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IO Jun 17. 2020

01 | 코로나 양성 확진,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것들

끝 없는 전화. 어쨌든, 어떻게든 해야 했다. 확진자이기에.

일요일이 무색하게 모든 절차는 신속했다.

전화 넘어의 담당자분께서는 설명을 시작하시기 전 혹시나 코로나 양성 확진 판정을 받은 상황에 충격을 받았을까 마음을 달래 주시면서도 해야 할 것 들을 침착히 설명해주셨다.


병원은 서울시에서 지정해주는 병원으로 배정이 될 것.  

기저질환은 없는지, 먹는 약은 없는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어디이고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있는지?

함께 거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우선 마스크를 착용할 것.

거주하는 집의 경우 방역이 힘들기 때문에 별도의 방역용 소독 스프레이를 제공할 예정.

집안에 있는 물건 중 폐기할 것들이 있다면 봉투에 이중으로 포장해서 따로 빼둘 것.

병원 생활에 필요한 옷, 수건, 세면도구 등을 챙기되 퇴원 시 폐기할 것들로 챙길 것.

확진자들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언제 구급차가 배정될지 모르겠으니 우선 대기할 것.

그리고, 본 통화 이후에는 역학조사관이 연락을 할 것이니 통화를 대기해 달라는 것.


난 듣기만 한 이 통화에서 진이 벌써 빠지기 시작했다. 분명 '네. 네.'만 했을 때문인데.

전화통화를 하며 동시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받아 적으면서 또 머릿속으로 해야 할 오만가지 것들도 함께 생각하느라 그런 것이겠지.

뜨거워진 머리를 식혀 볼까 잠깐 누워 눈을 감고 생각 정리를 하고 있었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좀 전 과는 다른 전화번호로 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수화구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확실히 전의 것과는 다른 목소리였다.


'안녕하세요? 강남구 역학조사관입니다.'

'OOO씨, 맞으시죠?'

전화 너머로 말씀하시는 목소리는 나에게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죄책감 비스름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전화로 혹시 셀카 한 장만 찍어 보내달라고 말씀하셨다.

얼굴에 열꽃이 솟아오르기 시작했고, 씻지도 않아 부스스한 얼굴을 그대로 보내기는 좀.. 그랬다. 그래서 폰을 뒤져 그나마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 하나를 골라 보내드렸다. 사진을 보내는 그 찰나의 순간, '이미 내 얼굴, 전화번호, 그리고 이름은 확진자 관리 시스템 따위에 등록되어 관리 대상으로 격상되겠구먼.' 하는 생각이 스쳤지나갔다.


그리고 나에게 처음 물어보시는 질문.

혹시 발열 증세나 기침, 호흡곤란 같은 증세를 느끼셨나요?
만약, 느끼셨다면 언제부터 느끼셨나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검사를 받고 온 토요일 저녁부터 침 삼킬 때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약간의 미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기억을 그대로 조사관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어진 조사관님의 말씀은 다행히 내가 걱정하고 있던 부분에 대한 해답이 되었다.


처음 증상이 발현되기 시작한 날로부터 2일 전까지를 전파 가능한 시기로 봅니다.
그리고 해당 날짜 안에서 동선 추적을 시작합니다.

토요일부터 의심증상들을 느끼기 시작했으니, 2일 전이라면 목요일부터 타인에게 전파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다행이었다.

지인의 확진 판정 소식을 들은 후, 혹시 모르는 일이니 회사에 통보하고 자가 격리를 목요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가진 답례 식사 자리에 온 친구가 확진을 받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섯 명이 모인 자리에서 확진자 친구를 제외하고는 나만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자가 격리를 했어도 사흘에 걸친 장례를 치르고 왔기에 집에는 먹을 음식도, 심지어 쓰레기봉투까지 부족했기에 부득이하게 집 밖을 나설 일이 서너 번 정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보기와 다르게 부실한 면역력을 가진 올해 초의 내가 플렉스 해둔 마스크의 명품(?)으로 불리는 에X카 KF94 마스크를 제2의 피부 마냥 쓰고 집을 나섰다. 물론 주머니에 휴대용 손소독제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내 결백을 주장하고 싶었다.

지은 죄는 없지만.

회사에 상황을 알린 후 시작한 자가 격리, 능동감시 자가 격리는 아니었지만 최대한 수칙 들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움직임을 제외하고. (할머니를 보내 드릴 때 까지는 정신이 없어 자르지 못한 머리를 자르기 위해 저녁 늦게 잠시 집을 나선 것, 할머니를 보내 드린 뒤 찾아오는 허함을 잊어 보고자 집 뒤의 바에서 가서 술 몇 잔 사 마신 것은 '내 기준에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이었다.)


