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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Collector Nov 21. 2024

파로마 남편-ADHD 남편과 살아가는 법(2)

우리집, 열려 있는 장농 문을 보며 나는 늘 이 단어가 떠오른다. 


"파로마!" 



이 사진과 이 단어를 알고 있다면, 당신의 연식은 최소 MZ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어릴 적 광고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여자들. "파로마!"하고 외친다. 

어릴 때 장농 속에 들어가 문을 열면서 외쳐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그리고 닫지 않고 다른 놀이를 찾아 떠나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 맞은 적 있는 이가 여럿일 것이다. 


우리집, 열려 있는 장농 문을 보며 나는 늘 이 단어가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그 문을 부지런히 닫고 다닌다. 그렇다. 우리 집엔 ADHD 부자가 산다. (ADHD가 많아서 부자 아니다. ADHD 아빠와 아들이라 부자이다. 둘이나 되니 부자가 맞긴 한 것 같...)


옷장 문, 찬장 문, 로션 뚜껑, 물티슈 뚜껑, 냉장고 문 등 모든 것을 다 열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종종 열고 다닌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닫는다. 달팽이가 끈적거리는 흔적을 남기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그 둘은 대부분의 것들을 "파로마!"하며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나는 그 흔적을 줍고 다닌다. 헨젤과 그레텔이 오솔길에서 빵을 줍듯이. 



처음엔 그랬다. 

신혼, 남편이 설거지를 다 끝냈다면서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물 한 잔 마시러 주방으로 가보니 수세미가 헹궈지지 않은 채로 다양한 향신료(?)가 끼여있는 채로 그렇게 싱크대에 홀로 누워 있었다. 

나는 깔깔대고 웃었다. 왠일인지 열 받지 않았다. 착해서 그런게 아니었다. 

이해되지 않아 폭소가 터진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을 때 웃음이 터지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 한 편의 코매디 같았다. 

다 끝냈는데 정말 설거지만 끝냈고, 주방 정리는 심지어 사용한 수세미도 헹구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천진난만(?)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의아스러웠다. (아, 나 정말 사랑했나?)

그는, 흔히 말하는, '물 안내리는 남편', '감자 반만 깎으랬더니 정말 반만 깎은 남편'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시작이었다. 화장실의 수건함은 보통 열어놓고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며, 찬장에서 컵을 꺼내면 닫지 않는 것이 코스였다. 의도가 없는 '마무리 짓지 않는' 다양한 일들에 이젠 새로울 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즈음 나는 오늘 또 새로운 것을 대면하고 기록한다. 


한글 파일 작성하고 나면 늘 저장하지 않아 제목 없이 "빈 문서"인 슬픈 글들. 나는 매번 고민해왔다. 삭제 해? 저장해? 저장해야 하면 어디에 저장해? 혹시 해서 모아 놓은 제목 없이 번호만 붙은 "빈 문서"들이 바탕화면에 <남편> 폴더에 가득하다. 내가 이걸 모으는 건가? 남편에게 필요해서 둔 건가? 나중에 보긴 하나? 필요하긴 하나? 고민하다 용량을 차지해가고 있을 즈음 나는 다시 한 번 깔깔 폭소를 터트렸다. 

아하! 이것도! 그거구나! 


도대체가 이 작은 걸 왜 안(못)하는지 의아스러운 남편과 살고 있다면, 화 부터 내지 말고 그의 기질을 의심하라. 분명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가정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리고 의도한 것은 아니나 아래 리스트의 일이 자주 반복되어 "열 받는" 정도가 아니라 그 수준을 더 넘어선, "의아스러운" 정도라면 그 남편도 ADHD를 의심해볼 만 하다. 


1. 변기, 찬장, 물 뚜껑, 치약 뚜껑, 물티슈 등 뚜껑 있는 것들을 파로마하는 편이다. (거의 다 썼기 때문이라곤 한다.)

2 .사소한 약속을 자주 잊는다. (급한 일들 때문에 깜빡했다곤 한다.)

3. 심각한 대화를 하는 때에 졸기도 한다. (시간이 늦었거나 피곤한 날이었다곤 한다.)

4. 집안일을 시작해도 마무리를 잊는다. (잊은게 아니라 갑자기 더 중요한 일이 생겨서라곤 한다.)

5. 멀티가 안되는 편이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편이라곤 한다.)


그런데 위의 항목들을 '의도'한 행동으로 해오는 것이라면 ADHD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행동들이라면 성인 ADHD를 의심해볼만하다. 사회 생활은 잘하지만 집에서만 그럴 수도 있다. 그것은 살아오며 social skill이 늘어난 것의 결과이다. 


"결혼해서 살아보니 이럴 줄 몰랐어! "

발 동동 굴리며 속은 느낌에 열 받아하다가 어느날엔 팔자려니 포기 하고 있진 않은가?


사랑하지만 답답하고, 답답하지만 사랑한다면 계속 열불 내고 있지 않아도 된다. 


근처의 "가정정신의학과"를 찾아가보라! ADHD는 도파민 부족의 뇌물질 문제이다. 의사와 상의하여 "뇌파 검사' 받기를 추천한다. 의료보험이 되는 항목이라서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검사를 받아볼 수 있다. 나와 남편은 인당 약 4만원 정도를 지불했다. 그리고 얼마 안되는 약값으로 매일을 '좀 더 나은' 생활로 이끌어가며 살고 있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 까지 수 많은 대화와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와 대화가 있었다. 그리고도 해결되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ADHD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무릎을 딱! 쳤다. 


원인을 알면 노력할 수 있고, 노력하면 변화의 길로 더 가까이 간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변화>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노력한다는 것은 변화에 근접하게 한다. 

그리고 함께 노력할 수 있게 한다. 

ADHD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남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 

아니, 남편들도 아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그러할 것이다. 




*<가정정신의학과> 접수와 진료, 약 복용과 증상 호전 여부에 관해서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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