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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취향고백

1. 오월

by 봉남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중략)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오월, 피천득


나에게 오월을 만나게 한 문장. 열여덟 살이었을까. 문학 시간 이 문장을 읽었다. 이후 매년 달력이 생기면 5월부터 펼쳐서 5월의 여백에 이 문장을 적어두었다. 이토록 5월을 통째로 사랑하게 만드는 문장이라니.


"나는 오월 속에 있다."를 읽을 때면 멈춰 있을 수가 없다.

어디로든 오월을 향해 움직인다.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나무를 만나러 갔다.

마을 쉼터인 나무 아래 홀로 앉아 흔들리는 잎들을 바라봤다. 내 앞을 지나치던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나를 보고 멈추어 섰다.



"이 동네 어쩐 일로 오신 분이에요?"


"아. 여기 나무가 멋져서 나무 보러 왔어요."


그는 어딘지 이 나무와 친분을 가진 자랑스러움이 담긴 미소로 내게 말했다.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게 행복한 거야. 오늘도 행복하쇼~"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마을 안으로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걸 또 하나 본 순간.

우연히 행복해졌다.


오월을 아낀다.

"나는 오월 속에 있다." 만큼 내 취향을 더 잘 표현할 새로운 문장을 찾을 수는 없지만, 오월 속에 발견하는 아름다움은 언제나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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