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발언대로 그는 자신의 그림에서 미스터리를 만들어냈다. <재현되지 않았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무엇을 재현하려 했을까? 나는 왠지 저 그림의 제목이 <자화상>인 것만 같다. 자신의 모습을 재현하려 했으나 재현하지 못했다는 것 같다. 저 남자의 뒷모습은 젊은 르네 마그리트와 몹시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왜 재현되지 않았을까?
<이상한 나라의 그림사전-성찰>
오늘 교도소 수형자들을 대상으로 알코올중독 예방교육을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시간에 PPT로 작업한 권정민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그림사전>을 화면에 띄워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이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의 <재현되지 않았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권정민작가는 이 그림을 <성찰>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붙였다. 이 그림에 대한 나의 해석은 덧붙이지 않겠다. 기회가 된다면 <이상한 나라의 그림사전>을 직접 찾아보고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에 남겨준다면 우리의 사유가 더 깊어질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를 권장한다. 그러면서 권정민작가의 다른 그림책들도 보면 꽤 흥미로울 테니까.
르네 마그리트 <재현되지 않았다>
이제 다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으로 돌아오자. <성찰>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재현되지 않았다>를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수형자들에게 질문했다. "거울을 보고 있는 남자는 왜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이 보이는 것일까요? 그중 인상적이었던 2개의 대답을 나누고자 한다.
20대부터 매일 소주를 7병씩 마셨다는 40대 남성 A씨가 말했다. "평생 앞만 보고 달려와서 그런 거 같아요. 앞만 보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게 아닐까요?" 그는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코올은 딱 필요한 만큼만 마시고 절제한다는 조폭 출신 50대 남성 B씨가 말했다. "자신의 뒷모습은 볼 수 없잖아요. 뒷모습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의 마음, 각오 같아요." 두 사람의 두 가지 생각에 모두 공감이 갔다. 그리고 나도 하나의 생각을 덧붙였다.
카라바조(미켈란젤로 메리시) <나르키소스>
"저는 나르키소스가 생각나요. 나르키소스는 자기 얼굴을 몰랐거든요. 그래서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게 자기인 줄 모르고 매료되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갈망하다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굶어 죽고 말지요. 자기 자신조차 모르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결국 삶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자신의 민낯을 부인하지 않고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혹은 모르는 척하는 자기애는 결국 자신을 파괴로 이끈다. 하지만 초라한 자신의 모습까지도 직시하면 비로소 치유의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자신의 문제적 상황을 인정하고 변화할 수 있는 힘도 생길 것이다. 그때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타인을 진정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가 쏘아 올린 미스터리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재현을 가능하게 했고, 오늘 내가 만난 이들에게 저마다의 자화상을 재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