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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직장인

직장인으로 25년, 그리고 나의 미래는 무엇일까?

by 나만의 결

이미 겪었던 일이지만, 다시 부서장이 되기 전에 가장 우려했던 것은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부서장을 한다는 것은 나를 희생한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권한과 책임이 생기는 것이지만, 이 거대 조직은 권한보다는 훨씬 큰 책임을 준다.


코로나 팬데믹 즈음부터, 아니 십여 년 전부터 시작된 직장인들의 '월급루팡' 행렬은 회사를, 그리고 회사의 리더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이런 시기에 회사는 적절한 변화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살아온 이곳은 전혀 그러질 못했다. 탑 리더들은 고리타분하고 꼰대 같은 관습을 버리지 못했고, 새로운 리더에 합류한 이들은 이내 위정자가 되어 그들에게 흡수됐다. 물론 이해한다, 그들도 한해 한해 살아남아야 하기에.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사 시스템의 붕괴다. 이 회사는 몇몇의 핵심인재로만 굴러가도록 하지 않았었다. 물론 몇몇은 큰 차이의 대우를 받으며 회사를 이끌었고 그건 타당했다. 회사가 어려워진 이유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평범하지만 전문가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 교수는 이 거대 회사가 커왔던 동력 중 하나는 '아낌없는 보상'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맞다, 사람에 관한 것은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 맞다. 하루 이틀, 한 해 두 해 만에 쌓을 수 있는 역량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 중간 리더들은 힘이 든다. 예전처럼 리더에게 주어지는 '보이지 않는 권한'이 막강하지 않는 반면, 예민해진 부서원들을 '달래가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지원은 줄이고 압박은 늘어간다.




나 역시, 꽤 오랜 시간 더 높은 리더의 자리를 피하려고 노력했다. 중책을 맡게 되더라도 내 미래가 긍정적인 무엇으로 바뀔 가능성은 영에 수렴했고, 시간과 에너지를 더 쏟아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창피함을 느꼈지만 그랬다.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서는 안 된다는 기괴한 생각을 하고 번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궁지에 몰렸다. 최소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직업적 윤리의식과 동료 후배들에게 최소한 창피하고 싶지는 않은 감정의 어느 중간에서 결정한 일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단순히 내 시간만을 더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까지 내놓으라 했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임창정 배우처럼 '존나 카리스마 있어. 나 말고 나보다 잘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라고 마음속으로 백 번 외치면 뭐 하겠는가? 그냥 잠깐, 사명감 내지는 최소한의 직업적 윤리의식, 동료와 후배들이 인정해 주는 그런 느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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