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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유강 Dec 12. 2024

홀로 가는 파동은 간섭하지 않아.

미리(우찬)의 시간(소설연재 9)

그 해 가을은 기분 좋은 따듯함과 서늘함이 차례로 찾아왔고 나무들은 단풍을 서둘러 내려놓지 않았다.


아주 오래 서서히 붉고 노란 단풍들을 어떨 땐 촉촉하고 반짝거린 채로,

시간이 좀 지나서는 갈색으로 바삭하게 말려 적당할 때 떨어뜨렸다.


적당할 때라는 건 말하자면 짧은 가을, 맑은 주말에 미리와 우찬이 얇은 트렌치 코트 자락을 날리며 팔짱을 끼고 걸어갈 때 그 둘의 앞뒤로 우수수 떨어뜨리는 걸 말한다.


또는 퇴근하는 미리가 타고 올 버스를 기다리던 우찬이 니트 비니를 무심코 벗을 때 그 머리 위로 낙엽 하나쯤 떨구어줘서 미리로 하여금 우찬의 머리에 앉은 낙엽을 집어내며 놀릴 수 있도록 때를 맞춰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이고도 상대적으로

가을은 짧지만 그 해 가을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겨울은 눈 깜빡할 사이에 찾아온다.     



미리에게 할머니의 부고가 전해졌다.


미리에게 할머니의 부고가 날아오자 우찬은 한편으로는 안심하였다.


‘가족이 있는 게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우찬은 잠깐 스스로 민망해졌다.


‘천천히 오라게. 예리가 연락이 안 되는데 너도 한번 알아보고 마시.’


“예리가 연락이 안 돼요? 할머니 폰  1번에 예리 번호 있을 텐데요.”


미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리에게 먼저 연락 핸. 경핸 아직 연락이 안 돼 마시. 외국 나간 건 아닌지 모를켜”


“제가 다른 연락 방법 찾아볼게요. 짐 챙기고 비행기 표 되는 대로 바로 내려가도록 할게요.”

"큰아버지들은 혹시 연락되셨어요?"


"그추룩 싫어해도 어멍 돌아가신디 안와사 될크냐.  4일장 할 거 작정하고 이서부난 걱정 말고 너나 잘 챙겨 오라."


"네. 삼촌."


미리의 전화기 너머 흘러나오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웅웅거렸지만 고달프게 들려왔다. 


전화를 끊은 미리는 한동안 맥을 놓고 앉아 있었다.


미리는 울지 않았다.


미리가 울지 않아도 될 만큼 멀리 살았나 보다고 우찬은 지레짐작했다.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 곳인가?'


미리의 대답 소리만 듣던 우찬은 미리의 할머니가 사는 곳이 가까운 일본이나 다른 외국인가 싶어 물어봤다.


“할머니 어디 사셨어? 이제 말 좀 해주지. 시크릿에이젠트?”


우찬은 조금은 안달하며 물었다.


“제주”


동그란 우찬의 눈이 확 커졌다. 

우찬은 갑자기 기가 탁 막혔다.


“제주?"

"제주 어디?”


우찬의 커다란 눈이 더 동그래졌다.  


미리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북촌”


우찬은 잠시 머리기 띵해졌다.


“북촌?”


우찬의 목소리가 커졌다.


 ‘촌’을 발음할 때 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어렸을 때 사용했던 고향 말투로 억양이 구부러져 올라가는 걸 느꼈다.


우찬목소리에서 그동안 눌러왔던 궁금증 하나가 풀리면서  갑자기 화가 묻어 올라오는 것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미리에 대한 궁금함을 풀 수 없는 동안 사실은 속상함이 효소가 되어 켜켜이 쌓이며 발효되고 있었다는 걸 우찬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내가 우리집 성산이라고 얘기할 때 왜 아무 말 없었어? 우리 둘 다 제주도 사람이었던 거네. 그것도 둘  동쪽이네.”


우찬은 자신이 가족들 얘기를 할 때 한 번도 미리가 눈을 마주 보고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와아. 쫌. 누나!”


우찬의 입에서 갑자기 누나라는 호칭이 터져 나왔다.


거의 비명소리처럼 내지르는 누나 소리에 미리가 움찔하였다.


미리는 이모할머니네 작은 삼촌으로부터 날아온 할머니의 부고에 다리 힘이 풀려 소파에 기대어 쪼그려 앉은 참이었다.          


우찬은 미리보다 일곱 살 어렸다.


