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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nny Brown Nov 30. 2024

초콜릿의 수도, 프랑스 파리

초콜릿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파리의 초콜릿 하우스


Bunny Brown씨는 프랑스 파리 출장을 좋아합니다. 파리에는 Bunny Brown씨가 좋아하는 초콜릿 하우스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그가 파리의 초콜릿 가게를 즐겨 찾는 건 단순히 그 곳에서 파는 초콜릿의 맛 때문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여러 세대를 거쳐 쌓아온 초콜릿에 대한 그들의 진심과 열정에 대한 존경 때문이라고 Bunny Brown씨는 말합니다.   


"파리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초콜릿 하우스들이 많습니다. 역사가 길다는 건 그만큼 그 안에 쌓여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이죠. 긴 시간 안에 녹아 든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는데, 저는 이것을 시간의 브랜딩 효과라고 부릅니다. 맛이 똑같고,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다 같은 초콜릿이 아닙니다. 그 초콜릿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 다르고, 그들이 쌓아 온 이야기가 다르니까요.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가진 초콜릿을 좋아합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항상 '초콜릿을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은 그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아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약 20년 전,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회중시계가 시간여행을 도와 주는 타임 슬리퍼 Time sliper 라는 사실을 알게된 후, Bunny Brown씨가 첫 번째 여행지로 선택한 곳도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Time Slipper를 발견한 Bunny Brown


그는 그 이후로도 종종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초콜릿을 찾아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났고, 그 중에 번은 베르사유 궁전떨어진 적이 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만나 하루 종일 초콜릿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적도 있습니다. 


왕비 역시 Bunny Brown씨 만큼이나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둘은 대화가 정말 잘 통했다고 하는데요, 이 밖에도 프랑스 파리의 초콜릿에는 어떠한 이야기들이 채워져 있는지 Bunny Brown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같이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프랑스 초콜릿 역사의 시작 


프랑스 초콜릿 역사의 시작은 16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페인의 공주였던 안 도트리슈 Anne d’Autriche(1601~1666)가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1601~1643)와 결혼하면서 스페인에서 즐겨 먹던 초콜릿을 프랑스로 가져왔고, 이 때부터 초콜릿은 프랑스 귀족 사회에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루이 13세(좌) / 안 도트리슈(우)


초콜릿은 원래 아메리카 대륙의 마야와 아스텍 원주민들이 카카오 나무의 열매를 이용하여 만든 음료였는데, 스페인이 16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면서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이 음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 스페인의 탐험가 에르난 코르테스 Hernán Cortés 가 아스텍 제국을 정복한 이후 본격적으로 초콜릿을 스페인으로 들여왔고, 왕실과 귀족들은 기존에는 맛보지 못 한 달콤쌉싸름한 이 음료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루이 13세에 이어, 그의 아들인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 또한 스페인 공주와 결혼했는데,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테레사 Marie-Thérèse(1638~1683)입니다. 


루이 14세(좌) / 마리아 테레사(우)


마리아 테레사는 초콜릿을 "기분을 좋게 하고 피로를 풀어주는 음료"라고 묘사하며 어려서부터 초콜릿을 매우 좋아했다고 전해지는데, 프랑스로 시집을 오면서 초콜릿 음료를 만드는 도구와 마시는 잔, 요리사까지 대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부터 초콜릿은 프랑스 궁정에서 매우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아직 카카오를 대량으로 재배하고 가공하여 초콜릿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공 가능한 초코릿의 양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그래서 초콜릿은 고급스럽고 희귀한 사치품으로 여겨져 주로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음료였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18세기가 되어서는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의 왕실에서 초콜릿 음료를 즐겼습니다. 왕족과 귀족들은 초콜릿이 건강과 미용에 좋다고 믿었기 때문에 단순히 디저트가 아니라 약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초콜릿에 향신료나 약재를 섞어 만든 음료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좌 : 초콜릿을 만드는 사람들 (출처 : 내셔널 지오그래픽) / 우 : 초콜릿 음료를 즐기는 귀족들 (출처 : 위키피디아)





2. 초콜릿을 사랑한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


1) 오스트리아에서 온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Maria Theresa 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강력한 여제이자 16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로 자녀들에게 매우 엄격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간의 동맹 강화를 위해 막내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시켰습니다. 이 결혼은 외교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고, 사람들은 이 결혼이 두 나라 간의 오랜 적대 관계를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1770년, 14세의 나이로 당시 왕세자였던 루이 16세와 결혼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과 엄격한 궁정 문화를 접하며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오스트리아 궁정과는 확연히 다른 프랑스의 복잡하고 번거로운 궁정 예절과 의전이 그녀에게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마링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 (출처 : 위키피디아)




