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렁주렁 달려있는 동그라미 병들이 천정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혈관을 타고 들어가서 종양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시작한다. 모진 항암제의 공격을 받은 나쁜 세포들은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나는 왜 그 미세한 혈관 속 세포들의 소리까지 듣게 되었는지 신기했다. 더불어 내 심장까지 그 하얀 액체들이 도달할 쯤이면 심장은 통증으로 인해 펌프질을 멈추려고 한다. 간호사는 똑똑 떨어지는 수액을 잠근다. 30여분 휴식을 취하고 좀전의 일들을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는 얼굴이 모두 쪼그라들어 마른꽃잎처럼 수축이 된다. 간호사는 또 수액의 통로를 차단한다. 그렇게 6~8시간 되풀이 되는 시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지친 하루는 메밀꽃 향기를 가장 선호한다. 메밀막국수 맛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분주하다. 어떤 곳은 너무 달고 어떤 식당은 참기름 냄새가 많이 난다. 그런 곳과는 달리 단골 메밀막국수는 메밀 향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강원도 어디 쯤 하얀 꽃이 흩날리는 메밀밭 가운데 서있는 듯하다. 맛도 잃어버리고 입속에 도무지 무엇을 넣고 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굳게 닫힌 입을 열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이미 손님들도 넘실되는 꽉 찬 식당을 휘 돌아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테이블은 논이 바라보이는 들판 같은 안쪽 창가 자리지만 그곳에 앉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의 시선도 좀 피할 수 있고 논을 보며 잠시 사색도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자리이다. 다행히 같은 시간대에 일어서는 사람이 생겨 창가에 앉았다.
내 발로 걸어서 식당에 직접 갈 수 있는 것도 이 시간이 지나면 어렵다. 며칠 뒤면 온 몸의 컨디션이 무너지며 입안도 온통 헐어서 누군가 앞에 나서기에는 너무 초췌한 모습이 된다. 그때는 배달앱을 통해 살짝 불어버린 면을 대문 앞에 배달해서 먹어야 한다.
금방 삶아서 나온 면발이 입맛을 자극한다. 시원한 국물이 화산 폭발한 듯 불이 뿜어져 나오는 속을 달래준다. 온 몸이 잠시나마 만족감을 누린다. 그렇게 속이 시원하게 달래지고 나면 다른 음식들도 먹을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어렸을 때 외갓집에 가면 물을 한바가지 넣고 펌프질을 하면 물이 꽐콸 쏟아지는 펌프가 있었다. 물 한바가지가 마중물 역할을 해서 땅속 지하수 손을 잡고 다시 나와 꽐꽐 쏟아졌다. 내게 메밀막국수는 그런 마중물 역할을 해주었다. 굳게 닫혀있는 내 입속에 무언가를 먹을 수 있게 하는 마중물이었다.
입안이 헐기 시작하면 자그만 죽 알갱이 하나가 들어가도 내가 우는 것도 아닌데 몸이 혼자서 눈물을 줄줄 흘린다. 식사 한끼를 하려면 세 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렇게 종일토록 먹는 것과 사투를 벌인다. 그런 나에게 막국수는 미끌미끌 부드러워서 입안을 덜 자극하며 후루룩 먹을 수 있는 마중물이다. 항암제라는 화산폭발로 생긴 내 속 불을 꺼주는 고마운 소방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