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이야기, 그 첫 번째.
이래서 옛사람들이 토속 신앙을 믿었구나.
섬에 온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갖게 됐던 생각이다.
이곳, 울릉도의 모든 일과는 기상에 따라 달라진다. 바람이 심한 날이면 배가 뜨지 않아 택배도 받지 못하고, 파도가 높이 치는 날이면 도로가 침수당해 버스가 종종 끊긴다.
그러다 보니, 울릉도에서 세우는 모든 계획은 일단 한 가지 가정을 두고 시작해야 한다.
'날씨가 좋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날씨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물을 떠다 놓고 천지신명께 기도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도무지 '루틴'을 세울 수 없는 환경이었다.
큰일이었다. 나는 루틴이 없으면 일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인데.
아니나 다를까, 부대에 들어오고 나서 첫 몇 주는 진짜 한량처럼 지냈던 것 같다. 침대에 바짝 붙어 일어날 생각을 않고 하루종일 누워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가끔은 ‘이래도 되나’ 싶어 조금씩 공부를 해봤지만, 그 역시 하다 말다 하다 말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세 달의 시간이 흘렀다.
루틴 없이도 부지런한 삶을 살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아니. 아쉽게도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름대로 무언가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도시에서 하던 것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부지런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다른 것을 얻게 되었다.
유연함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예전 도시에 살 때만 하더라도, 정해진 루틴이 어그러지면 걱정스러운 마음이 항상 앞섰다. 이대로 또 작심삼일로 엎어지는 건 아닐까? 내가 이렇게 살고 있어도 되는 걸까? 두려운 마음에 부지런히 살기를 반복했지만, 그 속에서 만족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계획이 엎어지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
아, 오늘 못 했어? 그럼 내일 또 하지 뭐.
그게 생각의 끝이다.
그리고, 실제로 내일 그대로 진행한다.
감정을 쓰는 일이 적어지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그 안에서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깨닫게 된 것은, 하루이틀 루틴이 깨진다 해서 생각보다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일을 놓고 있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해낸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조바심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게 되었다.
자기 계발서가 판을 치고, 모두가 '매일'의 목표에 집중하는 사회다.
그 속에서, 루틴의 삶을 벗어난 이단자가 한 마디 던져본다.
오늘 못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내일 또 할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