2) 외로운 왕비

1774년, 루이 16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19세의 젊고 매력적인 왕비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프랑스의 적대국이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점과 여전히 프랑스 궁정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왕족과 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 하고 정치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았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와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어머니의 조언과 지지를 구했지만, 딸의 정치적 영향력을 기대했던 어머니는 오히려 마리 앙투아네트의 실수와 판단력 부족에 대해 가혹하게 평가하고 질책하여 왕비의 프랑스 생활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외롭고 고달프기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왕비는 어느새부터 외로움과 허전함을 패션, 파티, 도박 등 사치스러운 생활로 채워 나가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모습이 대중에게도 알려지면서 당시 프랑스의 경제적 위기 속에서 대중의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하여 그녀의 사치와 낭비를 비판하는 풍자 만화가 널리 퍼지며 그녀는 프랑스 재정 위기의 원흉으로 몰렸는데, 혁명 세력은 그녀를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를 이용한 '반역자'로 간주하였고, 1793년 10월 15일 혁명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그녀는 다음날인 10월 16일 콩코드 광장 단두대에서 참수당했습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리 앙투아네트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그녀의 생활은 당시 유럽 귀족 계층에서는 일반적인 수준이었고 프랑스 재정의 위기는 프랑스의 막대한 국가 부채와 세제의 불균형, 미국 독립전쟁 지원 등 왕실 전체가 가진 문제와 맞물려 발생한 결과였기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스러운 이미지에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습니다. 


왕비가 대중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책임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 하라"는 이 유명한 말 또한, 사실은 왕비가 한 말이 아니라 당시의 반왕실 선전의 일환으로 전해진 허구입니다.




3) 왕비와 초콜릿 

마리 앙투아네트가 나고 자란 18세기의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왕실과 귀족들이 초콜릿 음료를 즐겼기 때문에 그녀 또한 어린 시절부터 초콜릿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당시 초콜릿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건강식품으로 인식되었고 그녀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종종 지인들과 어울려 초콜릿 음료를 마셨습니다. 


출처 : chateau de versailles


당시 왕실의 약사였던 데바브 Debauve 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시는 약물의 쓴맛을 줄이기 위해 초콜릿을 섞어 약을 제조하고, 왕비의 소화 문제와 기력을 돕기 위해 약초와 향신료를 혼합한 코인 형태의 초콜릿(피스톨 Pistoles)을 만들었는데, 왕비는 데바브의 초콜릿을 매우 좋아하여 그를 총애했습니다. 


이후 1800년에 데바브는 파리에 초콜릿 가게를 오픈했습니다. 이 가게는 오늘날까지도 운영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초콜릿 가게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나중에 그의 조카 갈레 Gallais 와 협력하면서 데바브 & 갈레 Debauve & Gallais 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확장했는데, 당시 프랑스 귀족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나폴레옹과 프랑스 황제들까지도 고객으로 두며 프랑스 고급 초콜릿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주소] 30 Rue des Saints-Pères, 75007 Paris 

[홈페이지] https://debauve-et-gallais.com/en


출처 : Debauve & Gallais 홈페이지


이 외에도 파리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여러 초콜릿 하우스들이 오랜 시간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유럽의 고급 초콜릿 문화를 선도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Bunny Brown씨가 추천하는 특별한 초콜릿 하우스 5곳을 소개합니다.  






3. Bunny Brown씨가 추천하는 파리의 초콜릿 하우스


1) À la Mère de Famille 아 라 메르 드 파미유

1761년에 설립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초콜릿과 제과 전문점으로 전통적인 프랑스 과자와 초콜릿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À la Mère de Famille"는 "가족의 어머니에게"라는 뜻으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초콜릿과 과자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6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초콜릿 하우스는 고풍스러운 매장 인테리어와 고품질의 제품으로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명소입니다.


[주소] 35 rue du Faubourg Montmartre, 75009 Paris

[홈페이지] https://www.lameredefamille.com/en





2) Maison Boissier 메종 브아시에

1827년에 설립된 파리의 고급 과자 및 초콜릿 하우스로, 벨 에포크 Belle Époque 시대의 우아함과 미식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Maison Boissier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에  파리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는데, 대문호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가 그의 아내에게 이곳의 캔디를 선물했다는 일화가 Maison Boissier의 명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Maison Boissier는 초콜릿에 더해, 프랑스의 겨울철 대표 간식인 마론 글라세 Marrons Glacés (설탕에 절인 밤)와 천연 과일 퓌레로 만들어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일품인 프루츠 젤리 또한 매우 유명한데, 패키지 디자인도 예술적이고 화려해서 선물용으로 인기가 매우 많습니다. 


[주소] 48 rue de Passy, 75016 Paris

[홈페이지] https://maison-boissier.com/





3) La Maison du Chocolat 라 메종 드 쇼콜라

로베르 랑스 Robert Linxe가 1977년에 파리에 설립한 초콜릿 하우스입니다. 그는 카카오의 풍미를 예술로 승화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의 초콜릿은 주로 선물용으로만 여겨졌으나 랑스는 초콜릿을 고급 미식 경험으로 끌어 올리고자 했습니다. 그는 초콜릿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단순히 단맛을 넘어 깊은 풍미와 텍스처를 추구했는데, 특히 가나슈* Ganache 를 고급화하여 가나슈 초콜릿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La Maison du Chocolat은 초콜릿 애호가와 미식가들 사이에서 "초콜릿의 예술"로 불리며, 고급 브랜드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파리의 매장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초콜릿의 전당처럼 느껴질 만큼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가나슈 : 고체 초콜릿에 액체 재료를(생크림, 과일 퓨레, 알코올, 물 등) 섞어 만드는 부드러운 형태의 초콜릿


[주소] 225 rue Du Faubourg St Honoré, 75008 Paris

[홈페이지] https://www.lamaisonduchocolat.com/en_fr






4) Pierre Hermé 피에르 에르메

피에르 에르메는 4대째 이어온 제과 가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제과 기술을 배웠고, 14세에 프랑스 디저트의 대부인 가스통 르노트르의 지도로 수습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전통적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맛과 질감의 조합을 추구하며 디저트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는데,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창의적인 맛의 조합을 만들어 내는 그를 사람들은 '맛의 건축가'라고 불렀습니다. 


