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의 no양심 로맨스) 1편
A는 오래전 짧은 결혼생활을 마치고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유책 사유가 남편에게 있었고, 부부 사이에는 아이가 없어, A는 빠르게 남편을 ‘전’남편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A의 잘못으로 한 이혼이 아니었지만, 세상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A는 이혼 이후로 극도로 방어적인 성격이 되었고,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성들을 경계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몇 년 후, A가 근무하던 지사에 본사 직원인 B가 파견되었고, A와 B는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B는 지사 직원들인 A와 그 동료들에게 상냥하고 정중하게 대했고, A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B를 동경했습니다. A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잘 아는 회사 동료들은 B도 이혼남이니 돌싱끼리 잘해보라며 두 사람을 부추겼지만, 당시에는 B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A와 B는 직장 동료이자 또래 친구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어느 날 B는 A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처가 아이들을 버리고 집에 있던 재산을 전부 챙겨서 집을 나가 이혼하게 됐으며, 자신이 아들과 딸을 한 명씩 키우는 싱글 대디'라고 고백했습니다. A와 B는 이혼이라는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마침내 B는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A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습니다.
A와 B는 크고 작은 갈등을 이겨내며 5년을 연인으로 함께 지냈습니다. A는 B의 자녀들뿐 아니라 그 부모님과도 자주 만났고, 특히 중학생인 B의 딸이 사춘기를 겪는 동안 엄마의 부재를 채워주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B와 사귀면서도 재혼 생각이 전혀 없었던 A는 자연스럽게 B와의 재혼을 염두에 두었고, B 역시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한가롭게 휴일을 보내던 A의 휴대전화로 'B의 아내'라는 사람이 보낸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B의 이름을 정확히 언급한 문자메시지에 깜짝 놀란 A는 바로 B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A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B는 급한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 금방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고, A는 거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B의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몹시도 길었던 30분이 지나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집으로 들어온 B는 모든 사실을 해명하겠다며 A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B는 문자를 보낸 사람은 10년 전에 이혼한 전처이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직 서류상 부부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처는 서류를 정리해 주겠다면서 B에게 거액의 돈을 요구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딸로부터 A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결국 A에게까지 연락이 닿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A는 아무리 서류상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유부남인 B를 만나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졸지에 상간녀 취급을 받게 된 A는 B에게 화를 냈습니다. B는 A에게 '신경 쓸 일 만들지 않을 테니 믿고 기다려달라'며 애원했고, A는 그런 B를 완전히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A는 B에게 서류 정리를 마칠 때까지라도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통보했지만, B는 그 이후에도 이따금 술을 마시고 A의 집을 찾아와 사랑을 구걸했습니다. 몇 달 후 B는 A를 찾아와 전처와 완전히 이혼했다면서 서류를 보여주었고, A는 B에게 예전 같은 신뢰를 갖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B를 사랑했고, 지난 5년간 B와 지내온 시간을 그냥 버리기도 아까웠습니다. 결국 A는 B와 재결합하였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 A는 법원에서 보내온 두터운 봉투를 받았습니다. 봉투에 동봉된 문서에는 '소장'이라고 적혀 있었고, A의 심장은 제 속도를 잃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A는 그렇게 상간 소송의 피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고는 B의 전처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