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팽목항에서 시작한 국토횡단 2일차, 오늘도 진도 땅을 걷고 있다. 진도는 제주도, 거제도에 이어 세번째로 큰 섬이다. 오늘은 진도를 벗어나 해남으로 향한다.
진도 읍내에서 진도대교로 이어지는 도로는 4차선 국도 18번이다. 과속 차량이 많아서인지 중앙분리대와 차단벽까지 설치하였고, 약 700M에 달하는 자동차 터널도 있다.
나는 이 길을 벗어나 구도로로 접어들었다. 역시 지나는 차량이 거의 없고 한적하다. 길고 굽이진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발아래 4차선 도로에서 차량은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스마트폰 지도로 다른 길을 검색하였다. 군내면사무소 옆으로 난 길을 찾았다. 명색이 면사무소가 자리한 곳인데, 식당 하나 없고 무척 한적한 시골이다.
그 옆을 따라 마을 길로 접어들어 100여 M쯤 가다 보니 경사로가 나오고 이어 좁은 임도가 나타났다. 승용차는 어림없고, 사륜구동 소형트럭만 다닐 수 있는 길이다.
그래! 이런 길이야. 다니는 사람이 없어 길에는 풀이 무성하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숲길을 올랐다. 고갯마루에는 너른 공간으로 시야가 확 트이며 양옆으로 거대한 바위 언덕이 객을 압도한다. 고두산과 설매봉 자락이다. 산적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작은 절경이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아스팔트 길을 걷다가 이런 길을 만나면 맛있는 짜장면 먹는 기분이다.
임도를 벗어나 산자락에서 내려오자 노란 유채꽃이 너른 밭에 한가득 피어있다. 꽃 색깔에 끌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밭 가장자리 비어있는 축사 옆에서 중년 사내가 걸어 나왔다. 구부정하고 마른 체구에 얼굴은 까맣게 그을었고, 파란 삼선 트레이닝 바지에 빨간색 낡은 셔츠를 걸친 사내의 발가락은 슬리퍼 속에서 흙투성이 상태였다. 말을 건넸다.
“밭이 너른데 이 많은 유채꽃을 다 심으신 거예요?”
“네, 내가 직접 심었어요.”
“여기에 왜 심었어요?”
그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기름 짜려고 심었지요.”
머쓱해졌다. 유채꽃 하면 제주도가 먼저 떠오른다. 드넓은 제주의 들판에 만개한 오월의 유채꽃은 육지 사람들 가슴에 바람을 불어 넣어 제주로 향하게 한다. 그 영향 때문인가, 유채 하면 관광이 먼저 떠올랐다. 이곳 남도 섬 산자락 구석에 누가 유채꽃을 보러 오겠는가. 나에게 유채는 관광이었지만 그에게는 생계였다. 무심함으로 민망해졌다.
밭 가장자리 벽돌 화덕에 커다란 양은 솥단지가 걸려 있고 뭔가 끓고 있었다. 나뭇가지 때는 냄새가 고소했다. 산에서 채취한 고사리를 한솥 가득 데치는 중이란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거 말려서 팔아 봐야 만 원밖에 안 된다며 나이 오십이 안 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랑이라도 하듯 자신도 전에는 전답 육천 평이 있었단다. 언제부턴가 마누라가 친정 간다며 자주 집을 비웠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비운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마누라는 애들 놔두고 자신 몰래 밭을 팔아치워 도망갔다. 여자를 다시 얻어 새장가 가려 하다가도 그런 일을 또다시 당할까 봐 혼자 산다는 것이다.
시멘트 바닥에 망을 깔고 솥에서 펄펄 끓는 고사리를 건져 널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풀어 놓는다. 지금은 가진 건 없지만 마음 편히 산단다. 약간 횡설수설하여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그는 진도에서도 오지에 혼자 살며 누구와 이야기 나눈 지 오래된 듯싶었다. 좋은 여자 만나 새장가 들라는 말을 끝인사로 건넸다.
가진 것 없고, 몸도 성치 않은 데다가 외부와 담을 쌓고, 자기 안에서 사는 사내와 같이 살 여자가 흔치는 않겠지만 짝을 만나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