우찬은 미리에게 카메라 망원렌즈를 고비용으로 수리하기보다 저가의 망원경을 새로 구입하는 게 어떤지 권유했었다.

겸사겸사 구경삼아 들렀던 불광동 주택가의 망원경 전문샵에서 회원 가입할 때 누르던 그녀의 생년월일을 의도치 않게 보게 되었었다.


우찬에게 미리는 의지하고 싶은 연상녀, 누나가 아니었다.


그냥 돌봐줘야 할, 쉽게 부서질 것 같은 여리고 여린 사람 그 자체였다.


미리의 집엔 여성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이 별로 없었다.


흔한 인형이나 키링 같은 것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냉장고에 뭔가가 잔뜩 붙어 있어서 가족이나 친구들 사진이라도 있나 했지만 그저 여행지를 기념하는 자석들뿐이었다.


거의 미국 서부를 위아래로 종단한 것 같은 자석들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미리의 집은 좀 썰렁하다 싶었는데 아기자기한 데코가 없어서가 아니라 한두 장 정도 있을 법한 가족사진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 썰렁함을 대신해서 웜톤의 30호 정도 크기의 풍경화가 거실과 안방에 걸려 있었다.


비슷한 색조의 풍경화들은 산과 강과 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구도에 밝은 가을빛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째 시골 이발소 풍경화 같다고 했다가 미리의 째려봄을 실컷 맛 봤었다.


미리는 화가의 화풍이 마음에 들어 덴버 부근의 미술관을 다녀오며 복제품을 사 왔다고 했다.


화가인 앨버트 비어슈타트의 풍경화 속에는 사람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너무 작아서 보기에 편하다고 하였다.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그림 속, 사람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리에서 그려진 그림이라서 좋았고 마치 기독교의 성화처럼 햇빛이 특정 지역을 비추는데 그게 사람들을 향한 게 아니라서 좋다고 하였다.     


미리는 정말 독특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마음이 많이 고달프고 아픈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우찬은 생각했었다.


사적으로 만나는 직장 동료나 가까운 친구조차 없어 보였다.


가족들을 만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외상 후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거나  혹은 일종의 자폐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우찬은 근심 어린 고민을 해본 적도 있었다.


어쩌면 한두 달 만난다고, 서로 깊이 몸을 섞고 동거하다시피 붙어 지낸다고 해서 금방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우찬은 미리의 마음을 향해 한두 걸음 다가갔다가 다시 한두 걸음 물러나곤 했었다.    

    


우찬이 미리에게 카메라의 망원렌즈로 들여다보는 게 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서로의 몸을 열고 들어가 만 하루를 서로 보채며 보내느라 느른한 저녁잠에서 일어난 시간이었다.


미리의 짧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질을 하던 우찬이 물었었다.


미리는 그때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보통 뭘 보고 있어?”


“사람”


“사람?”


“사람의 무얼?”


“그냥 사람. 움직이는 사람.”

“차도 좋아해. 운전 중인 차도 좋아하고 주정차 중인 차도 보기 좋아.”


“차를 좋아해?”


“아니야 차를 좋아하기보다는 차 안에 사람이 있을 거니까. 어디론가 갈 거니까. 혹시 사거리 근처라면 차선을 변경할지 안 할지 알 수 없으니까. 직진할지 좌회전할지, 혹은 우회전할 지도 궁금하니까.”


“애기네. 애기”

“호기심 대마왕 애기”


우찬이 약간 깐족거리며 장난스레 얘기하자 미리가 쿠션을 집어 들어 우찬의 얼굴을 살짝 눌렀다.


우찬은 푹신한 쿠션에 그대로 얼굴을 묻은 채 미리에게 고양이처럼 하악거렸다.


미리가 이제 꼬리가 아예 없는 고양이가 한 마리 생겼다고 놀리며 웃다가 차분하고 느리게 대답했다.


“궁금함이 꼭 풀어야 할 숙제처럼 무거운 것이 아니라서, 금방 사라질 궁금함이라서 편해.”


우찬은 미리의 말을 듣고 마음을 놓았었다.


“당신은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내가?”


“응. 좋아하니까 그렇게 소중한 시간에 공들여서 바라보고 있겠지.”

“당신이 나뭇잎이나 구름을 보는 게 아니었어.”


"아니. 나뭇잎이나 구름은 언제나 봐."

"눈으로 보고. 스쳐서 봐. 나뭇잎이나 구름의 움직임은 얼핏 봐도 대개는 예측이 가능해.”

