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34일. 난 다행히 살아서 글을 쓰고 있다.
선생님, 코로나 양성 판정받으셨어요.
아침 8시, 뜬 눈으로 지새운 내 일요일 아침을 깨운 전화 한 통.
나는 생각보다 꽤 덤덤하게 전화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배달의 민족을 켜서 떡볶이와 튀김을 최소 주문금액에 맞춰 주문을 했다. 병원에 입원하면 왠지 못 먹을 것 같아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를 시켜 먹었다. 그리고 수화기 넘어의 구청/보건소 담당자께서 말씀해주신 것들을 되새기며 물건들을 정리하고 챙기기 시작했다.
난 아직도 병실을 나서지 못했다.
생각보다 건강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건강하지 못하단 사실을 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오래 입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입원 한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어보고, 영상도 찾아보았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코로나보드 페이지를 보며 예전처럼 늘어나는 '확진자'의 숫자가 아닌 '격리 해제'된 사람의 숫자를 보며 깊은 한 숨을 내쉬곤 한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발견하는 자가 격리자들의 후기나 MCO(Movement Control Order, 말레이시아 이동제한 명령) 또는 다른 나라들의 Lock-down(도시 봉쇄, 이동제한명령 등)등으로 인해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친구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들을 보면서 '니들은 복에 겨운 줄 알아라.'라고 혼잣말하는 나를 자주 보았다.
열의 여섯, 일곱은 그들의 이야기의 끝은 항상 '작은 일상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며 마무리 지어진다.
하지만 격리 환자들에게는,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일상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그네들도 사실은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든 작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입원 날을 시작으로 병실에 격리되어 외부와의 접촉이 아예 끊어진 격리 병동의 환자 ‘나’에게는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그저 병실을 더욱 뜨겁게 만들 뿐이고,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나는 일상은 나에게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가?'같은 스물아홉 인생 평생 해본 적 없는 삶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도 하게 만든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뭐라고.
'이게 우울감이구나.'
살면서 우울감이라는 걸 크게 모르고 살았던 나. 생각보다 감정 변화의 기복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우울감이란 걸 별다르게 규정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망할 코로나 덕분에 난 우울감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느껴 볼 수 있었다.
5월 10일 입원 이후, 2-3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테스트를 받았다.
몇 번을 받아도 비강을 훑으며 목 뒤까지 내려오는 그 면봉의 느낌은 아주 잠깐이라도 내가 코로나 환자라는 사실을 잊을까 매번 상기시켜주었다. 콧속 깊이까지. 그리고 하루가 지나 받아 들은 열한 번째 테스트 결과는 여전히 양성이었다.
입원 한 첫날, 나의 긍정 회로는 또 돌아가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뒤바뀐 나의 삶을 기록해서 유튜브를 해볼까? 독특해서 잘 될 텐데!"
하지만 밤낮을 모르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고열과 끊임없이 쑤셔오는 근육통 덕분에 그 계획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생각 속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집중을 요구하는 더욱이 하기 힘들어지는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실감하곤 했다.
그러던 며칠 전 절친과 카톡을 하던 중,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주었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을 그대로 써 내려가면 되는 일이었기에 복잡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한 줄, 한 줄, 글을 써 내려오며 글을 써야 할 이유는 서서히 선명해졌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를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함도 있지만, 짓궂은 이 바이러스로 인해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창 밖의 수많은 일상들을 위해서.
그래서 글을 쓰기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