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란 걸 기억해 주세요."
입사 3년 차 개발팀장의 메일을 읽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저 말을 끝으로 그가 이끌던 5명의 개발자들도 함께 퇴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때는 한 달 전 회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저희는 신규 프로세스 도입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을 하던 중이었는데요.
"AI 기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쟁사들이 모두 도입하고 있어요." 개발팀장이 회의실 화면을 가리켰습니다.
경쟁사 분석 자료가 빼곡했습니다.
"지금은 UX 개선이 우선입니다. 고객들이 기존 기능도 제대로 못 쓴다고 하잖아요." 마케팅 팀장이 반박했습니다. 그의 화면에는 사용자 피드백이 가득했습니다.
두 팀의 주장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AI 도입은 분명 미래 경쟁력을 위해 필요했고, UX 개선도 당장의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시급했습니다.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는 '조금 더 데이터를 모아보자'며 결정을 미루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대표님, 언제쯤 방향이 정해질까요?" 말이 나왔습니다.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회의를 수차례 소집하며 그렇게 또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토론 과정은 점점 지난해져 갔습니다. 처음의 열정적인 제안들은 실무적인 하소연으로 바뀌었고, 어느 순간 회의는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한 달째,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뺏길 순 없습니다. 저희가 제안했던 AI 기능은 이미 경쟁사에서 이미 진행 중이에요. 처음엔 반대 의견도 이해하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조차 없는 시간이 계속되니, 팀원들의 사기가 완전히 바닥을 쳤습니다."
이 내용을 끝으로 메일의 마지막 문장이 제 가슴을 쳤습니다.
"리더는 결정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란 걸 기억해 주세요."
그들이 떠난 후 회사는 빠르게 흔들렸습니다. 남은 개발자들의 업무 부담은 두 배로 늘었고, 신규 개발은 중단됐습니다. 기존 서비스 유지조차 버거워졌고, 결국 3개월 만에 매출은 반 토막이 났습니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때 무엇을 선택했든 회사는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AI를 선택했어도, UX를 선택했어도 길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이 회사를 망가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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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리더들이 '옳은 결정'을 찾느라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10년간 수백 명의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며 깨달은 게 있습니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옳은 결정'이 아닌 '시기적절한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이 결정이 잘못되면 어쩌지?", "이쪽 의견을 따르면 저쪽이 반발하지 않을까?" 등 어떤 게 옳은 결정인지를 두고 재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 아니라 '결정의 부재'입니다.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충돌은 필연적입니다. 중요한 건 갈등의 유무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해결하느냐입니다.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모든 연관 업무가 멈추거든요. A팀의 결정을 기다려야 B팀이 시작할 수 있고, B팀이 멈추면 C팀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직 전체가 정체되죠.
더 심각한 건, 시간이 흐를수록 업무적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번진다는 점입니다. 처음엔 "이 방향이 맞다"며 토론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왜 우리 의견은 무시하는 거지?"라며 피해의식에 빠집니다. 한 달만 지나도 '무엇이 맞는가'가 아닌 '누구의 말이 맞는가'를 두고 다투게 됩니다.
이처럼 리더의 결정이 늦어질수록, 조직은 점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결정을 내릴 순 없잖아요?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당연히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신중히 해야죠. 제가 강조하는 것은 충분히 고민했음에도 결정 자체를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살 수도, 미래를 볼 수도 없습니다. 어떤 결정이 옳은지는 해보기 전엔 알 수 없죠. 쉽게 말해 똥인지 된장인지는 먹어봐야 압니다.
그렇기에 짧은 기간에 깊이 고민하고 명확한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그때 나올 수 있는 결과는 당연히 안 좋을 수 있지만, 그것을 감안하고서 결단을 내리는 것은 "리더의 책임감"이라 합니다.
구구절절 말이 길었지만, 의사결정의 핵심은 '시기적절성'과 '명확성'에 있습니다. 이렇게 결단을 내렸을 때 이점을 사례를 통해 살펴볼까요?