별거 없는 동선이란 걸 알았지만, 정작 전화를 받으며 끝없이 질문세례를 받으니 고작 이틀 전 기억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최대한 성실히 모든 대답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불현듯 폰에서 구글 지도를 켰다. (사람들은 알지 모르겠다만, 사실 구글 지도는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동선을 기록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동선이 기록되는 것을 좋아했다. 공룡기업들이 일개 내 동선에 뭐가 관심 있겠나. 나는 순전 내가 여행 다니고 돌아다닌 기록들을 확인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해당 기능을 끄지 않았다.) 역학 조사관님께 잠시만 기다려 달라하고 구글 지도 타임라인에 기록된 동선을 분 단위로 설명했다.

사생활 침해네 뭐네 하는 것은 나에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다녀간 곳에는 책임감 있게 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한 시간가량은 통화했을까? 앞서 말한 동선을 몇 번이고 되짚어가며, 심지어 내가 그날 무슨 옷을 입었는지까지도  설명해야 했다. 머리를 짜내고 짜내서 설명을 최대한 했다.


여하튼, 난 결백했다.




왕복 4km, 보건소까지 난 걸어갔다.

테스트를 받던 날, 그 날은 비가 왔다.

날씨도 마치 내 을씨년스러울 운명을 아는 것처럼.


혹시 모르는 일이니 집에서 보건소까지 편도 2km, 왕복 4km의 거리를 난 걸어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면 왕복 편도 5분 컷이지만 내가 조금 편하자고 선택한 것 때문에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불안을 타인에게 안겨 주고 싶지 않았다.

검사를 마치고 나와 보건소를 나서려 하니 같이 사는 사람이 있냐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대답하니 집에 있는 그 룸메이트도 데려 오란다. 한숨을 내쉬고 비 오는 길을 30분 동안 걸어 집에 도착하여 허기진 배를 걸어오는 길에 테이크아웃 한 햄버거를 허겁지겁 먹고는 겁에 질린 룸메이트를 끌고 나왔다. 그렇게 또 30분을 걸어서 보건소에 도착했고, 룸메이트의 검사를 받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참고로 룸메이트는 프랑스인 여자'사람'친구. 말이 통하지 않아 함께 들어갔다.)

얘는 검사실에 들어가서 앉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속으로 '너 왜 우냐?'라는 질문이 끝이 없이 들었지만 내가 알 길이 있나. 검사용 면봉을 들고 입 안쪽에서 샘플을 채취하는데 헛구역질을 하고, 콧구멍 안쪽으로 면봉을 넣으려 하니 몸을 떨고 못하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도 나도 당황하였지만 여하튼 어떻게든 진정을 시켜 검사를 완료했다.


진땀을 뺀 검사를 마치고 선생님이 하시는 말, "어디서 왔어요? 프랑스요? 프랑스 사람들이 특히 더 이래요."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이 말을 통역해줬더니 "Frenches are dramatic.(프랑스 사람들이 좀 오버가 심해.)"라며 인정하는 게 아닌가. 등짝을 시원하게 한 대 때리고 다시 집으로 걸어왔다.


오는 길에 '왜 울었냐, 뭐가 그렇게 무서웠냐' 물어보니 면봉을 콧구멍을 통해 뇌까지 면봉을 넣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잔뜩 묻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만 양성이었다.

역학 조사관님과 통화를 끊고 나서 룸메이트에게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왔냐고 물어보니 폰을 들어 나에게 받은 문자를 보여준다. 음성이란다. 어이가 없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분명 밥도 같이 먹고, 감자튀김도 뺏어 먹고, 마주하고 (분명, 침 튀기며) 이야기도 함께 했는데 나는 양성 판정을 받았고 룸메이트는 음성 판정을 받다니. 이후 다시 걸려온 역학 조사관님의 전화를 받아 들고 이 이야기를 하니 조사관님도 의아해했다. 뉴스에서 보던 일을 내가 직접 겪으니 더 어이가 없었다.

각설하고, 이어진 통화에서는 신용카드 사용 내역 조회도 필요하여 카드사와 카드번호를 알려 달라 요청을 하셨다. 부랴부랴 지갑을 찾아 주로 사용하는 카드 3개에 대한 정보를 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챙겨야 할 것 들을 다시 상기시켜주시고 통화를 종료했다.



나는 그렇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00. |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