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의 발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 고찰
연말이 다가오면 전 세계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이던 코카콜라(Coca-Cola)의 크리스마스 광고.
눈 덮인 마을에서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와 흰 북극곰, 그리고 코카콜라가 전하는 이야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올해의 크리스마스 광고 캠페인에 대한 전 세계 소비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코카콜라는 광고·마케팅의 교과서라고 꼽힐 만큼 마케팅 전략의 전통적인 강자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수많은 브랜드 광고는 늘 대중의 공감과 애정을 듬뿍 받아왔고, 결국 코카콜라는 명실상부 굳건한 세계 1위 음료 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시대에서 코카콜라는 늘 새롭고 혁신적인 전략들을 끊임없이 시도해 왔습니다. 지난 2023년에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마스터피스(Masterpiece)' 광고 캠페인을 선보여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죠. 마스터피스 캠페인은 뭉크, 고흐, 앤디 워홀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명작과 코카콜라의 만남을 2분 분량의 영상으로 담아내며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혁신적인 창의성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는 2021년 코카콜라에서 새롭게 내세운 '리얼 매직(Real Magic)'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에 부합하는 신규 광고 캠페인으로, 생성형 AI 뿐만 아니라, 2D 일러스트레이션과 애니메이션, 3D, 디지털 기술의 총체적인 시너지를 한껏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마스터피스 캠페인은 AI 기술을 기존 예술 작품에 접목하여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창출했다는 평가와 함께 대중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반면 이번 크리스마스 캠페인은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을 AI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창작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AI 기술의 활용 방식은 비슷해 보이지만, 왜 대중의 반응은 이토록 달라진 걸까요?
이번 글에서는 두 캠페인의 차이점을 살펴보며, 이 논란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보려 합니다.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논란이 된 광고를 살펴보았습니다.
코카콜라의 병뚜껑을 경쾌하게 따는 소리로 영상이 시작됩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눈 덮인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크리스마스와 코카콜라를 상징하는 순록과 북극곰이 등장합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전구로 장식된 마을을 빨간 코카콜라 트럭이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산타의 썰매와 함께 코카콜라 로고가 나타나며 30초가량의 영상이 마무리됩니다.
이 광고 영상은 1995년 처음 방영된 코카콜라의 상징적인 광고 시리즈 "Holidays are coming"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포브스(Forbes)의 취재 내용에 따르면 '시크릿 레벨(Secret Level)', '실버사이드 AI(Silverside AI)', '와일드카드(Wild Card)'까지 총 세 곳의 AI 스튜디오에서 각각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100% 생성형 AI를 사용한 광고 영상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냉정하게 말해 영상의 퀄리티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을 대표하는 산타클로스, 눈 내리는 풍경, 반짝이는 전구 등 우리에게 익숙한 요소들이 다수 등장하는 만큼, 곳곳에서 발견되는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순간들이 더욱 눈에 띕니다. 기존 코카콜라의 크리스마스 광고에서 느낄 수 있던 섬세함과 완성도를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수준입니다.
이미지와 영상을 생성하는 AI 기술은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사람의 손길로 만든 작품만큼 정교하고 사실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특히 대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창작자들을 AI로 대체하려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이번 '100% AI 제작' 광고는 자동화와 기계화에 대한 대중의 본능적인 거부감을 자극했습니다.
더욱이 '크리스마스'라는 행사가 가족, 사랑, 나눔 등 인간적인 가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AI가 전면에 내세워진 이번 광고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이에 대해 코카콜라 대변인은 "이번 광고는 인간 스토리텔러와 생성형 AI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으며, 실제 배우와 장소가 등장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광고도 함께 준비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또한 "코카콜라는 인간의 창의성과 기술의 융합을 추구한다"며 앞으로도 혁신적인 기술을 활용한 마케팅을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이번 광고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새로운 크리스마스 광고로 찾아오던 코카콜라. 28년간 이어진 'Holidays are coming' 캠페인은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교한 세트장과 조명, 수십 명의 스태프가 만들어내는 따뜻한 연출은 시청자들에게 설렘과 기대감을 선사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광고는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의 정서적 가치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마스터피스 캠페인은 명화 속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AI 기술의 창의적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반면 이번 광고는 산타클로스, 눈 내리는 마을, 빨간 트럭 등 현실에 존재하는 피사체를 그대로 재현하려 했기에 어설픈 부분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AI 기술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입니다. 특히 실제 광고 제작 현장을 알고 있는 업계 전문가들의 날 선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디즈니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그래비티 폴즈(Gravity Falls)'의 제작 총괄을 맡았던 알렉스 허쉬(Alex Hirsch)는 코카콜라의 새 광고 영상에 대해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코카콜라를 강하게 비판하는 포스트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크리스마스는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하는 따뜻한 시간의 이미지입니다. 기존의 코카콜라의 크리스마스 광고는 이런 인간적인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해 왔죠. 하지만 이번 광고는 제작 과정에서부터 인간의 손길이 최소화되었다는 점이 부각되며, 브랜드가 추구해 온 '진정성' 있는 메시지 전달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의 니라지 아로라(Neeraj Arora) 교수는 이런 반발이 일어난 원인을 흥미롭게 분석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마케팅 시즌이 아닌 코카콜라 브랜드의 핵심적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데, 여기에 AI라는 차가운 기술을 도입한 것이 문제였다는 겁니다. "크리스마스는 서로 교감하고, 공동체를 느끼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AI는 이런 홀리데이 시즌의 본질적 의미는 물론, 사람들이 생각하는 코카콜라라는 브랜드의 가치와도 맞지 않습니다"라는 그의 지적은 이번 논란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브랜드 코카콜라가 100% AI로 제작된 광고를 선보였다는 사실은 창작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AI를 도입하면서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되는 순간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여기에 일부 언론에서 "대기업의 무분별한 AI 도입"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도하면서, 단순한 광고 제작 방식의 변화를 넘어선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다른 시각도 존재합니다. 일각에서는 코카콜라의 이번 시도를 단순히 비용 절감을 위한 선택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코카콜라는 이번 시즌에도 전통적인 방식의 광고를 함께 제작했으며, AI 제작 과정을 굳이 외부에 공개하지 않아도 됐음에도 이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경제적', '효율적'이라는 개념을 비용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제한적인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AI 기술을 활용한 광고 제작은 오히려 기존 방식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작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장점이 있죠. 특히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시장 환경과 소비자 반응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현대 마케팅에서, 제작 시간의 단축은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코카콜라의 이번 시도는 AI 기술의 현재와 미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전략적 실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 브랜드가 겪은 이런 시행착오와 그로 인한 논쟁은, 앞으로 기업들이 AI 기술을 마케팅에 도입할 때 고려해야 할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이번 코카콜라의 AI 광고 논란은 단순한 기술 활용의 문제를 넘어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정서적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AI는 분명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브랜드의 정체성과 소비자와의 교감이 핵심인 영역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28년간 이어진 크리스마스 캠페인처럼 브랜드의 전통과 가치가 깊이 스며든 콘텐츠를 다룰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향후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 대중의 수용도를 고려하여 '혁신'과 '전통', '효율'과 '정서', '기술'과 '인간미'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코카콜라의 이번 실험은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로 볼 수 있겠네요. 다만 이런 시행착오조차 세계적 브랜드의 도전이었기에 우리에게 값진 교훈을 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