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가 가져야 할 특성들의 정점을 찍어놓은 pta
영화를 보고 며칠이 지났지만 여운도 여전하고 이야기할 거리가 너무 많아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밸런스'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야 pta를 최고의 감독으로 꼽는 게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분명 흥행감독은 아니라 이번에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라이트한 관객들에겐 추천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제작비 때문인지 긴 러닝타임을 제외한다면 누가 봐도 재밌는 그림이 나왔고 그러면서도 특유의 무게감도 분명 유지했다. '기생충'같은 완벽한 밸런스다.
Pta 영화는 영상만 보면 크게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특유의 미장센이랄 것도 없고 카메라 앵글이나 무빙이 독특하지도 않다. 영락없는 미국영화다.
그의 힘은 항상 스토리에 있다.
영화를 본 직후 짤막하게 남긴 리뷰에서 썼듯 특별한 액세서리 없이 오직 스토리와 음악, 연기력 같은 아주 기본적인 요소들로 정점에 닿으며 어마어마한 힘을 뿜어냈다.
현시대를 풍자하곤 있지만 그것이 영화의 평가를 높이는 이유로 크게 작용하지 않을 정도로 그 자체로 잘 만들어졌다.
두 주연 배우의 연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레오는 젊어서는 너무 뛰어난 미모가 연기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반대로 외모에서 무게감을 주진 못하지만 연기력으로 커버하는 배우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여전히 매력적이긴 하나 어딘지 모르게 약간의 부족함이 느껴지곤 했는데, 지금 그의 외모에 완벽히 들어맞는 캐릭터였다고 느꼈다. 주연이지만 완벽한 조연 같은 캐릭터가 그를 더 빛나게 했다. '밀양'의 송강호가 떠올랐다.
숀펜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 중 하나인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최애 배우목록엔 잘 들지 않는 인물이다. 아마도 '아이앰샘'을 제외하면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없어서인가 하는데, 이번 역할로 다시 한번 레전드 반열에 오를만한 인물임을 입증했다.
정말 위대한 배우들의 연기는 대사하나 없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떨림을 주는데 숀펜이 등장하는 내내 숨 죽이며 바라봤다. 이번을 계기로 숀펜에 입덕한 사람들에겐 영화 '밀크'를 강추한다.
찐 팬으로서 번외의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숀펜은 배우로서만 멋진 게 아니다. 그는 무려 마돈나의 남자였고, 세계 어디든 재해가 발생하면 직접 뛰어들어 구호활동을 하는 뜨거운 남자다. 샤를리즈 테론과 만난다는 기사가 났을 때 이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숀펜이 아까운데? 하는 생각까지 했다 :)
또 한 명의 위대한 배우가 있었다. '베네치오 델 토로'. '유주얼 서스펙트'로 처음 알게 된 이 사람은 지금은 후덕한 마초남이 됐지만 사실 요즘 유행하는 '퇴폐미'의 원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크서클을 가졌다고 할까? 그의 매력적인 'excuse me?'를 다시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남자배우들에 비해 여배우들의 비중이 그리 크진 않지만 테야나 테일러와 체이스 인피니티 또한 매우 강렬했다.
특히 테야나는 어디서든 볼법한 캐릭터를 여러 가지 디테일을 살리며 독보적인 색깔을 만들어냈다.
한국에도 좋은 여배우들이 많지만 항상 아쉬운 점은 액션씬인데, 이 영화에선 대단한 액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총을 든 장면들에서 확실히 더 잘 훈련된 느낌을 받았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pta영화에 특별함을 더하는데 빠질 수 없는 요소인데 이번에도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날카롭게 극의 긴장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오면서 메인테마를 다시 재생했는데 마치 내가 마지막 카체이싱 장면으로 들어온듯한 착각이 들었다.
단점을 굳이 꼽자면 너무 완벽한 것이 단점이라고 할 정도로 완벽한 균형을 갖췄다. 적당한 불균형에서 오는 신선함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특유의 강렬함에서 오는 신선함이 분명히 있다.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하면서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영화가 흔치 않은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이후로 오랜만에 바로 재관람을 하고 싶어 지는 작품이었다.
평점은 물론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