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려워요. 23살의 불교와 인생의 진리

Siddhartha

by Hyunhosocial


어릴 적 어떤 분간도 하지 못했던 나이에 나는 절 유치원을 다녔었다. 그곳은 다른 유치원 들과 같이 아이들을 보육하는 시설이었고, 주변 보육 시설 중 가장 큰 규모였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한 가지 특징이라면 '조계종' 소속의 절 유치원이다 보니 우리가 받는 교육에 자연스럽게 불교문화가 스며들 수 있도록 짜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사실 '불교'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스펀지 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일 나이였기에 그것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삶 속에 체화했었던 거 같다. 매주 수요일이 되면 유치원 3층 법당에서 참배를 드리고, 반야심경을 외고, 불교 교육을 받았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것이 굉장히 따분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난 그 생활이 삶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두 손을 모아 합장 인사를 하고, 유치원 곳곳에 그려져 있던 불교 벽화들이 익숙해졌고, 채식의 식사와 음식을 남기지 않는 습관은 내게 올바른 식습관을 심어 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불교에 대한 신앙심을 가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들이 신앙심으로 나를 절 유치원에 보낸 것도 아니었으며, 단지 그곳의 시설이 좋고 주변에서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보내졌던 것뿐이다. 그렇기에 매주 수요일마다 드리는 참배 시간은 부처님에게 신앙적 믿음으로서 고해하는 시간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그저 하루의 일과에 불과했다. 그렇게 내 유년 시절은 다소 불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거 같다. 단지 석가탄신일에 사찰에 방문해서 삼배를 드리는 정도에 불과했고, 여건이 되면 1년에 한 번씩 템플스테이에 다녀오는 것에 그쳤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중학생이었던 때 외할아버지를 '신흥사'에 모시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 기도 훨씬 전에 할아버지는 이미 유명을 달리하셔 한 번도 뵙지 못했고, 명절에 한 번씩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주고받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몇 번 보지 못한 사진이 내겐 기억의 전부였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길러졌지만 할머니께서도 할아버지에 대한 말씀을 많이 안 해 주셨으며, 그저 우리 외가의 어머니와 이모들을 오직 사랑으로 길러주셨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절에 모시게 되는 과정까지는 세세히 알지 못하지만, 난 그저 사찰이 우리에게 주는 기운이 좋은 기운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 결정을 긍정했었다.


그 이후로 신흥사는 나에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그곳에 가는 길은 마치 센과 치히로의 초반 장면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와 매우 비슷하다. 바다가 보이는 도로를 따라 운전을 하다 보면, 이정표가 나오고, 그곳을 따라 들어가면 농촌 마을을 거쳐가게 되는데 가는 길부터 나에게 심적 안정감을 준다. 그렇게 굽이굽이 산속으로 향하다 보면 어느덧 신흥사에 도착하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사사로운 고민부터 여러 가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 지쳐 살아간 때면 항상 신흥사가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는 그저 대학교 입시에 대한 걱정뿐이었기에 그 스트레스의 간극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회복을 하고, 자주 신흥사에 들러 심신안정을 취했다.


성인이 되고 가장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이제 내가 성인이라는 책임감과 더불어 내 통제 선상 밖에서 발생하는 외생변수로 인해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던 거 같다. 특히 내 성격 상 훌훌 털고 지나가도 되는 일에도 계속 사사로운 감정이 남아 내 마음속에 앙금이 남는 것이 문제였다. 그럴 때면 항상 본가에 가서 꼭 신흥사에 방문하여 내 불안정한 심신을 치유하고,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긴 숨을 내쉰다. 그렇게 심호흡을 하고 나면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들의 해답도 살짝 보이며,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원시 안의 시야로 내 상황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근심 걱정이 너무나도 많았던 20대 초반이었다. 사소한 것에도 긁히고, 구겨지고, 넘을 수 없는 벽도 느끼면서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또한 항상 기회만 보다 놓치는 것이 부지기수였기에 질러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도전을 감행했었다. 물론 그러한 충동적인 도전은 항상 나에게 좋은 결과로 보답해 주었다. 물론 이러한 충동에는 책임이 수반되어야 하나 그 책임을 온전히 다 지었는지에 대해서는 확답하지 못할 것 같다. 이는 다시 사회로 나아가는 내 가 앞으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숙고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벌써 내가 세우고 있는 계획만 봐도 갑갑한 삶이 예상된다. 그 계획들을 온전히 이루어낼 수 있을지도 사실 약간의 의문이 들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그러나 그 계획들을 달성했을 때 발전을 거듭하고 있을 나에 대한 기대감과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열심히 발판을 닦고 있기에, 온전히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글을 쓰며 잠시 초연함을 되찾고, 여러 가지 생각을 끄적여본다.


