 올린 지혜를 안고, 저는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KakaoTalk_20251206_151511647_01.jpg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中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질문을 바꾸니 인생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