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무엇일까? 나는 어떤 '존재'인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따금씩 이런 생각이 들면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가령 '나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라도 달라진다면 그것은 과연 나인가'처럼.
우선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떠올려 보자. 분명히 현재의 '존재'하는 나의 옛 모습으로 일련의 과정을 거쳐왔으므로 결국은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로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같은 '존재'로써 인정받을 수 있는가? 시간선 상에서는 동일한 인물로 여겨지지만 시간선을 떠나, 즉 멀티버스가 구성되는 시점부터는 같은 인물로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시점에서부터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과거 발생하는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해서 성장을 이룬다. 그 성장에 따른 선택의 영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령 과거에는 크고 작은 배려를 베풀던 사람도 특정 사건으로 인해 마음을 닫고 더는 배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와 현재의 선택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 시점에서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물론 시간선으로 본다면 일직선 상에 있는 것이니 같은 사람일 테지만 그 일직선을 벗어나게 된다면 그저 잠시 접점이 있던 어긋난 선이 될 뿐이다.
1도라도 차이가 난다면 끊임없이 멀어질 뿐이라 하지 않는가, 그 과정이 오래 걸린다는 것뿐이지. 따라서 특정 사건에 의해 선택이 달라지는 게 아니더라도 각자 다른 가치관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면 결국 '나'의 존재 역시 현재에서만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존재는 시간에 존속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시간이란 정말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나는 여러 가지 과학 가설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이 역시 그러하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류가 구별하고 사용하기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 정립된 개념이다. 실제로 시간의 흐름은 존재하지만 시간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겠지만 시간이 물질적 개념이 아닌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생각해 보자. 우리의 눈에는 고양이는 늘상 존재한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존재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다만 상자를 닫음으로써 고양이가 가려진 순간부터는 우리가 보기 전까지는 존재가 확립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존재 여부는 추상적 개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하하, 말하면서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장난인가 싶은데 이런 생각의 흐름과 발산이 나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즐겁다.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철학이란 그런 것일까?
살짝 여담으로 빠져 인류의 존재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인류는 지식을 위한 생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모든 종족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유행하는 노래를 가지는 고래류, 인간을 따르도록 진화한 개, 사람들을 피하지 않게 된 비둘기처럼 말이다.
그런데 인류는 조금 더 특별하다. 생존과 유흥거리와 맞닿아 있지 않아도 몰두하는 분야가 있다. 철학이다.
물론 철학이 공학, 순수과학, 국어, 의학 등 우리의 생존과 맞닿아 있는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은 사실이나 본질은 다르다. 그렇지만 철학의 시작으로 이 모든 게 발전할 수 있었다. 현대에 와서는 철학을 전공해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소수의 사람들만이 철학에 남아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거니와 그렇게 발견된 철학 이론은 또 다른 소스로써 타 분야에 활용된다. 신기하지 않은가. 앞서 말한 '존재'의 증명은 아주 오랜 시간 철학의 근간이 되는 질문이었으니 결국은 나도 인류의 종족 특성을 지닌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더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는 크지만 안타깝게도 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 데다 시간을 증명하기 위해 과학적으로 탐구할 만큼의 지식도 없어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논문을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면서도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한 대학생이자 취준생이니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인류는 도달할 수 있을까? 그것만이라도 알고 죽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여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마주한다면 그 순간부터는 다른 존재이다라고 적어놨지만 정신과적으로는 마주할 일이 없으므로 같은 존재라고 정의해야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멀티버스 즉 시간선을 떠나온 존재일 경우에만 다른 존재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정신의학과에서는 이것을 자기개념이라 하는데 이는 시간적으로 지속되는 일관성있는 동일한 개체라는 의식을 포함, 시간의 흐름과 경험의 누적으로 인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동일한 존재라는 자기정체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게되는 이들 중 아마도 시간 선을 떠나온 자신을 보게 될 일은 거의 없으니 과거의 나를 부정하거나 타인으로 구분지으면 위험하다. 그저 가정일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