항상 글을 쓰며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은 나의 부족한 단어 구사력과 문장 형성 능력인 거 같다. 내가 마음속에서 뱉고 말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정교한데 그 생각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고, 나의 한계에 좌절하게 된다. 이러한 아쉬움에 대한 해 답을 '싯다르타'를 통해 약간은 해소할 수 있었다. 싯다르타는 윤회의 진리를 깨우치는 긴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책의 제목과 전체적인 신파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그 어떤 책 보다 나에게 집중하고, 싯다르타에 나를 대비하여 그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에 동승했다. 그는 세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을 통해 윤회의 진리를 깨우친다. 그 과정에는 고행의 과정도 담겨있으며, 인간적인 욕구에 대한 의지, 사랑의 감정까지 담겨있다. 다른 수행자들의 입장에서 이러한 행위는 마치 그들의 기본적인 교양에는 어긋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그러한 다양한 삶을 살아가며 결국 진리를 깨우친다. 이것은 말과 글로서도 구전될 수 없으며, 오직 자신이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세상의 순환과 윤회의 과정인 것이다.


이 것은 답답함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 자체로 받아들임으로써 진리에 대한 깊은 고 찰을 하게 되었다. 특히 싯다르타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수행을 하는 고타마 마저 초연함을 가진 것이 아닌, 최고의 고타마가 돼야 한다는 명예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마치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 중심이어야 하나 그것이 주객전도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불교라는 신앙심에서 우러난 진리가 아닌 모든 것에 통용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세상을 초월한 삶의 교리를 깨우친다면 이러한 모습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마찬가 지로 작가인 헤르만 헤세가 사유한 삶도 싯다르타와 같은 성찰에 따른 무력감이 아닌 유레카가 아니었을까.


때때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한자어들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그 단어를 지나치지 않고 인터넷의 힘을 빌려 찾아본다. 그러한 단어에는 보통 너무나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경우 가 많다. 그런데 그 한자어들은 마치 번뇌를 깨우치고, 인간 실존을 논하면서 이를 구전하 고 깨우치며, 가르치기 위해 많은 고민이 첨가된 조상님들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지금 이 세상에서 철학과 번뇌에 온전히 빠져 있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외생변수를 만들었고, 철학적 관점으로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특히나 이런 삶의 고찰은 지금 세대에게 주류의 학문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며, 우리나라 한정으로 더 많은 것을 꿈꾸고 고민하기 이전에 배우는 도 식화된 철학은 우리가 전념하여 고뇌를 하기 이전에 원천차단한다. 철학과 교리가 말하는 것은 오랜 세월 살아가며 축적된 조상님들의 거대한 빅데이터이자 후세를 위한 외침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은 전부 無로 돌아간다. 우리가 경쟁하던 것들, 스쳐 지나간 것들 모두 저마다의 색을 띠며 형형색색 흩어지다 잠시의 시기가 지나면 본래의 곁에서 스러져 간다. 무심할 정도로 긴 세월을 보낸 이 세상은 찰나에 이 땅을 밟고 있는 우리조차도 느끼지 못하며 영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찰나의 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중심으로 저 마다 세상의 규칙을 지키고, 유레카를 외치듯 진리를 깨우쳐 가며 자신의 빛을 발산한다.


과학의 진보와 윤회의 삶은 불협화음이다. 윤회는 그 진보마저도 잠식시키기 때문이다. 윤회는 Quantum을 연구하고 있는 과학을 Quantum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무심함 과 아득함에 우리의 삶을 무력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이유 또한 윤회의 일부이며 이 세상의 축이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축들이 모여 이 시간선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축들이 겹치면 큰 역사가 만들어지고, 축들이 세밀하게 자신의 시간을 찾아가면 평이한 시간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삶은 세상도, 인물도, 변수도 아닌 온전히 우리에게 달려있다. 인생에 대한 회의와 후회 모두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린 것이 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것만 배운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말로 돌아간다는 무력감에 따른 회의를 느끼라는 것이 아닌, 잠시 멈추어 옷매무새를 다듬듯이 우리가 걸어온 길을 잠시 돌아볼 시간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