한 스타트업의 신임 CEO가 취임 직후 조직 개편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3일 동안 집중적으로 1:1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각자의 강점과 원하는 방향을 파악한 뒤, 넷째 날 아침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현재 과제는 고객 이탈률 감소입니다. 이를 위해 개발팀은 버그 수정과 안정화에, 마케팅팀은 기존 고객 관리에 집중하겠습니다. 세부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부 팀원들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아쉬워했지만, 결정의 이유와 방향이 명확했기에 따랐습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실행에 옮긴 덕분에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었죠.
많은 리더들이 이런 빠르고 명확한 결정을 못 내리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옳은 결정을 내리려다 보니 시간이 길어집니다. 처음에 접했던 사례처럼 말이죠.
하지만 모든 결정은 결국 주관적입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리더마다 다르게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모든 결정이 객관적이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정에 대한 근거가 확실하고, 이를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에 있죠.
제가 지난 시간에 강조한 것처럼, 리더십은 인기 콘테스트가 아닙니다. A라는 결정을 내리면 이를 반대하는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결정이라면, 리더는 그 책임을 지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리더 90%가 빠지는 치명적 함정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아무렇게나 결정을 할 수는 없겠죠? 여러분께서 의사결정 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3가지 원칙을 제안드리겠습니다.
1. 실행과 검증이 쉬운 방향을 택한다
2. 데이터와 근거가 분명한 쪽을 택한다
3. 회사의 미션과 비전에 더 부합하는 쪽을 택한다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사례를 한 번 위 3가지 원칙에 비춰 바꿔볼까요?
앞서 개발팀과 마케팅 팀은 매출 하락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두고 의견이 갈렸습니다. 개발팀은 "AI 기능을 도입해 제품 경쟁력을 높이자"라고 제안했고, 마케팅팀은 "기존 기능의 UX를 개선하자"라고 했었는데요.
리더는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UX 개선안을 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첫째, UX 개선은 2주 단위로 나눠 진행하며 효과를 바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AI 도입은 6개월이 걸리고 효과를 검증하기도 어렵죠. 둘째, 고객 데이터를 보면 이탈의 80%가 복잡한 UI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 회사의 미션은 '누구나 쉽게 쓰는 서비스'입니다. AI보다 UX 개선이 이 방향에 맞습니다."
이런 식으로 3가지 원칙에 준거해 결단을 내리고, 또 팀원에게 "왜 이 방향이 맞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만 있다면? 그럼 처음에 반대했던 팀원들도 수긍하게 됩니다. 100%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회사를 위한 결정이구나" 이해하고 기꺼이 동참합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모든 결정에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이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정을 미루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시장 기회를 놓치고, 팀의 실행력은 떨어지며, 리더십은 무너집니다. 핵심 인재들이 우수수 떠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죠.
그러니 기준을 세우고, 깊이 고민하되, 빠르게 결정하셨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스타트업 리더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인 '결정 지연'에 대해 다뤘습니다. 오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결정이 늦어지면 조직은 마비된다 실무자들은 방향을 잃고, 업무는 정체되며, 결국 핵심 인재들이 떠납니다. 시장의 기회는 경쟁사에 빼앗기고, 팀의 사기는 떨어진다
2. 하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하다. 실행과 검증이 쉬운 방향을 선택하고, 데이터로 근거를 만들며, 회사의 미션에 부합하는지 확인한다. 의견 충돌이 있다면 최대 1주일, 깊이 고민할 시간은 3일이면 충분하다.
여러분의 책상 위에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안건들이 쌓여있을 것입니다. 오늘 글을 통해서 여러분만의 의사결정 원칙을 만들고, 팀원들이 빠르게 실행할 수 있게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리더는
'옳은 결정'이 아닌
'시기적절한 결정'으로
평가받는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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