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숲 미로탈출
어느 해인가 제주도 여행을 가서 미로 탈출하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한 번쯤은 찾아갈 만한 관광지니까! 아이들도 이제는 혼자서 미로 탈출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찾아간 그 때는 비가 내리던 여름 휴가였던 걸로 기억한다.
미로 입구에서 마주한 인사말 카드.
안녕 미로야! 미로에게 던지는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미로가 우리에게 던지는 인사같았다.
안녕~ 어서와! 나는 미로야!
그리고 마주한 수많은 글귀들.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출발!
행복하자. 우리 가족. 점점 닮아가는 우리. 좋은 날. 너랑 오길 잘했다.
가다가 막힌 초록벽에 답답해 하기 보다는 만나는 글귀들이 더 눈에 들어오고 다른 글귀는 없나 찾게 되고, 나는 그 글귀들을 마음에 차곡차곡 채워가면서 길을 찾고 또 헤메이며 코너코너를 돌고 돌았다.
미로 속 곳곳에 있던 글귀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의 미로 속에서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언제쯤 탈출할 수 있을까?
미로 속에서 만나는 삶이라는 시들을 읽으면서 왜 울컥했는지는 이제는 좀 알 거 같다.
삶1
누군가는
화를 내며 길을 걷고
누군가는 웃으며
길을 헤맨다.
어떤 이는
급하다 앞만 보고 가며
어떤 이는 하늘 보며 참 맑다! 한다.
하늘 계단에서 누군가의 종이 맑게 울린다.
종소리가 구슬프게 나를 울린다.
화를 내며 걷는 이의 불같은 마음이 나는 없었던 듯 하다. 그렇다고 해맑게 웃으면서 길을 헤매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늘 하늘 보기 좋아하던 사람이 갇힌 그 곳에서 하늘을 보는 여유는 가지고 있었다. 아직 종과는 너무 멀게 있었는지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흐린 하늘도 갇힌 미로 속에서는 꽤나 넓게 느껴졌다.
삶 2
우리,
손을 잡고 가자.
너와 나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우리 이 길을
함께 걸어가자.
끊어질 듯 이어진 길
함께 가기 어려운 고부랑길에서
우리 서로 안고 업어주며
쉬었다 가자.
웃다 울다 돌아가는 길 위에서
아쉽기도 힘들기도 하겠지만
너와 나.
우리 서로 사랑하며 나아가자.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의 길
함께 걸어 행복한 이 길에서
우리, 헤매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아가자.
둘이 시작했던 삶의 미로를 마주한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살아가면 좋았으련만. 20년을 그렇게 기억저편으로 보내고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변명을 하고 살았다. 너와 나,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자 했는데 둘 사이 손이 하나, 둘, 셋 늘어가면서 즐거움을 만끽하기는커녕 짐을 하나 더 얹는다며 티격태격 하며 살았던 날들이 생각난다.
둘이 잡은 손은 점점 멀어져서 양쪽 끝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아왔던 순간순간이 기억이 나고 멀어진만큼 가까워지려 노력이란 걸 좀 해 보기로 한다.
삶3
아가야
네 발걸음이 가벼워
내 걸음도 사뿐하다.
아가야
앞장서서 걸어가렴.
무서워라 돌아보면
걱정마라 웃어줄게.
자, 아가야.
어서 가자꾸나!
이 미로같은 세상
씩씩하게 나가거라.
고마운 내 아가야.
아이들이 지도 한 장을 들고 스스로 찾아보겠노라며 앞질러서 나아간다. 그렇게 즐기면서 가는 발걸음만큼 가벼운 걸음이 또 있을까. 뒤따라 가면서 나는 아이들의 뒷 모습을 찍는다. 제법 진지한 아이들의 눈빛과 등을 보이는 뒷모습은 걱정없이 느껴진다. 아직은 삶의 미로가 뭔지 모를 아이들에게 미로는 단순 놀이일테니 말이다. 그렇게 씩씩하게 나아가는 내 아이들의 뒤를 따르며 뒤돌아 보면 내가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르면 같이 헤쳐나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묵묵히 사진만 찍던 내가 지금은 참 안타깝다.
삶4
아가야
뛰지 마라
같이가자
소리쳐 부르지만
이미 너는 저만치 가고 있구나.
새로운 길
달리고픈 너를 나는 아니 몰랐나
알면서도 아니 된다 했나.
아이야
너를 위한 길
맘껏 찾아 가렴.
종은 높아 멀지만
너는 더 높이 멀리
날아가거라.
어느 순간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목소리만 초록벽 너머에서 들려온다. 셋 중 하나, 아니 내 짝꿍을 포함한 넷 중 누군가는 종과 가까워졌는지 속도를 붙여서 앞질러 가고 있었다. 그렇게 막힌 길도 없던 길도 잘 찾아가던 내 아이들이 지금은 어느 미로 속에 갇혀 있는 듯 하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만 있다. 길을 알려주고 종을 울리게 해 주는 것보다 길의 방향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
살다보니 가끔은 앞으로 나아가다 다시 또 돌아갈 때가 있더라. 돌아가서 다시 나아갈 길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더라. 복잡하게 얽힌 길들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기분은 막힌 미로에서 하늘을 보지 못하고 화만 내는 누군가의 모습을 닮아있더라.
이제는 알 거 같은 단 한가지.
어쩌면 미로는 끝이 없고, 탈출은 단지 한 순간의 도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삶의 미로에서 조금씩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고 나를 토닥일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미로를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