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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레이스 Dec 15. 2024

미로 탈출은 진행중

인생 숲 미로탈출

어느 해인가  제주도 여행을 가서 미로 탈출하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한 번쯤은 찾아갈 만한 관광지니까! 아이들도 이제는 혼자서 미로 탈출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찾아간 그 때는 비가 내리던 여름 휴가였던 걸로 기억한다. 





미로 입구에서 마주한 인사말 카드. 

안녕 미로야! 미로에게 던지는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미로가 우리에게 던지는 인사같았다.

안녕~ 어서와! 나는 미로야!
 


그리고 마주한 수많은 글귀들.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출발!


행복하자. 우리 가족. 점점 닮아가는 우리. 좋은 날. 너랑 오길 잘했다.


가다가 막힌 초록벽에 답답해 하기 보다는 만나는  글귀들이 더 눈에 들어오고 다른 글귀는 없나 찾게 되고, 나는 글귀들을 마음에 차곡차곡 채워가면서 길을 찾고 헤메이며 코너코너를 돌고 돌았다. 



미로 속 곳곳에 있던 글귀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의 미로 속에서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언제쯤 탈출할 수 있을까?


미로 속에서 만나는 삶이라는 시들을 읽으면서 왜 울컥했는지는 이제는 좀 알 거 같다. 


삶1 

누군가는 

화를 내며 길을 걷고 

누군가는 웃으며 

길을 헤맨다.


어떤 이는 

급하다 앞만 보고 가며

어떤 이는 하늘 보며 참 맑다! 한다.


하늘 계단에서 누군가의 종이 맑게 울린다. 

종소리가 구슬프게 나를 울린다. 





화를 내며 걷는 이의 불같은 마음이 나는 없었던 듯 하다. 그렇다고 해맑게 웃으면서 길을 헤매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하늘 보기 좋아하던 사람이 갇힌 곳에서 하늘을 보는 여유는 가지고 있었다. 아직 종과는 너무 멀게 있었는지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흐린 하늘도 갇힌 미로 속에서는 꽤나 넓게 느껴졌다. 



삶 2

우리, 

손을 잡고 가자. 


너와 나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우리 이 길을 

함께 걸어가자. 

끊어질 듯 이어진 길

함께 가기 어려운 고부랑길에서 

우리 서로 안고 업어주며 

쉬었다 가자. 


웃다 울다 돌아가는 길 위에서 

아쉽기도 힘들기도 하겠지만

너와 나. 

우리 서로 사랑하며 나아가자.


끝을 알 수 없는 미로의 길

함께 걸어 행복한 이 길에서 

우리, 헤매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아가자


둘이 시작했던 삶의 미로를 마주한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살아가면 좋았으련만. 20년을 그렇게 기억저편으로 보내고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변명을 하고 살았다. 너와 나,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자 했는데 둘 사이 손이 하나, 둘, 셋 늘어가면서 즐거움을 만끽하기는커녕 짐을 하나 더 얹는다며 티격태격 하며 살았던 날들이 생각난다.


둘이 잡은 손은 점점 멀어져서 양쪽 끝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아왔던 순간순간이 기억이 나고 멀어진만큼 가까워지려 노력이란 걸 좀 해 보기로 한다.


삶3

아가야 

네 발걸음이 가벼워

내 걸음도 사뿐하다.


아가야

앞장서서 걸어가렴.

무서워라 돌아보면 

걱정마라 웃어줄게.


자, 아가야.

어서 가자꾸나!

이 미로같은 세상

씩씩하게 나가거라. 


고마운 내 아가야.




아이들이 지도 한 장을 들고 스스로 찾아보겠노라며 앞질러서 나아간다. 그렇게 즐기면서 가는 발걸음만큼 가벼운 걸음이 또 있을까. 뒤따라 가면서 나는 아이들의 뒷 모습을 찍는다. 제법 진지한 아이들의 눈빛과 등을 보이는 뒷모습은 걱정없이 느껴진다. 아직은 삶의 미로가 뭔지 모를 아이들에게 미로는 단순 놀이일테니 말이다. 그렇게 씩씩하게 나아가는 내 아이들의 뒤를 따르며 뒤돌아 보면 내가 있다고 말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르면 같이 헤쳐나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묵묵히 사진만 찍던 내가 지금은 참 안타깝다. 


삶4

아가야

뛰지 마라

같이가자

소리쳐 부르지만

이미 너는 저만치 가고 있구나. 


새로운 길 

달리고픈 너를 나는 아니 몰랐나

알면서도 아니 된다 했나.


아이야

너를 위한 길

맘껏 찾아 가렴.


종은 높아 멀지만 

너는 더 높이 멀리 

날아가거라.



어느 순간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목소리만 초록벽 너머에서 들려온다. 셋 중 하나, 아니 내 짝꿍을 포함한 넷 중 누군가는 종과 가까워졌는지 속도를 붙여서 앞질러 가고 있었다. 그렇게 막힌 길도 없던 길도 잘 찾아가던 내 아이들이 지금은 어느 미로 속에 갇혀 있는 듯 하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만 있다. 길을 알려주고 종을 울리게 해 주는 것보다 길의 방향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 




살다보니 가끔은 앞으로 나아가다 다시 또 돌아갈 때가 있더라. 돌아가서 다시 나아갈 길을 찾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더라. 복잡하게 얽힌 길들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기분은 막힌 미로에서 하늘을 보지 못하고 화만 내는 누군가의 모습을 닮아있더라. 


이제는 알 거 같은 단 한가지. 

어쩌면 미로는 끝이 없고, 탈출은 단지 한 순간의 도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삶의 미로에서 조금씩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고 나를 토닥일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미로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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