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들라로슈의 감성적 역사화

by Sabin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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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Delaroche <젊은 순교자> 1853 에르미타주 미술관


프랑스의 역사화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 1797-1856)가 그린 이 작품은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 치세 동안 순교한 여성을 상상하며 그렸다고 한다. 폴 들라로슈는 역사화가 주는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매우 감성적으로 재해석한 그림들을 그리며 당시 미술작품의 새로운 구매층으로 부상한 신흥 중산층 계층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 성녀들은 주로 모진 고문 끝에 참수당하는 방식으로 순교하였는데 이 그림을 보면 물 속으로 잠들 듯 고요히 가라앉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 화가의 상상력이 작용한 그림으로 볼 수 있다. 들라로슈의 동시대 화가였던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 1811-1872)는 이 그림 속 여인의 순수하고 신성한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기독교의 오필리아"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필리아는 햄릿에 나오는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영국 라파엘전파 화가들이 많이 그렸고 아마도 들라로슈가 그 영향을 받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의 <오필리아>는 미술사에서 오필리아의 죽음을 가장 아름답게 그린 작품으로 손꼽히고 들라로슈도 이 그림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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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2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아내이자 화가이기도 하였던 엘리사베스 시달이 모델을 한 오필리아의 이 그림은 라파엘전파 유미주의 미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햄릿을 사랑했던 순수하고 고결했던 오필리아는 덴마크 왕실의 권력 다툼 속에서 희생된 여인으로 여겨진다. 죽고 죽이는 궁중의 암투 속에서 아버지도 잃고 사랑하는 남자도 떠나보낸 오필리아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미쳐갔고 들판에서 홀로 꽃을 꺾으며 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그루터기에 앉아 물 속으로 떨어지는 꽃잎들을 주우려 몸을 숙였고 자신도 물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밀레이는 그 오필리아의 마지막 장면을 그리고 있다. 세익스피어가 묘사한 데로 마치 잠을 자듯이 물 속으로 스르르 빠져들어가는 모습으로 재현하고 있는데 하늘로 향한 두 팔은 마치 모든 것을 주님에게 맡긴다는 마지막 심정을 보여주는 듯, 순교자의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폴 들라로슈는 실재 자신이 너무도 사랑했던 아내이자 뮤즈이자 자신의 모델이었던 루이즈 베르네(Louise Vernet)를 먼저 보내고 깊은 절망에 빠진다. 아내의 마지막 임종 모습을 그린 아래 작품을 보면 마치 그녀를 순교 성녀처럼 그리고 있는데, 아마도 그의 역사화에 드리운 슬픔의 감정선은 아내의 죽음으로 받은 내적 충격에서 온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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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들라로슈 <화가의 아내 루이즈 베르네의 임종> 1846 프랑스 낭뜨 미술관


폴 들라로슈는 너무도 쟁쟁한 후배화가들 (들라크루아나 제리코 등) 덕분에 사후 잊혀진 화가이기도 하다. 그가 재조명을 받은 것은 21세기에 이르러서인데, 필자가 폴 들라로슈의 그림을 처음 본 것도 얼마전 일본의 우에노 미술관에서였다. 수년전 방문했던 미술관에서 유럽 근현대 미술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고 그 곳에서 본 들라로슈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1833)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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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들라로슈 <제인 그레이의 처형> 1833 런던 국립 미술관


프랑스인이었지만 그는 영국의 역사를 주제로 많은 작품들을 그렸고 역사를 딱딱하게 연대기적으로 나열하거나 역사속 권력자나 권력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무상함과 심리적 비애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며 현대인들의 메마른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산출하고 있다. <제인 그레이의 처형>은 영국 종교개혁의 역사적 문맥에서 생겨난 비극적 사건을 그리고 있다. 헨리8세는 철저한 가톨릭 신자였던 케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원했고 이를 승낙하지 않았던 로마 교황청과의 갈등 속에 결국은 이혼을 감행한다. 여튼 이 사건을 통해 영국에서도 가톨릭 교회로부터 독립한 영국의 신교가 탄생하게 되었고 이후 영국의 역사는 구교 세력과 신교세력 간의 권력 싸움이 계속 일어났고 이 혼란을 틈타 권력을 취하려는 귀족들의 암투극이 일어나게 된다. 제인 그레이도 그 암투극의 희생양이었다. 권력욕망으로 가득차있던 가족들에 의해 순수하고 정숙했던 제인 그레이는 왕비로 간택되었도 왕의 죽음으로 여차저차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때 나이가 불과 17세 였다. 독실한 신교신자였던 제인은 가족들의 권력욕 속에서도 신앙 하나로 자신을 지키고 순종한 여인이었다. 그렇게 여왕의 자리에 오른지 9일이 되넌 날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 1세가 쳐들어오면서 제인은 9일만에 폐위되어 런던탑에 갇히게 된다. 제인을 불쌍하게 여진 메리1세는 배교만 하면 살려주겠다고 호의를 베풀었지만 제인은 어려서부터 자신을 지켜준 신교의 신앙을 버릴 수 없었다. 이에 제인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폴 들라르슈는 이 비극적이고도 슬픈 사건을 아름답게 재현하고 있다. 단두대 처형때는 잔인한 장면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눈을 가린다고 한다. 이에 제인의 마지막 말은 "어디있어요?" 였다고 한다. 앞이 안보이니 더듬거리며 처형대로 다가가는 모습에 처형장의 사람들 모두 연민에 눈시울을 붉혔고 화가는 제인의 시녀들이 벽에 몸을 기댄 채 애도하고 있는 모습과 연민에 찬 표정을 한 망나니의 모습 그리고 제인을 단두대로 이끌며 애처로워하는 집행장의 모습을 애잔하게 그리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의 이른 죽음으로 받은 충격은 폴 들라로슈를 깊이 절망하게 하였지만 그의 슬픔이 그림에는 아름답게 승화하게 된다. 다소 딷딷할 수 있는 역사화 장르에 비애를 담아 아름다운 장면들을 산출한 것이다. 이로부터 고전주의 화풍과 낭만주의 화풍을 결합한 "절충주의" 화풍을 산출하였고 이후 100년 간 프랑스 미술을 지배하게 될 아카데미 미술 양식에 토대를 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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