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학공부의 필요성과 중요성"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학이나 다른 학문은 인간의 삶과 큰 관련이 없지만, 신학은 모든 사람의 영원한 구원과 행복에 관련된 것이기에 신학 공부는 모든 사람이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삶이 수반되는 신앙
기독교는 결코 지적이고 내적이기만 한 신앙이 아닙니다. 삶이 수반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읽고 은혜만 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순종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설교나 글을 통해 너무나 많이 들어 익숙해진 표현이지만, “온전한 믿음은 행함을 포함합니다”.
앎과 실천의 관계
수영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몸을 물에 띄운 뒤 물 안에서 숨을 참고 물 밖에서 숨을 쉬면서 팔과 다리를 저으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나 믿음만 가지고 실제로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탁구를 시작하는 초보자 역시 제아무리 탁구 기술 동영상을 많이 시청했다고 해서, 다시 말해 머리로 안다고 해서 몸으로 그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설교를 듣거나 말씀을 배우고 안다고 해서 그 말씀대로 곧바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수영과 탁구로 예를 든 것처럼 생활(生活, 일정한 환경에서 활동하며 살아감)이 뒤따르는 지식은 그 지식을 몸으로 실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지식이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말씀을 공부하여 시험을 치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행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는 말씀은 신앙의 영역을 뛰어넘어 너무나 당연한 명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코 편안하지 않은 신앙의 여정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 12:1)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이 구절들은 신자의 믿음 생활이 단순한 평안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적하고, 인내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치열한 여정임을 잘 보여줍니다.
올바른 가르침의 필요성
물론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식이나 가르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심리적으로 위안을 주는 말씀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세상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어가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올바른 영적인 가르침과 행함이 결여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실용적,실천적 관점에서 본 신학
저는 이론적인 학문보다 실제적인 학문을 좋아하여 법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법적인 문제를 법의 잣대를 이용하여 해결하는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법조인의 관점으로 신앙생활과 관련된 신학적인 주제들을 바라보니, 신앙생활과 별 관련성이 없는 현학적인 문제들이 있는 반면 신앙생활에 직결되는 중요한 주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주제들을 나누면 주변에서는 특별하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조나단 에드워즈의 말처럼 누구나 이런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앞으로
저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주제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독교 내에 의견 대립이 있는 주제들은 양쪽을 근거를 살펴보면서 각자의 신앙생활에 유익하도록 조심스럽게 결론을 도출하고자 합니다.
함께 동행하면서 더욱 복된 신앙생활을 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도 받은 복을 흘려보내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