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빈곤에 대하여

영화를 통한 빈곤의 이해와 우리의 할 일

by NINEBELL


'빈부격차', 말로는 수없이 들어본 단어인데 사실 이를 피부로 직접 느끼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이 느끼는 빈부격차란 인스타나 뉴스로 접하는 부자를 향한 동경에서 오는 박탈감일 뿐 정말 사회의 테두리에 머물러있는 삶은 항상 외면받아왔다.

모두가 부자 되는 법은 관심 있지만 빈곤을 바라보기엔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관심을 가져봐야 괜히 마음만 불편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는 사이 빈부격차의 문제는 우리의 코앞까지 와있다.

선진국의 빈부격차가 뚜렷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온라인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공격적인 태도와 멸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런 태도를 빈부격차 확대의 증거라고 보는 이유는 그 격차가 오랫동안 벌어진 채로 유지된 나라들 일수록 그런 태도 또한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가난의 원인은 게으름이다' 같은 말들이다.


계층이 뚜렷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진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빈자가 부자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듯이, 부자도 빈자에 대한 이해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부자에 대한 이해부족은 그들에 대한 환상으로 채워지는데 반해 빈자에 대한 이해부족은 멸시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의 삶이 그렇듯 가난한 사람들의 삶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최근에 본 두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각각 영국(뉴캐슬)과 미국(올랜도) 복지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제는 복지의 사각지대이지만 매우 현실적인 표현으로 인해 우리는 빈곤층의 삶을 더욱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평범한 사람들이 몰락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극 중의 다니엘은 중년의 남성으로 오랫동안 목수로 일하며 살아왔다.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고 성실한 사람이다. 다른 주인공인 케이티도 부유하진 않지만 두 아이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평범한 엄마이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인 부족한 일자리가 첫 번째로 그들을 덮치고 다니엘은 그 와중에 건강을 잃는 일이 생기며 둘의 삶은 급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도 잘못은 없다 그저 사회적인 흐름이 그들을 내몰았을 뿐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또한 복지의 사각지대를 그린 영화이긴 하지만 그곳의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내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안전망이 되어주지 못하는 부모, 부족한 교육, 하루하루 벌어 연명해야 하는 희망 없는 미래.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자신들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사고를 치고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슬아슬하기까지 하다.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것을 배우고 자랐을 것이며 어떤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어릴 적 대부분은 자신의 성과는 모두 자신의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성인이 되며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다 보면 노력만큼이나 운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여기서 운이라는 것은 복권당첨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있어서 우리가 운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것들, 예를 들면 건강한 정신, 동기부여, 희망, 건강 같은 것들이며 좀 더 좋은 환경이라면 부모님의 지원, 화목한 가정 같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운들은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보거나 직접 겪기 전까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도 '희망'이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지만 어떤 누군가는 평생 손에 잡아보지도 못한 채 살기도 한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게 되는 태도가 많아지면서 많은 이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지만 사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은 어느 정도의 운은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런 운을 가진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 정책들이나 도움의 손길 등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의외로 가장 요구되는 것은 '관심'이다. 고작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슨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 관심하나하나가 모여야 정책이나 손길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반대로 관심마저 없다면 그들은 소리도 못 내고 사라져 버린다.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작은 기사, 내가 어딘가 남기는 짤막한 글, 관련된 영상에 대한 한 번의 클릭, 시선을 넓힐수 있는 영화 한 편 보기 같이 아주 단순한 우리 행동 하나가 모두 관심이 될 수 있다.

관심이 이해가 되고 그 이해가 쌓여야 비로소 진짜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실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가진다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누군가는 지금도 하고 있고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란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이들도 그렇지 않은 이들도 모두가 이해하며 고통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자신의 삶과 분투하고 있을 다니엘과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잠깐의 시간과 여유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노인 진상이 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