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가 좋습니다

by sueyon

건강을 위해 매일 집 주위를 조금씩이라도 걷고 있는데 집 앞에 할로윈 장식을 해 놓은 집들이 많은 것을 보고서 아, 10월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인지 앞마당 전체를 커다란 인형들로 장식해 놓은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여러 기념일이 있는 것처럼 미국에도 달마다 기념일이라고 할 만한 날이 있습니다. 1월은 물론 새해, 2월은 발렌타인 데이, 3월은 성 패트릭 데이, 4월은 부활절, 5월은 어머니의 날, 6월은 아버지의 날, 7월은 독립 기념일, 8월은 여름이 끝나는 날 9월은 사과/호박 따는 날, 10월은 할로윈, 11월을 추수감사절, 12월은 크리스마스입니다. 최근에는 5월1일에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이라고 할 만한 싱코 드 마요 라고 하는 기념일을 즐기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것은 제가 살았던 위스콘신 주에서 일반적으로 즐기는 날로 미국 전역에서 똑같이 즐긴다고 말하지는 못합니다.

각 기념일을 어떻게 즐기느냐는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근사한 저녁을 먹거나 파티를 하거나 어떨 때는 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합니다. 평범하게 저녁을 먹으며 오늘이 무슨 날이다 라는 생각만 하고 그냥 넘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기념일을 보던 친정 엄마는 할 일 없이 “요란만 떠는” 일이라고 하시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매달 있는 별것 아닌 기념일을 나름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있다는 것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일 때문에 바빠서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늘 일에 관련된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처리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일중독증이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사소한 일에는 무심히 넘어가게 됩니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셈인데 이것이 계속되면 그야말로 집-학교-집-학교만 반복해서 다른 활동은 할 마음도, 여유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학기말 시험이 다가오면 어느 새 한 학기가 또 끝났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장식을 직접 하거나, 해 놓은 것을 보거나 하면서 아 벌써 이런 시간이 됐구나 하는 자각을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몰리게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언가 할 의욕도 없어집니다. 그저 해야 할 일만 하고 지쳐서 주말에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한 달을 보내고 연말이 되면 그제서야 올해는 뭐 한다고 이렇게 바빴을까 내년에는 좀 더 건설적으로 보내자 하고 생각만 하다가 또다시 같은 행동을 하게 되지요. 그러니 그나마 이런 저런 기념일을 기억하면서 약간이라도 즐길 기분이 된다면 그것이 생활의 여유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습관적으로 기념일에 맞는 현관문 장식을 했었는데 그랬다고 삶의 여유를 갖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을 위해서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거의 의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도 다 크고 저도 일 때문에 혼자 살기 때문에 굳이 그런 장식을 할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잊어버리기 쉬운데 이제서야 주변을 둘러보면서 아 벌써 가을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마도 제 생활에 나름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학교를 가면서도 하늘을 보고 오늘은 참 파랗다, 나무들이 이제는 정말 단풍으로 물들었네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하루를 기쁘게 느끼는 제 자신이 기특하고 나이를 먹어서 좋은 이유가 한 가지는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