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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지아빠 Jan 10. 2021

공정한 사회, 계층 사다리가 막고 있다.

"세습 중산층 사회, 조귀동"을 읽고


80년대 학번, 60년대생. 그 중에 서울 소재 대학을 다닌 사람들. 대기업, 공기업에 취업하여 IMF를 무사히 통과하여 대부분 기득권을 차지해버린 계층. 이들이 형성한 중산층 사회는 그들 자녀들에게 그대로 세습되고 있는 상황이며, 이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한 내용이다. 그들은 계층 사다리라는 것을 튼튼하게 만든 세대가 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90년생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들을 옆에서 본 세대이다."

마음이 무겁다. 나는 저자를 편들수도, 60년대생을 편들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이다. 90년대 학번, 70년대생, 서울 소재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난 가까이서 60년대생을 지켜보았고, 그들이 얼마나 혜택 받은 세대인지 코 앞에서 보고 들었다. 그리고 70년대생들까지 회사 윗 자리를 빼곡히 채워 80년대생조차 기회가 잘 오지 않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책에서 말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거머쥔 90년대생을 후배로 두고 있다. 

나는 저자가 후반부에 말한 60년대생들의 구조조정을 자주 생각한다. 지금 그들이 대거 자리를 비워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딱 10년뒤 70년대생들이 대거 자리를 비워준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그 빈자리를 60년대생들 자녀들이 신입사원으로차지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그래도 비우지 않으면 채울 방법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테니깐... 이제까지 충분히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는 첫 세대가 '80년대학번-60년대생-서울소재대학-중산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모든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은 세대." 

"80년대학번-60년대생-서울소재대학"이라는 중산층은 확실히 혜택받은 세대이다. 물론 그들의 공도 크다. 격변의 80년대, 호황의 90년대, 새로운 기회의 2000년대를 통해 현재 사회 주축이 되었고, 민주적 시민사회와 세계적인 대기업을 만든 주역이다. 하지만 이들은 탐욕스럽다. 이를 알기 위해서 그들이 자라던 시대정신을 꼭 짚어야 한다. 그들이 자라던 60, 70년대는 반공이라는 전체주의 시대였다. 전체주의 사상은 '반공, 경쟁, 성공'이라는 시대정신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개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이 틀을 깨고 민주적 시민사회로 이끌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경쟁과 성공'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실제 탐욕적으로 과실을 챙기고 있고, 그런 모습을 당연시 하고 있다. 그런 모습엔 이런 내면이 있다. 그들의 역할은 공정한 사회를 타파하는 것이 아닌, 독재시대를 타파하는 것에 역할이 더 컸다. 공정사회에 대한 이슈와 변화는 최근부터 이슈가 되고 있으며, 그들은 이미 타도되어야 할 기성세대, 기득권세대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보니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쟁, 성공에는 상생은 없다.'

우리 사회에 상생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경쟁과 상생은 대치되는 단어이다. 아직도 교육은 '경쟁'이라는 철학 위에 세워져 있다. 경쟁은 1등부터 꼴찌까지 명확히 줄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1등에게 아주 많은 기회와 혜택을 주는 체계인 것이다. 교육은 사람을 만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생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함께 사는 방법을 한 번도 배우지 못했고, 무엇이 함께 사는 방법인지 보지도 못했다. '어떻게 상생할 것인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추상적인 것이다. 저자의 철저한 분석이 마치 맞는 방향 같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분석을 시작하게 된 질문이 명확했다면, 분석을 통한 결론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것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결론 부분을 공교육 강화와 이를 위한 기반 마련정도로 끝을 낼 수 밖에 없었다는 건 어쩌면 첫 질문이 잘 못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계층 사다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계층 사다리는 바로 '경쟁'에서 만들어진다. 책에 수없이 나오는 '괜찮은 일자리'가 바로 그 대상이다.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괜찮은 일자리에 10%가 아닌 50%가 들어갈 수 있다면 이런 수준의 경쟁이 일어날까? 만약 100%가 들어갈 수 있다면 경쟁이 일어날까? 5%라면 경쟁은 더 치열해 지고, 그 문을 뚫기 위해 경쟁을 한다면, 누군가는 더 유리하다. 그리고 계층 사다리라는 것은 자연히 만들어진다. 이 프레임을 깨지 않으면 계층 사다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철저히 세금으로 환수하고,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임금격차를 줄이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안전망을 만들기 위한 세금을 '80년대학번-60년대생-서울소재대학' 출신들의 고소득에서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함께 사는 세상을 그리다."

내 아이가 꼬마일 때 동화책을 통해 함께 사는 세상을 읽어주고 가르쳤다. 하지만 지금 난 그 아이를 코로나19 시대에도 줌을 통해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 나 또한 '경쟁과 성공'이라는 철학 위 교육을 받고 자랐고, 몸 속에 경쟁의식이 굉장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경쟁속에 아이들을 일렬로 세워야 하는 것일까? 공부와 학벌 외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언제 쯤 아이들한테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힘을 합쳐 첫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을까. 대학의 서열을 모두 파괴하는 프랑스 방식과 사교육이 죄악인양 느끼는 사회문화와 학력과 소득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지금 "경쟁"을 끊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저자가 주로 얘기하는 60년대생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 기반을 만들어 왔다. 이제는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시대인 것 같다. 그들이 어른이 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40년 역사는 우리가 그들한테 충분히 고마워할 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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