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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ckuism Apr 30. 2017

'가족'이지만 '나'가 아닌 사람들에 대해

'나'와 가족을 위한 사랑 사이에서 느끼는 딜레마.

얼마 전, 친동생이 오래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처음 겪는 이별에 그 힘듦이 어떨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아, 안쓰럽고 걱정이 된다. 오빠인 나보다 부모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걱정이 당연히 더 크실 것이라 생각한다. 한가로운 주말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나에게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유덕아, 이번 연휴 때 뭐하니?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서 동생이랑 같이 있으렴. 동생 힘들텐데 혼자 있을까봐 걱정되네."

"..."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계획한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있어 공부를 해야하는데, 집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연휴 때 집에 있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심 때가 다 되어 아침을 먹은 나에게 다시 한 번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유덕아, 다음 달에는 어디 가지 말고 동생 좀 잘 챙겨줘. 엄마가 다음 달에는 회식이 많아서."


갑자기 마음 속에서 무언가 올라온다.


"어머니, 저한테 미루지마세요. 저도 다음 달에 바빠요. 자기가 걱정되면 자기가 케어해주면 되는 거에요."

"아..알았다."


퉁명스럽게 이 말을 뱉었는데, 가슴이 저렸다. 분명한 내 생각을 전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건 당황한 어머니의 대답과 내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무거움이다. 왜 이런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왔는지 알 수 없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취준생이다. 전공과는 다른 분야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기에 올해가 하는 것도 많고 참 바쁜 한 해이다. 그렇다보니 내 머릿속에는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것들, 취업을 위해, 내 미래를 위해 해야할 것들이 산재해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어느정도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 계획을 실행해나가는 데에 있어서 가족에게 내색하지 않는 나만의 어려움, 고통, 인내, 답답함 같은 것들이 수반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그 어려운 계획에 가족이 또 비집고 들어온다. 앞으로 남겨진 내 계획을 온 힘을 다해 실행해야하는데, 내 마음이 온전히 가지 않아 모든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다. 내 계획, 내 인생이 가족보다 더 소중한가?에 대한 물음이 자꾸 내 머릿 속을 맴돈다. 가족을 위해 내 계획을 수정하면 내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을까봐, 내 자신에 대한 후회가 남을 까봐, 남들보다 뒤쳐질까봐 두렵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머니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이유는 나 혼자 감내하고있는 어려움, 답답함, 힘듦을 알지 못하고 나에게 무언가를 더 바라는 가족에게 서운했기 때문이었다.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내 어깨의 짊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아, 짜증이 나고 겁이 났기 때문에...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할 마음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 굉장히 큰 부분일지라도. 그런데 중요한 일이 아닌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일 수도 있는 가족의 일들이 자꾸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맏이라서, 가족이 나를 믿고 의지하니까,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내가 하게 될 때가 많다. 그 때마다 나는 무엇이 우선인지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과연 내가 잘못된 것일까. 나를 지금까지 키워준 가족을 위한 작은 일들을 위해 내 계획은 어디까지 수정되어야 하는 건지, 내 인생은 어디까지 바뀌어야하는거지 혼란이 온다. 그래서 자꾸 머리가 아프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본다. 감정이 섞인 생각만으로는 답이 내려지지 않아,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경우의 수. 그리고 이 각각의 경우에 대한 나의 마음과 결과.



상황 1. 가족을 위한 일을 한다. 내 인생 계획은 수정되거나 효율이 떨어진다.

   - 내 마음 : 편한 상태를 유지한다. 

   - 결과 : 만족스럽지 못하다. 더욱 큰 노력과 인내, 힘듦이 필요해진다.

상황 2. 가족을 위한 일을 하지 않고 내 인생 계획을 그대로 실행한다.

   - 내 마음 : 불편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 상태가 종식되는 시간은 알 수 없다.)

   - 결과 : 만족스럽다. 앞으로 더 큰 목표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지금까지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한 계획들이 새로이 생긴다.



이렇게 이성적으로 상황을 정리해보니 답이 명확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내 인생, 내 계획은 결국 언제나 힘들고, 어렵다. 나의 더 멋진 삶을 위해서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다르다. 비록 내 인생의 빛이 조금은 바래질지라도, 내 마음이 편해질 수 있고, 행복해 질 수 있음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이 글을 쓰면서, 첫 번째 상황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깟 자격증 시험, 한 번 떨어지면 다음에 또 보면 되지. 


가족. 언제나 내 주변에 있게 소중함을 잊기 쉬운 존재. 항상 이 것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어느샌가 이렇게 잊어버리고 산다. 그래서 항상 더욱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답은 같다. 그리고 내가 잊어버렸던 사실이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다. 


"야, 어차피 인생은 힘든 거야~ 근데 네 맘 더 힘들게 하지 말고 네가 사랑하는 가족부터 챙겨. 안 그럼 후회한다?"


그래. 어차피 열심히 살아도 후회하는 것 투성이인데, 굳이 후회할 일을 뭐하러 또 만들어? 자, 이제 우리 모두 가족에게 미안하지 않게, 내 마음에 후회하지 않게, 가족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자. 동생아 미안하다. 오빠가 같이 너의 실연의 아픔을 나누며 닭발에 맥주 먹어줄껭.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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