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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그리고 바람직함

나에 관한 생각들

by 나만의 결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난 원래 게으른 편이고, 이기적인 면도 많고, 잘 잊어버린다. 결정적으로 고집이 세다.


문답형 심리검사의 결과를 두고 심리상담사를 만났다. 며칠 전, 꽤나 많은 문항을 담은 심리검사지를 제출한 후였다.


"가치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많으신 것으로 나와요."

"난 항상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


난 고집이 별로 없다고 생각해 왔다. 가급적이면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주려 노력했고, 부탁을 거절하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느끼기도 했다. 거의 모든 것에 호불호가 크게 강하지 않고, 음식을 고르는 것조차 버겁게 느끼는 무색무취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요즘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긴 했어요."


맞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생각해 왔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거부했었다. 꽤 오래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고집이 센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거부감이 들었고 꽤 오랫동안 부정했었다. '고집이 세다'는 것 자체가 악(惡)인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 거부감이 들었을까?'




심리검사를 받은 이유는 그저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나 스스로에 대해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수백 개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이런 따위의 검사를 누가 하고 싶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나에 대해 궁금했다. 곧 지천명의 나이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탓이다. 창피하게도.


거절을 못하는 것이나, 배려를 한다는 것은 행동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지 사람 자체의 본질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꽤 큰 착각 속에 살아온 것일 수도 있다. 그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라도


***


"바람직함에 대한 강박이 있으신 것 같아요."

"바람직함이요? 바람직함이란 게…"

"하지만, 그게 큰 불편감을 주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것도 본인의 한 단면이거든요."


바람직함이라… 가치관이나 습관과는 또 다른 영역의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게 내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쳤다. 나의 '바람직함'은 무엇인가?




완벽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완벽은 '나의 바람직함'의 한 일면이었다. 남들에게는 완벽을 바라진 않았지만 - 어쩌면 강요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 내 것은 '나름의 완벽'이어야 했다. 그래서, 나를 잘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때론 느려 보이고, 때론 자신 없어 보이고, 때론 의뭉스럽게 보였을 터였다.


'후회란 없다'

어느 순간 잊힌 어릴 적 좌우명이 떠오른다. 뭐든 최선을 다해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는 의미였다. 나이가 들면서, 좌우명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녹아 있었을 거다. 그리고,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정성을 다했는가?

후회하지 않을 것에만 최선을 다했던 것은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후회하지 않도록 안전한 것만 해왔던 것은 아닐까?

완벽에 가깝게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많지는 않았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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