2016년에는 세계 최고의 파티셰로 선정되기도 한 그는 Infiniment Chocolat, Fetish Collection 등 그만의 독창적인 컬렉션으로도 유명합니다. 


피에르 에르메는 특이하게 1998년에 도쿄에서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하고, 이후 2001년에 파리의 Rue Bonaparte에 첫 프랑스 매장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확장했습니다.


[주소]  72 Rue Bonaparte, 75006 Paris

[홈페이지] https://www.pierreherme.com/en/





5) Patrick Roger 파트릭 호제

Patrick Roger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품 초콜릿 장인으로, 그의 초콜릿은 예술성과 창의성, 그리고 최고의 품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초콜릿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조각 작품을 창조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의 매장은 초콜릿 갤러리처럼 꾸며져 있어, 고객들이 미식과 예술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Patrick Roger는 초콜릿을 단순한 디저트가 아닌 예술적 표현의 매체로 간주하는데, 그는 프랑스 초콜릿의 예술적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미식계와 예술계에서 찬사를 받고 있고 2000년에는 MOF(Meilleur Ouvrier de France)를 수상하며 명실공히 프랑스 최고의 초콜릿 장인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주소]  108 Boulevard Saint Germain, 75006 Paris

[홈페이지] https://www.patrickroger.com/







You Are Not Alone. 


아무도 본 이가 없어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1793년 10월 15일, 그러니까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파리 혁명 광장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전 날 밤, Bunny Brown씨는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타임 슬리퍼를 써서 왕비가 투옥되어 있던 콩시에르주리 Conciergerie 를 방문했습니다. 


"왕비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늘 생기 넘치고 밝게 빛나던 왕비의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초췌한 모습으로 조용히 마지막 아침을 기다리는 왕비에게 Bunny Brown씨는 애써 덤덤하게 인사를 건냈습니다. 


"Bunny Brown씨! 그렇지 않아도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와 주었군요. 감사해요. 아마도 내일이 되면 Bunny Brown씨를 더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전에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 동안 종종 베르사유 궁전에 들러서 초콜릿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 시간들이 제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큰 활력이었답니다." Bunny Brown씨를 반갑게 맞아주는 왕비의 얼굴은 어느 새 밝은 미소로 가득 찼지만, Bunny Brown씨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왕비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 하고 고개를 살짝 돌린채 왕비에게 조용히 손을 내밀었습니다.  


"왕비님께 드리려고 초콜릿을 하나 만들어 왔어요. 한 번 드셔 보세요." Bunny Brown씨가 내민 손을 펼치자 그 안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초콜릿 한 알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머... 세상에 이렇게 예쁜 초콜릿이 있군요. 그런데, 제가 이걸 받아도 될까요? 죄인의 몸으로 이렇게 귀한 걸 받기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받아 왔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왕비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떨렸습니다. 



"You Deserve It. 세상 사람 누구나 초콜릿을 먹을 자격이 있으니까요." Bunny Brown씨는 고개를 푹 숙인채 눈물을 떨구는 왕비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초콜릿을 올렸습니다. 


"고마워요, Bunny Brown씨... 덕분에 저의 마지막 밤이 조금은 덜 쓸쓸했어요. 이 초콜릿... 너무 맛있네요. Bunny Brown씨가 그 동안 제게 보여 준 호의 절대 잊지 않을께요."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문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눈물범벅인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Bunny Brown씨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Bunny Brown씨는 더 이상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어서 입가에 거짓 웃음을 살짝 지어 보이며 가벼운 목례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들썩이는 어깨를 왕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방을 빠져 나온 Bunny Brown씨는 한참을 그렇게 서늘한 가을 달빛 아래에 서서 아무도 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Bunny Brown씨는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처형장으로 이동하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멀리서 슬픈 눈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의연했고, 그녀가 입은 하얀 옷은 여전히 순수한 그녀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형리들에게 끌려가던 왕비의 눈이 우연히 Bunny Brown씨의 눈과 마주친 순간, 실수로 사형집행인 샤를 앙리 상송 Charles-Henri Sanson 의 발을 밟은 그녀는 "미안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라며 사과를 했고, 그게 Bunny Brown씨가 들은 왕비의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다른 시대,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면 그 누구보다 많은 이들에게 죽는 순간까지 끝없는 사랑을 받았을 밝고 아름다운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 Bunny Brown씨는 그녀를 위해 만든 초콜릿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You Are Not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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