“바람의 방향에 맞춰서 흔들리거나 흘러가. 그런데 사람의 움직임은 예측이 불가해.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서 더 알 수가 없어.”


“그래도 반복해서 보다보면 대충 예측이 가능하지 않아? 예를 들어 대학교 담장 밑에 주정차하는 자동차들 중에는 정기적으로 주정차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특정한 차의 경우 차주가 나와서 늘 특정한 방향으로 간다면 예측이 가능해지잖아.”


미리는 콧등을 살짝 찡그리며 대답했다.


“두세 번 이상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는 차나 사람들은 다시는 안 봐.”


“응? 와이 낫?”


“그렇게 되면 관계가 형성되는 거 같아서 싫어."

"내가 관찰하는 행위가 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내 바람이고. 그래서 내게 관찰되는 사람들도 나에게 어떤 영향도 안 미쳤으면 좋겠으니까."

"아니 절대로 영향받고 싶지 않아서..”


미리는 말끝을 흐렸다.


미리에게서는 그때 탄력 있는 유리솜으로 된 벽에 부딪히듯 안기는 듯 튕겨지는  반발력이 느껴졌다.


미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쉽지는 않겠다고 우찬은 진지하게 생각했고 그 생각은 그후 무리 없이 적중했다.


우찬은 속으로 힘껏 심호흡을 했다.


“아잌후~~ 난 당신 기준에서 보면 정말 열외인 셈이구나.”

“당신은 이미 나에게 어찌할 수 없는 영향력을 아주 씨게씨게 미치고 있는데?

어떻게 하지?

모르긴 해도 나도 이미 당신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맞지?”  


놀리는 듯, 감동한 듯 우찬은 살뜰하게 미리를 살펴가며 말을 이어갔다.


미리는 잠시 이불 속으로 몸을 구겨 들어가더니 조금 있다가 쿨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났다.


우찬은 당황하였다.


미리가 울고 있었다.


우찬은 이불을 들쳐 미리를 보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이불로 미리를 포근하게 감싸서 안고는 등을 다독거렸다.


미리에게는 자신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모험이고 도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찬은 전에 무심코 자신이 알아도 되는 미리와 연관된 살아있는 객체는 고양이 한 마리 뿐이냐고 투덜거린 적이 있었기 때문에 미리의 눈물에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솟아나 마음이 찡하였다.


미리에게는 ‘니모’라는 이름의 낯을 심하게 가리는 꼬리 짧은 고양이가 한 마리가 있었다.


흔들 수 없는 꼬리를 가진 니모는 우찬이 미리의 집에 들어가면 절대로 소파 뒤에서 나오지 않아서 우찬의 애를 태우기 십상이었다.   


니모는 밥테일 종의 고양이가 아니라 꼬리가 덜렁거리는 상태로 구조된 어린 유기묘였다고 했다.

  

우찬은 미리의 허벅지에 머리를 얹고 누운 채로 미리의 왼쪽 손목에 손가락을 얹어 심장 박동을 느끼면서 한 말이 있었다.


“이렇게 연약한 손목에 이렇게 차분한 심장박동인데 왜 내겐 당신이 엄청 강력한 파워를 지닌 여전사같이 느껴질까?”


미리는 그때 우찬의 눈을 내려다보며 손끝으로 우찬의 눈썹을 결에 맞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두려운 뭔가가 있는 건 아니고?”


“겁이 좀 나는 건 사실이지.”


“왜. 무서워서?”


“아니네요. 당신이 너무 굳건한 여전사 같은데 사실 대부분은 손가락만 툭하고 대도 바사삭 부서질 거 같아서 그래서 겁이 난다고.”


미리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모르던 찬이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크~~ 돌파하기도 어려워 보이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온 거 같아.”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우찬의 말에 미리의 눈이 슬퍼보였다.


그 때 미리는 그저 허리를 굽혀 우찬의 이마에, 눈썹에, 그리고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차례로 그리고 가만히 얹었다.


우찬은 미리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우찬의 뺨을 쓸어내리는 그녀의 손가락도 같이 떨리는 걸 느꼈다.


우찬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되든 아주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거라는 걸 그때 알았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미리에게 어떤 요구도 강요하지 않겠다고.



그랬던 우찬이 미리에게 같이 가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 장례식장 같이 가자.”

“당신 혼자 못 보낼 거 같아.”


쪼그려 앉아있던 미리가 고개를 들고 여행가방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우찬을 바라보았다.


미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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