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오고 있다.
봄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 살결로 느껴진다.
꽃은 아직 피어나지도 않았고, 새싹이 돋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봄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작년 이 즈음, 나는 외할머니의 병환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내 30대까진 옆에 계셔주실 것이라 믿었던 외할머니의 병환 소식에 ‘곧 나으실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믿음에 찬 확신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는 다 이겨내 오셨으니까.
모진 세월의 풍파도, 몇 번의 고비도 굳세게 이겨내셨고 나는 그걸 지켜봐 왔기에.
할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가던 나의 발걸음이 잦아질수록, 할머니는 더욱 노쇠해져 가셨다.
못난 손주가 자주 가서 그런 탓은 아닐까도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우리 할머니는 나만 보면 괜찮다고 쌩긋쌩긋 웃으셨으니까.
꽃이 피기 시작하던 그즈음,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할머니가 치매라고 하셨다.
피어오르는 꽃잎을 보며, 내 눈에는 눈물꽃이 함께 피어올랐다.
계속 피어올랐다. 눈물꽃이 만개했다.
애써 피어오르던 그 눈물꽃을 달래며 엄마한테 ‘아니실 거’라 이야기했다.
할머니가 엄마 당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며 말했다. 전화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에서도 작은 울음꽃이 피어올랐다.
나에게 20대의 마지막 봄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봄을 사랑하던 할머니는 벚꽃이 흐드러지던 그때, 치매가 아닌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판정을 받으신 뒤 할머니는 당신 집으로 돌아가시고 싶다고 하셨다.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을까, 할머니 당신 속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 것을 견디기 힘드셨던 탓인지 ‘다시 병원으로 가자’ 시던 할머니의 그 눈빛을 난 잊을 수 없다.
병원에 연락하여 다시 입원하겠다 말하고 하루가 지난 뒤 입원이 결정되었다.
가까스로 할머니를 들어 차에 모시고 올라탔다. 벚꽃잎이 한 닢 두 잎 지고 있을 때, 꽃같이 아름다운 우리
할머니는 그 꽃잎 세례를 받으며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멈출 줄 몰랐다.
나는 그 꽃 세례가, 그 꽃길이 분명 우리 할머니의 마지막 길일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병원으로 향하는 차의 운전대를 잡은 막내 이모부에게 제발 천천히 가 주실 수 없겠냐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미 차는 병원에 다 달으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병원으로 들어가셨다.
머지않아 꽃들이 저물어가던 즈음, 할머니는 꽃보다 아름다웠던 당신 삶의 꽃잎들을 모두 떨구시고 늦봄 바람에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가셨다.
나에게 잔인했던 그 봄날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몹쓸 그 봄은 저 멀리 서쪽 나라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찾아오고 있다. 다시.
봄에게 그 아무리 찾아오지 말라 손사래 쳐도 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서쪽 바람에 실려 아지랑이 춤을 추며 찾아오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찾아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