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물이다. 신발을 다 벗기도 전에 다리 밑으로 쪼르르 달려와서 치댄다. 귀여워서 한 번 안아줄라치면 액체괴물처럼 쏙 품을 빠져나간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한 발짝 앞에 다소곳 앉아 빼꼼히 쳐다보는 건 뭐람. 싫다는 거야, 좋다는 거야?
정말이지 나는 동물을 집에서 기를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오며가며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궁디팡팡 해주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소중한 사생활이 보호받는 영역 안에서 작은 일탈이었다. 그런데 이것(혹은 주인님)이 들어오고선 내 집은 여러 의미에서 사람집이 아니라 고양이집이 되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게 거대한 캣타워(60만원 들여 제작하였다)를 떡하니 볕이 잘 드는 베란다 앞에 두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스크래쳐와 낚싯대는 어림잡아 20개는 되는 듯하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내 밥보다 주인님의 밥을 먼저 챙기고(나는 이제 아침을 굶는다), 일박 이상 여행을 갈 수도 없는 몸이 되었다. 퇴근 후 아무도 없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혼자 들어가며 평온함을 느끼는 (조금은 변태 같은) 견고하고 완벽한 나의 일상에 생긴 작은 틈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려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정말이지 신경질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작년 여름 내 생일 즈음, 이제 생일이란 것이 생물학적으로 엄마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온 것 이상의 의미가 없고 그냥 1년 365일 많은 날들의 하나일 뿐 더워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또 혼자 조용히 에어컨이 빵빵한 안방에 누워 ‘나는 너무 평온하고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하며 휴대폰으로 귀여운 것들을 찾아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누군가 포스팅한, 말 그대로 깨물어주고 싶게 앙증맞은 생명체를 보고 나도 모르게 (나의 외로운 내면의 자아가) 충동적으로 쪽지를 보내버렸다.
고양이는 ‘마음으로 입양해 돈으로 기른다’는 말이 있다. 호기롭게 네 집사가 되어주마 데려왔건만 귀여운 것과는 별개로 만만찮게 들어가는 돈은 현실이었다. 1인 가구에 고양이 한 마리 들어왔다고 평소 소비의 2.5배가 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랑으로 잘 키워보겠다고 유난을 떨었던 게 화근이었다.
최고오급 재료로 만든 (내 끼니보다 더 비싼) 사료와 (나도 안 먹는) 유산균이며 오메가3며 몸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를 찬장에 쌓아두고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리 주인님은 집사를 닮아 까탈스러운 취향을 가졌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요래조래 사람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접시에 담아 대접했지만 냄새만 맡고 팽 당하기 일쑤였다. 내 먹을 것을 아껴 사주었건만 왜 먹지를 못하니! 속 터지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떼쓰고 밥을 안 먹으면 일순 열불이 난다는 엄마들의 마음이 백번 이해되었다.
동물병원은 의료민영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기본적인 검진과 예방접종을 위해 입양 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는데 왜 요즘 동물보험이 그렇게도 인기인지 새삼 느끼게 해주는 지출수준이었다. 꼬박꼬박 내지만 정작 혜택은 잘 받지 못했던 (심지어 체감 상 매년 엄청나게 오르는 것 같은) 건강보험료를 기꺼이 내 급여에서 떼어줄 수 있게 되었다. 제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자고, 고양이를 위한 건지 나를 위한 건지 모를 기도를 했다.
집사에게 출렁이는 뱃살 만지는 것을 허락할 만큼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된 무렵 끔찍한 뉴스를 보았다. 일명 고양이 N번방이라 불리는 단체카톡방에서 정신 나간 사람들이 고양이를 잔혹하게 학대하는 영상을 공유하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고어(gore)전문방’이라 스스로 명명한 그곳에서 그들은 고양이를 포획하는 방법, 고문하는 방법부터 그것을 죽이고 사체를 훼손하여 먹는 것까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감히 상상조차 못할 다양한 학대방법을 공유했다. 화살이 박혀 피범벅이 된 고양이의 환부는 모자이크처리 되어 있었지만 겁에 질린 채 절규하는 고양이의 눈동자는 너무나도 선명했다. 사진의 첫인상은 슬픔이나 괴로움보다는 무척이나 생경한 장면에 대한 낯설음이었다. 나는 내 옆에 누워있는 고양이를 보고서야 그것이 실감이 났다. 여러 날을 길에서 굶주렸을 것이며 혹여 먹을 것이라도 줄까 경계하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을 그 고양이에게 화살을 내꽂는 사람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처참한 사건에 분개하여 강력한 벌칙을 요구했으나 적은 벌금으로 퉁치는 솜방망이 처벌에 다시 한 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미약하지만 동물학대가 이 세상에서 빨리 사라지기를 염원하며 동물보호법 강화를 촉구하는 청원의 동의 버튼을 꾹 눌렀다.
고양이를 모시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혼자 있을 고양이님이 걱정되어 동생을 들이는 게 어떤가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보며 단단히 미쳤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새침하게 거리를 두다가도 한 번씩 옜다하고 앵기며 그릉대는 그 매력에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아이가 주는 기쁨을 생각하면 사방 군데 털뿜뿜하고, 소파를 긁어놓아 거적때기를 만들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똥스키를 타는 것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바라건대 반려동물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법제화가 추진되어 연말정산 시 인적공제(혹은 묘적공제)를 받을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