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노친네, 매트오페라극장을 가다

겁도 없이 밤 지하철을 타고

by 남쪽나라

또다시 베이글과 커피로 뉴요커다운(?) 아침을 느긋이 먹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다운타운 끝의 부두로 향한다. 우리가 첫날밤 예약한 그린버스투어는 48시간 이내에 맨하탄 야간투어를 포함한 4개의 투어를 이용할 수 있다. 오늘 아침은 마지막으로 다운타운 리버티 쿠르즈(Downtown Liberty Cruise)를 타러 간다. 17 Batter Place라고만 표시된 셔틀버스 탑승지점을 12시 반까지 찾아가야 한다. 뉴욕에서 이틀정도 지내니 이제 지하철도 차츰 익숙해졌다. 복잡한 타임스퀘어 역에 처음 내렸을 때 출구를 못 찾아 한참을 헤매기도 하고 밤늦게 귀가할 때에는 7호선 탑승지점을 몰라 삐그덕 계단을 힘들게 여러 차례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슬슬 방향감각이 잡히기 시작하니 뉴욕지하철도 탈만해진다.


뉴욕의 지하철은 그 역사만큼이나 복잡하다. 노선만 무려 26개. 지도만 봐서는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깜깜이다. 노선이 1,2,3,4... 가 있는가 하면 A, B, C... Q도 있고. 그런데 스마트폰 앱의 도움을 받으니 생각보다 쉽다. 출발지와 목적지만 입력하면 어디서 환승하며 소요시간은 얼마인지 실시간으로 다 나온다. 아! 이 편한 세상이여! 탑승주소와 가장 가까운 Bowling Green역에 내리니 꽤 넓은 Battery 공원을 끼고 맨하탄 남쪽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바다를 낀 공원 언저리에 사람들이 붐비고 관광버스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리는 것이 이곳이 배 타는 곳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조금을 기다려 투어버스엘 오르는데 오늘따라 날씨도 화창하고 버스에는 관광객들로 꽉 찼다. 세계 각국의 말들이 다 섞여 들려온다. 버스 위에서 문득 월스트리트 거리표시판이 보인다. 마침 점심시간대여서 그런지 거리 이곳저곳에 누런 런치봉지를 든 세련된 넥타이부대의 바쁜 발걸음을 보면서 갑자기 어디에선가 읽은 월 스트리트(Wall Street)의 유래가 기억난다.


맨하탄은 원래 네델란드인들이 먼저 차지하여 뉴 암스테르담이라고 이름하였는데 나중에 영국군이 전쟁으로 네델란드인을 몰아내고 뉴욕(New York)으로 이름을 바꾼다. 그런데 네델란드인이 먼저 차지했던 뉴 암스테르담은 노예매매시장으로 악명 높았다. 그들은 잡아온 노예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높은 담을 치고 가두어 두었는데 그래서 지금도 그곳을 월 스트리트(Wall Street)로 부른단다. 아! 슬픈 미국의 역사여! 그리고 또 하나 맨하탄(Manhattan)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맨하탄은 원주민 인디언 말로 Many of Hills란 뜻이라는데 우리말 그대로 '많아 땅'의 발음이다. 그래서 최근 어느 대학교수가 강력히(?)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언어비교 분석결과 아메리카 인디언조상이 바로 우리라는 설인데. 믿거나 말거나!





우리가 탄 버스는 20~30분 부두를 끼고돌아 어느 한적한 선착장에 도착하는데 그곳에 제법 멋진 쿠르즈 배가 정박해 있다. 브루클린 다리 밑을 지나고 점점 맨하탄에서 멀어지면서 맨하탄 광경이 한눈에 확 시야에 잡힌다. 맑고 쾌청한 햇살이 한층 기분을 고조시킨다. 이제 조금은 '뉴욕 별거네!' 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가까이 다가간 미국 이민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엘리스섬과 자유의 여신상. 역시 뉴욕 관광의 하이라이트답다.


최근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과 베네치아, 그리고 자유의 여신상이 지구 온난화로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뉴스가 들려오곤 한다. 자유의 여신상하면 1968년작 SF영화의 고전 <혹성탈출>의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마지막 장면 하나가 언제나 떠오른다.


영화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

우주를 탐험하던 우주선이 고장으로 어느 혹성에 불시착하여 보니 유인원들이 인간을 노예처럼 지배하며 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시간이 천년이상 흐른 뒤의 지구였다는 것. 어느 해변가에 횃불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 자유의 여신상 동체를 발견하고 오열하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자유의 여신이여! 오래오래 아니 영원히 거기 서서 뉴욕을, 지구를 잘 지켜다오!


프릭 미술관 중정

쿠르즈관광을 마치고 68st/Hunter College 역에 내려 프릭(Frick) 미술관을 찾는다. 우리는 MOMA(뉴욕 현대미술관)를 포기하고 주저 없이 프릭(Frick)을 선택했다. 순전히 페르미에르(Vermeer)를 보기 위해. 프릭(Frick)이라는 뉴욕의 대부호가 자기의 저택에 순전히 자기의 개인 컬렉션만으로 꾸민 정갈하고 아름다운 조용한 미술관. 지하에서부터 컬렉션의 규모가 만만치 않지만 역시 나의 관심사는 3점의 페르미에르(Vermeer)뿐이다.


Girl interrupted in her music(사진출처:구글)
Mistress and Maid(사진출처: 구글)
장교와 웃는 소녀(사진출처:구글)

사실 나는 미술관에 오면 답답함을 느낀다. 빽빽이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미술품 중 보고 싶은 작품을 찾기도 어렵지만, 마치 코끼리나 기린을 보기 위해 동물원을 찾는 기분이다. 넓은 초원에서 야생의 동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불쌍한 동물을 대하는 느낌. 그런데 프릭(Frick) 미술관은 그런 나의 답답함을 해소해 주기에 충분한 아늑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페르미에르(Vermeer)를 보기에는 딱이다. 흡족할 만큼 보고 또 본다.


뉴욕에 왔으니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조망대에는 올라가 봐야 한다는 아내의 강력한 주장을 꺾기가 쉽지 않았다(사실은 돈이 아까워서, 둘이서 잠깐 올라갔다 오는데 100불 정도). 시간도 없고 하니 그 대신 멋진 저녁을 먹자고 아내를 간신히 설득한 후 곧장 링컨센터로 향한다. 이번 뉴욕여행에서 나의 딱 두 가지 <꼭 봐야 할 것(Must See)>은 페르미에르(Vermeer)와 메트 오페라(Met Opera)이다. 메트 오페라(Met Opera)는 그동안 영상물이나 음반으로 꽤나 많이 접해왔지만 뉴욕에서 직접 보리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이번에 기회가 온 것이다. 두어 달 전부터 메트(Met)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어렵사리 예약한 오늘의 프로그램은 모짤트의 <후궁으로부터 탈출>. 영상으로 몇번 본 오페라이다.


메트로폴리탄 극장 로비

지하철로 도착한 링컨센터의 인상은 기대만큼 압도적이지는 않다. 너무 현대식 건물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유럽의 화려한 오페라하우스만 봐서 그런가? 멋진 저녁식사를 하자는 아내와의 약속은 도착하자마자 여지없이 깨졌다. 아직 오픈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링컨센터 주변 어느 곳을 둘러봐도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레스토랑들이 꽉 찼다. 예약도 못했으니 이를 어쩌지? 별도리 없이 근방의 그럴듯한 빵집엘 들어가 샌드위치를 시키는데 그나마 앉을자리를 겨우 잡는다. 아침부터 세끼를 빵조각으로 때우다니!


오페라극장 내부는 꽤나 크고 화려(?)했지만 시작 전까지 앉을 만한 의자 하나 없어 계속 서 있다 보니 하루 종일 쏘다니느라 피곤한 우리는 툴툴거리기 시작한다. 야! 이건 서울의 오페라 극장보다 나은 것도 없네!


메트 오페라 극장 내부

우리가 예약한 자리는 무대가 1/5 정도 잘 보이지 않는 저렴한 발코니석이다. 어차피 오페라보다는 메트를 보러(?) 온 것이니까 나는 피곤하여 졸기도 하고 지루해하는데 아내는 재미있는지 끝까지 열심히 보고 있다.


장장 3시간여의 오페라공연이 끝나니 밤 11시경. 사실 귀가 길이 미리부터 꽤나 걱정된다. 밤늦은 뉴욕지하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커 택시를 타려 했는데, 아침에 나올 때 민박집주인의 강력한 주장이 떠오른다. 퀸즈 로선은 안전하니 지하철을 타라고. 우리는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지하철을 타는데 뜻밖에도 지하철 안은 막 오페라를 보고 나오는 정장차림의 선남선녀들로 가득하다. 여기 뉴욕 지하철 맞아?


하지만 갈아탄 7번 노선은 링컨센터 노선과는 달리 역시 뉴욕(?)답다. 피곤에 절어 졸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흑인들과 히스패닉들, 그 가운데 아시아인들도 보이고. 좁은 지하철 안의 퇴색해 보이는 형광등 불빛만큼이나 저들의 삶도 고달픈가 보다. 뉴욕의 두 얼굴을 뒤로하고 깜깜한 숙소에 돌아오니 밤 1시다. 와! 우리도 이제 뉴요커 다됐네! 뉴욕의 밤을 겁도 없이 이렇게 쏘다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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